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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해문방구 Feb 22. 2022

‘이어 말하기’라는 소통법을 익히는 것

이야기의 바톤을 잘 넘기고 받는 데 필요한 것은?

‘이어 말하기’라는 소통법을 익히는 것


일주일이라는 간격을 두고 처음의 아이디어를 활동(조사, 생각, 할 수 있는 대답 찾기 등)과 연결된 아이디어로 발전시켜오는 것, 이렇게 한 주제에 대한 생각을 지속하는 것,‘행동과 이어져 있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어 말하기’ 활동이다.


1학기 어린이 물결단이 처음 마주한 어려움이 1/3 등교 상황에서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찾아 모이는 것, 그러니까 모이는 것 그 자체가 어려움이었다면 2학기 에 직면한 문제는 바로 ‘이어 말하기’가 잘 안 된다는 점이었다. 2학기에는 전면 등교를 하게 되어서 물결단 활동 날짜를 어떤 요일로도 정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 졌다. 그러나 나는 매주 금요일로 정했다. 이 결정은 아무래도 지도하는 나를 우선한 것이었다. 5학년 주제 수업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교사로서의 나와 4,5,6 학년의 어린이 물결단 활동을 함께하는 일이 나에게는 하나의 학급과 복합적인 또 다른 학급을 운영하는 것과 같은 무게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차근차근’이란 모드를 스스로에게 입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치’에 강요되는 민주주의의 압력감이 역시나 2학기에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압력을 환기하여 가장 열려 있고 수용적인 상태로 어린이 물결단을 만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어린이 물결단이 무엇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될지 모르고 뭐든 될 수 있는 활동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우선 되어야 할 조건이 있었다. 우리 반의 주간 수업을 모두 마친 후 만난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로 정한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자율성과 주체성을 격려하는 제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데 학교 자치 업무를 진행하는 교사로서의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요와 압박을 느끼다니. 이 압력에 대해서는 좀 더 탐구가 필요하니 일단은 다시 한번 ‘차근차근’ 이란 모드로 스스로 차오르는 학교 자치 업무에 대한 부담스러움을 내려놓기로 했다.


어린이 물결단 2기는 새로운 학급 임원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리더십 교육부터 다시 시작된다. 물결단 1기는 한 명의 대표가 지속적으로 오는 경우가 더 많았으므로 ‘이어 말하기’라는 말하기의 형태가 부각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2기에는 회장과 부회장이 번갈아 참여하는 반이 대다수였고, 독감 예방접종 후에 불참이나 방과 후 활동, 전학 등으로 인해 임원이 참여할 수 없어서 공석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역시나 이번 학기에도 ‘이어 말하기’라는 두 번째 어려움을 만나기 이전에 지속적으로 ‘모여서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먼저 문제를 겪은 것이다.


여러분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여러분 학급 전체가 침묵하는 것입니다.
목소리를 내주세요. 공석이 생기지 않게 해 주세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채워서 한마디의 목소리라도 내주세요.


학급 임원이 대표로 참석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경우는 같은 반에서 어린이의 목소리를 내 줄 다른 어린이가 누구든지 참여해도 좋다고 안내하였다. 한 학급에 서 꼭 1명의 어린이가 참여하여 어린이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 이렇게 참여자에 대해서 좀 더 문을 연 것은 2기에서 새로운 시도였는데 6학년 한 학급에서는 거의 매회 다른 어린이가 참석하였다. 이때 한 어린이가 처음 참여하면서도 앞서 말해온 어린이들의 생각을 모아 온 내용에 귀 기울여 사과 가이드북에 어울리는 제목을 아이디어로 내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가장 많은 표를 받으며 최종 제목으로 선택되었다. 바로 ‘당신이 사과를 못하는 이유’였다. 이렇게 더 많은 어린이가 목소리를 내고 연결한다는 면에서는 좋았지만, 이렇게 처음 참여하거나 격주로 참여하는 구조가 되다 보니 다음 어린이에게 이전의 활동 내용을 잘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이것이 매우 어려웠다. 어린이 물결단 활동은 없던 것을 만드는 일이어서 패턴화 되기 어려우니 그 상황에서 이야기된 내용을 뒤에 올 어린이에게 전하려면 핵심 내용을 기록하고 기억하여 전달하는 ‘이어 말하기’의 기술이 필요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학급 임원으로 뽑힌 어린이라고 하더라도 이들은 이렇게 일주일 간격의 시간적 거리와 4,5, 6학년이라는 공간적 거리가 있는 상황에서 이어 말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이야기의 바톤을 잘 넘기고 받는 것, 앞의 어린이는 뒤의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기록하고 정리하고 전달하는 것, 뒤에 오는 어린이는 이어받기 위해 질문하고 함께 생각하는 것, 생각한 것을 기록하여 다시 이어 말하는 것. 이렇게 계속 연결되는 ‘이어 말하기’라는 소통의 방식이 어린이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것이었다.



어린이 리더는 이어 말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 핵심을 요약하여 기록하기                         ✔ 기록을 바탕으로 기억하기
✔ 다음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기    ✔ 못 들은 내용 질문하여 이해하기

✔ 함께 생각하고 공감하며 조사하기             ✔ 조사하고 새롭게 생각한 내용 기록하기  

✔ 앞에 말해진 생각에 이어 말하기


자, 이것이 바로 ‘이어 말하기’라는 소통을 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들이다. 그런데 읽어만 봐도 짐작이 가겠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이렇게 지속적이고 노력이 필요한 소통을 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앞의 어린이가 잘 전달을 못해 올 때 당황을 하거나, 잘 전달을 못해서 미안해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번갈아 오면서 한 어린이가 4회~5회 정도 활동에 참여했을 때쯤 되면 기록을 좀 더 촘촘히 하기 시작한다.  ' 다음번에 무엇을 조사해오면 좋을까요?' 질문하기 시작한다. '다음 주까지 더 조사해오면 안 될까요?' 못다 생각한 것을 좀 더 생각해오고 싶은 열정이 붙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어 말하기’의 태도에 딱 불이 붙을 때쯤 되니 사과 가이드북 초안을 검토하는 때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활동의 끝자락에 소통의 태도가 변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니 어린이 물결단 활동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선명해진다. 어린이 물결단 활동에서 가장 중 요한 것은 바로 ‘이어 말하기’라고 하는 소통 능력이 성장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다. 하나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생각을 더해가는 태도, 어린이와 어린이의 말과 말을 번갈아 연결하며 소통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 2020년 교육과정 워크숍에서 어린이 물결단 활동이 제안되었을 때는 리더십 교육과 캠페인 활동이라는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실제 운영하면서 여기서 제일 먼저 지워진 단어는 캠페인이다. 1기를 운영하면서 활동은 무엇이 될지는 모르나 뭐든 되어도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리더십 교육과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2기의 활동을 하면서는 활동=리더십 교육=이어 말하기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 물결단은 활동은 ‘이어 말하기’라는 소통의 리더십 교육인 것이다.


어린이 물결단 활동의 끝에 보이는 결과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 되어도 좋다. 그러나 활동 과정에서 지속되고 반복되어야 것은 ‘이어 말하기’라는 소통의 경험이다.


민주주의는 소통이다. 이어 말하기는 연대하고 협력하는 소통법이다. 모범을 보이는 어린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 말한 어린이에 이어 말하는 어린이, 연대하고 협력하는 어린이를 원한다. 어린이 리더는 이어 말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고민은 너 혼자만의 몫이 아니야.
나도 그래. 우리 함께 공감하고 함께 생각해보자.
앞의 생각에 이어 생각해보자.’


라고 공감의 바톤을 이어가는 것, 동감에 이어 공감, 동감을 너머 공감의 바톤으로 앞의 어린이와 뒤의 어린이가 이어질 수 있도록 목소리와 힘을 연결해주는 것! 이렇게 목소리와 힘을 다해 소통하는 것. 이것이 바로 어린이 자치(自治-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림, 다스릴 치)에서 우선되어야 할 자치(自致-스스로 있는 힘을 다 함, 다할 치)이다. 자치의 사전적 정의에 두 가지가 있는데 다스릴 치를 쓰는 자치와 다할 치를 쓰는 자치이다. 스스로 있는 힘을 다하는 태도, 성심을 다하는 태도, 정성껏 하는 태도, 목소리를 이어 내는 것에 있어 힘을 다하는 것. 이런 충실함이 갖추어질 때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주체성이 생긴다. 그러므로 어린이 물결단이 먼저 갖추어야 할 자치는 자치(自治) 이전의 자치(自致)이다.


이렇게 1 년의 어린이 물결단 활동을 경험하고 보니 초등학교의 ‘어린이 자치’는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씨앗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성을 다해

이어 말하기 하는

소통의 씨앗을 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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