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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16. 2019

계절을 잊고 사는 이에게

프롤로그


계절의 맛 프롤로그


독립하던 첫날, 엄마가 챙겨준 사골국을 꺼내 혼자 끼니를 챙겼다.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어찌나 외롭고 두렵던지 한참 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한참을 울다 지쳐 뜨거운 사골 국에 밥을 말아 한술 뜨는데 그 맛이 어찌나 다정한지 다시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이날 처음 맛의 위로를 경험했다.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그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린 셈이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까먹는 귤,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 잔, 계절마다 구태여 찾아 먹는 음식을 세어보면 이 맛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의 삶을 이루는 것 같다.


급류에 휩쓸리듯 매일을 살아내다 보면 가끔 돌아볼 때를 잊은 적도 있다. 나를 살필 여력도 좀처럼 나지 않아 어쩐지 웅덩이에 푹 빠져 고인 채로 그대로 있던 날도 있었다. 이런 날은 퇴근길에 시장으로 향한다. 좌판 위 푸성귀나 과일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계절을 실감할 수 있다. 그 길로 제철 식재료를 사 들고 와 혼자 먹을 밥을 마음으로 짓는다. 예쁜 그릇에 담 아 상차림도 단정히 한다.


텔레비전을 켜는 대신 먹고 있는 음 식에 시선을 두고 맛에 집중해 한 끼를 챙기고 나면 희한하게 마음이 한 풀 가라앉는다. 조바심에 급히 흐르던 시간이 제 속도를 찾기 시작한다. 계절마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을 우물거리고 있으면 불현듯 떠오른 는 순간들이 있다. 잊혔던 기억과 감정을 다시 불러오면 지난 나를 돌이키게 된다. 좋은 날도 있었고, 울음을 삼킬 만한 날도 있었다. 우리는 시간을 곱씹으며 이 계절을 통과한다. 그리고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이 서 있는 이 계절도 조금 더 풍요로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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