[아빠가 읽어주는 그림책] 부엉이와 보름달
일어나 보니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다양한 빛깔과 서로 다른 모양의 건물, 그리고 식물들 위에 내려앉아 모두 모두 똑같이, 하얗게 하얗게 만들어 버리는 눈입니다. 온 세상을 하나의 빛으로 물들이고 덮어 고요하게 침묵하게 하는 눈입니다. 그래서 눈은 늘 보던 일상의 풍경들을 신비롭게 만듭니다.
첫눈을 기다리며 오늘은 눈 오는 날의 신비로운 풍경과 어울리는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제인 욜런의 서정적이고 시적인 글과 그 문장 사이사이에 담긴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손상되지 않게 보호한 존 쉰헤르의 환상적인 수채화가 아름다운 작품 '부엉이와 보름달'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아빠를 소리쳐 부르지 않았습니다.
부엉이 구경을 나가면 조용히 해야 한단다.
아빠는 늘 그렇게 말했거든요.
아빠와 부엉이 구경 나오기를
얼마나,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추운 겨울밤, 잠잘 시간도 한참 지난 밤중에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아빠와 단둘이, '부엉이 구경'을 떠나는 소녀가 있습니다. 부엉이 구경은 소녀가 늘 기다려온 여정입니다. '부엉이를 본 날도 있었고 부엉이를 못 본 날도 있었어.' 아빠를 따라 먼저 부엉이 구경을 다녀온 오빠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마음으로 수없이 그려보며, 간절히 소망하던 순간입니다. 드디어 소녀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부엉이 구경을 간다는 것은 소녀에게 있어서 가슴 뛰는 통과의례인 것입니다. 오빠들과 아빠만이 할 수 있었던 일, 일찍이 오빠들이 겪었던 그 신비로운 여정을 떠나는 소녀의 발걸음에는 동경과 자부심이 빼곡하게 담겨있습니다.
누군가 얼음 손으로 내 등을 쓸어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코랑 볼은 얼어서 화끈거렸습니다.
그래도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엉이 구경을 나가면 조용히 해야 되거든요.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따뜻하게 해야 되거든요.
'부엉이 구경'은 통과의례 하면 떠오르는 가혹한 시련과는 다른 정서의 성장 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리' 속에서 꺾였다가 극복하고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시련의 의식이 아니라 '보호' 속에서 꺾이지 않고 지지받으며 성장하는 소망의 의식입니다. 소녀가 아빠와 함께 겪는 '부엉이 구경'의 과정을 숨죽이고 따라가다 보면 소망의 의식이 어떤 것인지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빠는 소녀보다 앞서 걷습니다. 아빠는 소녀에게 이 길을 먼저 간 삶의 선배이자 처음 여정을 떠나는 소녀에게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그는 소녀에게 있으면서 없는 존재입니다. 겨울 숲을 걸으며 소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아빠의 모습은 소녀에게 모범이 되어 닮고 싶고 따라가고 싶은 세계를 향한 의지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렇게 아빠는 소녀의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소녀와의 적당한 거리와 침묵이라는 간격을 두고 걷습니다. 소녀가 부엉이를 보기 위해 얼음 손의 차가움과, 부엉이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실망감, 그리고 시커먼 겨울 숲의 어둠을 스스로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없이 있음'으로 존재합니다. 보름달처럼 은은하게 아빠는 소녀의 곁에서 성장의 순간을 함께 합니다.
이제는 말을 해도 되고 크게 웃어도 된다는 건 알았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소리 없는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추위, 아빠의 보일 듯 말듯한 미소, '부우우우우우엉~ 부우우우우우엉' 낯선 소리, 아름다운 보름달,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겨울 숲은 소녀의 몸에 강렬하게 기록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소망하던 순간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 분, 삼 분, 어쩌면 백 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부엉이와 우리는 서로 바라보았습니다.'라는 소녀의 표현에는 이 순간 생의 처음으로 소녀가 느꼈을 '경이로움'이란 감정이 담겨있습니다. 자연의 경이로움, 생명의 경이로움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소녀는 그 경이로움과 하나가 됩니다. 그 순간, 자신 역시 '경이로운 존재'라는 것을 부엉이와의 만남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커다랗게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부엉이의 소리 없는 그림자처럼 소녀는 거대한 침묵으로 그 경이로움을 가슴속 깊이 간직합니다.
부엉이 구경을 가서는 말할 필요도
따뜻할 필요도 없단다.
소망 말고는 어떤 것도 필요가 없단다.
아빠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엉이 구경을 마친 두 사람은 꼬옥 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깊은 곳에서 소리 없는 그림자처럼 소리 없는 눈물이 솟아오릅니다. 아빠가 딸에게 전해주는 단 하나의 가치, 소망은 생의 경이로움과 존재의 경이로움을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삶의 유산이자 삶의 철학입니다. 소망의 의식을 잘 통과한 딸을 꼬옥 안고 해 주는 아빠의 말에는 눈처럼 희고 고요한 가족의 사랑이 은은하게 깔려 가슴 깊숙한 곳을 따스하게 합니다.
Q. ‘경이로움’이란 감정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 ‘경이로움’이란 감정은 일상적인 상황에서 쉽게 느끼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커다란 자연의 생명력을 느꼈을 때, 온몸을 휩쓸었던 산고의 끝에 갓 태어난 아이의 카랑카랑은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기나긴 산행의 가쁜 호흡과 땀방울이 잦아들고 마주한 일출을 보았을 때, 마음속에 늘 간직하던 소망이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되어 나타났을 때, 쳇바퀴 돌 듯 반복하던 생각의 미로에서 빠져나와 지금 여기에 온 감각이 깨어남을 느낄 때 ‘경이로움’이란 감정을 느꼈던 순간들을 부부끼리 또 가족들끼리 나누고 표현하세요. 그리고 그런 감정적 경험을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나 함께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면 아이에게 선물해주세요.
Q. 내 삶의 단 한 가지는?
: 이것만 있으면 살 수 있다! 하는 근본적인 삶의 중심, 본질, 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묻는 질문입니다. ‘부엉이 구경을 가서는 말할 필요도 따뜻할 필요도 없다. 소망 말고는 어떤 것도 필요가 없다.’라는 문장에서 '소망!'처럼 한 가지면 충분한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것들이 주어져 있어도 이것이 없다면 의미가 없고, 많은 것들이 없어도 이것 하나만 있다면 삶이 만족스럽고 의미로 가득 해지는 것.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배움’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창조’ 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사랑’ 일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는 10대, 20대, 30대 나이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계속해서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한 가지 중심축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 그리고 나누는 것만으로도 삶의 방향을 이해하고 조율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삶’이라는 단위가 너무나 커다랗다면 '올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이 달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오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지금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으로 시간의 폭을 줄여서 물어도 좋습니다. 또는 '오늘 보았던 것 중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오늘 들었던 것 중 가장 좋았던 말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하나만 선택한다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할까?'와 같이 선택의 범위를 정해주고 묻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너의 크리스마스
: 어느 인디언 부족에게 생일은 자신이 새로 태어난 날, 마음의 변화, 성장이 일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탄생일만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다양한 성장의 순간들을 함께 축하해보세요. 이제 막 밤 수유를 끊고 긴 잠을 자게 된 아이에게 온 가족이 축하한다고 말해줍니다. 처음 담아본 총각김치가 맛있게 됐다고 기뻐하시는 할머니를 가족이 다 같이 축하합니다. 매일 새벽 혼자만의 시간에 고요히 글을 쓰고 그린 그림으로 손수 작은 동화책을 만든 엄마를 축하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피하지 않고 잘 표현하게 된 아빠를 축하합니다. 이렇게 서로가 변화하고 성장 한 순간들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서로의 성장을 축하하면서 새롭게 달라지고 새롭게 태어난 '너,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을 축하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고요한 소망 의식 만들기
: 아빠가 스스로 한 해를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침묵의 여정으로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지리산 종주, 엄마가 연말이면 설레는 다음 해를 준비하며 쓰는 상상 편지(소망이 이루어졌다고 상상하고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쓰는 1년 편지) 쓰기, 가족이 함께 일 년에 한 번이면 소망들을 적어 밤하늘에 올려 보내는 풍등 띄우기 등 소망하는 길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고요한 시간의 의식들이 있습니다. 각자의 방법대로 겪고 그 경험을 나누는 것도 좋고, 서로의 방법을 함께 경험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감사하고 침묵하며 돌아보고 안으로 향하는 시간, 그런 정화와 갈무리의 의식을 가족의 소망 의식으로 삼는다면 가족의 문화가 아이의 몸 안에 은은하게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어려운 순간들이나 방황하는 순간들을 만났을 때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