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어주는 그림책] 아빠, 나한테 물어봐/버나드 와버 글
아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한번 물어봐.
넌 뭘 좋아하니?
나는 개를 좋아해.
고양이도 좋아하고,
거북이도 좋아해.
나는 기러기가 좋아.
하늘을 나는 기러기? 아니면 물에 떠 있는 기러기?
하늘을 나는 기러기가 좋아.
아냐, 물에 떠 있는 기러기도 좋은데. 둘 다 좋아
헤엄치는 개구리가 좋아.
가을, 아이와 어떤 추억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아이에게 아빠와의 추억은 어떤 빛깔이기를 바라시나요?
오늘은 빨강과 노랑, 아빠와 딸의 눈부시게 따뜻한 낙엽 빛깔의 추억이 담긴 동화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가을, 가을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계절입니다. 아름다운 단풍의 빛깔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가을의 빛에는 추억이 담깁니다.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라고 이야기함은 단순히 과거에 있던 사실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보다 더 선명한 '감정' 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추억에는 감정이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설렘일 수도 사랑일 수도 슬픔일 수 도 그리움일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 감정에는 그때 주고받은 대화가 아련히 스며들어있습니다.
그림책 <아빠, 나한테 물어봐>에는 아빠와 딸의 추억이 담겨있습니다. 그 추억은 온전하고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가을이 물씬 느껴지는 따뜻한 색채와 귀엽고 부드럽게 문지른 색연필 선, 아빠와 딸의 모습을 단순하면서도 개성 있게 표현한 이수지 작가의 사랑스러운 그림은 그 추억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아름다운 가을의 빛깔을 담아낸 그림책을 보고 나면 실제로 가을 나무들이 동화처럼 삶으로 들어옵니다. 그림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그림책이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이수지 작가도 반한 버나드 와버의 글입니다.
<아빠, 나한테 물어봐>에는 아빠와 딸의 대화가 담겨있습니다. 아빠의 언어는 앞서가며 이끌기보다 뒤에서 천천히 걸으며 아이를 따라갑니다. 아이의 자발성을 존중하며 다정하고 느긋하게 아이를 따라가는 아빠의 언어 덕분에, 딸은 생명력 넘치는 아이다움으로 톡톡 튀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합니다. 이토록 쿵짝이 잘 맞는 대화가 있을까 싶은 아빠와 딸의 대화는 읽으면 읽을수록 '아! 이것이 사랑이구나.' 느끼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아빠와 딸의 대화를 한번 엿볼까요?
딸은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한 번 물어봐."
그러면 아빠는 딸이 원하는 그대로 해 줍니다.
"넌 뭘 좋아하니?"
딸은 좋아하는 동물들을 줄지어 말합니다.
"나는 개를 좋아해...... 나는 기러기가 좋아."
그런데 아빠는 '그냥 좋아하는 동물들을 이야기하는구나'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 발짝 나아가 더 자세히 묻습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 아니면 물에 떠 있는 기러기?"
모든 기러기들을 하나로 묶어 '기러기'로 생각하지 않고 하늘을 나는 기러기와 물에 떠 있는 기러기로 나누어 묻습니다. 이것은 기러기를 보지 않고서는 물을 수 없는 질문일 것입니다. 딸과 함께 기러기를 본 풍경이 있기에 그리고 아이가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귀 기울여 듣는 마음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딸의 대답은 예상을 벗어납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가 좋아. 아냐, 물에 떠 있는 기러기도 좋은데. 둘 다 좋아."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좋으냐고 물었지만 물음의 형태에 한정되지 않고 둘 다 좋다고 말하는 아이가 참으로 건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동안 아빠와의 대화 속에서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존중받고 자랐을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아빠가 나누어 물을 필요가 없었던 걸까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자세히 보려던 아빠의 마음이 아이에게도 물들었는지 아이는 아빠에게 한번 더 물어보라고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또 물어봐."
"네가 좋아하는 게 또 뭐야?"
"나는 개구리가 좋아. 헤엄치는 개구리가 좋아.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도."
아이가 좋아하는 개구리는 이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물어주고 들어주는 아빠로 인해 아이의 언어는 더 풍성해집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언어를 사랑합니다.
"나는 벌레가 좋아."
"곤충 말이야?"
"아니, 벌레."
"나는 나비가 좋아. 그리고 반짝 벌레도."
"반딧불이?"
"아니, 반짝 벌레."
아빠는 아빠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아이의 언어를 존중합니다. 성급히 교정하려 나서지 않습니다. 아이가 먼저 걷도록 뒤에서 걸으며 아이의 언어가 씩씩하게 마음껏 나아가도록 뒤에서 따라가며 바라봐줍니다.
그렇게 아이의 언어는 생기를 얻고 자유분방한 본연의 창조성과 생명력을 마음껏 키워갑니다.
"나는 비가 좋아.
비가 핑피링, 퐁포롱, 팡파랑 내리는 게 좋아.
핑피링, 퐁포롱, 팡파랑.
난 이 말이 좋아.
빗소리로 만들었어. 내가 만든 거야"
"그래, 그런 것 같았어."
이토록 눈부신 대화가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빠의 섬세한 질문, 다정한 귀 기울임, 아이의 호기심 등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빠와 딸이 함께한 추억', 함께 보낸 시간입니다. 아빠와 딸의 언어에는 그동안 함께한 추억들이 담겨있습니다.
"나는 말이 좋아. 아냐 아냐, 말을 타는 게 좋아."
"네가 말을 타 봤나?"
"회전목마 탔잖아. 기억나지? 아빠 기억나면서."
"그래, 기억나네."
"그리고 조개껍데기도 좋아해. 아빠랑 나랑 같이 조개껍데기 주웠잖아?"
"그래, 그랬지."
아이의 언어는 아빠와 함께한 시간과 경험으로 인해 폭넓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한 시간으로 인해 아빠가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아질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아빠가 기억해줄 때, 아이는 아빠의 사랑을 느낍니다.
<아빠, 나한테 물어봐>에서 딸이 아빠에게 해달라고 하는 무수한 질문은 결국 "아빠, 나 사랑해?"라는 형태만 다를 뿐 같은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빠는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는 대답을 아이와 함께 걸을 때 속도를 맞추어 걷듯 아이의 언어에 발맞추어합니다. 아이가 물어달라 하면 묻고 아이가 생각 중이라고 하면 기다립니다. 아이가 무언가 좋다고 하면 어떤 것이 좋냐고 묻고 어떤 것이 좋냐고 하면 왜 좋냐고 묻습니다. 아이의 요청에 귀 기울이고 다정히 응답합니다. 몇 번이고 반복한다고 하더라도 처음처럼 따뜻하게 묻고 대답해줍니다. 그 반복 속에서 아이는 언제나 곁에 있는 안정적인 사랑을 느낍니다. 아빠는 그렇게 사랑을 전합니다.
이 가을 이 사랑스러운 아빠와 딸의 대화를 아이와 함께 읽어보세요. 그림책 <아빠, 나한테 물어봐>는 가을의 풍성함처럼 아빠의 언어도 훨씬 풍부하게 해 줄 것입니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사랑을 어떤 언어로 표현하고 있을까요? 게리 체프먼의 베스트셀러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를 5가지 분류로 보여줍니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입니다.
Q. 나는 가족들에게 5가지 언어 중 어떤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까요? (퍼센트로 각 영역을 표현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Q. 내가 받았을 때 가장 감동적이었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일까요?
Q.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랑의 언어는 무엇일까요?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어보거나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질문입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 '선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건 '인정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가 정말 받고 싶은 선물은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이 아이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 이 드는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아이에게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사랑을 선물하기로 결정한 순간에는 스마트폰, 일처리 등은 잠시 꺼두어도 좋습니다.)
-가족 앨범 만들기
: 함께한 추억은 소중한 보물입니다. 그 보물을 잘 모아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게 앨범을 만들어 보세요. 아이와 함께 가족 앨범을 만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 사진이 찍혔던 순간에 나누었던 인상적인 대화나 감정,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넣어 주어도 좋겠습니다. 앨범을 한 번에 만들지 않고 조금씩 채워나갈 수도 있습니다. 빈 앨범을 하나를 사두고, 계절별로 꼭 추억하고픈 사진을 출력하여 붙이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 나이, 그 순간에만 쓸 수 있었던 아이의 언어를 기록해 줄 수도 있습니다. 가족앨범은 가족의 탄생과 성장의 역사가 담긴 소중한 기록물입니다.
-진짜 진짜 좋아하는 것 찾기!
: 우리 가족이 각자 좋아하는 것을 찾는데 중요한 것은 왜?라고 물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좋아하는 것의 좋아하는 부분을 사랑으로 더 자세히 발견해주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면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함께 같은 음식을 먹는 것? 아니면 밥 먹으면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 나누는 것?' 하고 물어주는 것입니다. '가을 낙엽이 좋아!'라고 대답했다면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밟는 것? 아니면 떨어지는 낙엽?'이라고 물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도 "가을 낙엽이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장면이 좋아! 낙엽비 같아서! "라는 놀라운 대답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둘 다, 또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와도 좋습니다. 이렇게 서로 물어주는 것만으로 자신도 미처 몰랐던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진짜 진짜 좋아하는 이유를 찾게 될 테니까요. 이러한 방식의 질문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 자세한 질문의 한걸음 나아감 차이에서 '자신에 대한 탐구심과 세계에 대한 감정과 감각'이 자라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