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리 Sep 16. 2019

우리 엄마 복숭아 닮았네

눈부신 햇살 같은, 여름의 맛


우리 엄마 복숭아 닮았네

한여름의 복숭아


군산행 기차에 올랐다. 먹고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서너 달 만이다. 반찬이 떨어질 때쯤을 가늠해 한 번씩 엄마가 올라오지만 짬을 내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건 오랜만이다. 용산역에서 열차가 출발한다. 기차가 덜컹거리기 시작하면서 뭉근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집에 가는 길이 여행인 것처럼 설렌다. 등 뒤로 사라지는 창밖의 서울을 오래도록 멍하니 응시했다. 장마 전선에 갇혀 제 색을 잃은 도시의 건물들이 잔뜩 머금은 습기 때문인지 그날따라 유독 그 규모만큼 무거워 보였다. 잿빛 도시가 마저 사라지기도 전에 까무룩 잠에 빠졌다.


“… 우리 열차는 곧 군산역에 도착합니다.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여 주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경쾌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에 잠이 깼다. 햇빛을 가린다고 당겨두었던 차창 커튼을 걷었다. 출발할 때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서울의 모습이 꿈인 듯 흐릿해졌다. 모내기를 끝낸 논은 아득하리만큼 푸르게 펼쳐져 있고 그 끝에, 산 능선을 따라 녹음이 짙게 우거져 있다. 부드럽게 굴러가는 산 등성이도 정겹다. 푸른 것들을 보니 집에 가까웠구나 실감했다. 살짝 한기가 느껴져 덮고 잤던 카디건을 짐 가방에 착착 접어 넣고 내릴 준비를 했다.


역 앞에 부모님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아담하게 줄어든 두 사람의 몸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나간 그들의 세월이 실감 나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들의 젊음을, 좋았던 한창을 내가 다 집어삼킨 건 아닌지 싶어 괜한 유난을 떨었다. 삼 일간 머물면서 그간 못했던 딸 노릇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사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나이 서른이 되면 큼지막이 부모님의 필요를 채워드릴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서른의 나는 무탈하게 잘 지내는 것으로 딸 노릇을 대신했다. 이미 서너 번은 들었던 같은 내용의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처럼 맞장구치며 들어주고, 내가 얼마나 즐겁게 잘살고 있는지도 조금 부풀려 얘기해드렸다.


별일도 없이 사흘이 지나 어느새 올라가는 날 아침을 맞았다. 휴대폰 알람 소리에 못 이겨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 바깥으로 압력밥솥 김 빼는 소리, 된장찌개 냄새가 방문 틈을 타고 들어온다. 그 냄새를 맡고 있자니 보지 않아도 엄마의 분주한 뒷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엄마의 모습이 자꾸 마음을 당겼다. “아, 진짜 짐 싸서 내려와 엄마랑 살고 싶다” 하면서도 출발 시간이 가까워진 걸 보고 벌떡 일어나 짐을 쌌다. 내 말을 들었는지 엄마가 한마디 한다. “여기 내려와서 뭐할 건데, 쓸데없는 소리.” 엄마의 한마디가 마음에 내처 남는다.


자취를 시작하면서는 아침을 챙겨 먹은 일이 거의 없다. 그 시간에 조금 더 자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산 지 십 년이 다 돼 간다. 이젠 아침을 챙겨 먹는 일이 되레 부담스럽다. 그래도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 한 그릇은 꼭 다 비우려 한다. 올라가면 못 먹고사는 줄 아는 당신의 걱정을 다 먹어 해치운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설 때까지도 떠나는 나보다 엄마가 더 분주하다. 짐은 다 챙겼는지, 더 챙겨줄 건 없는지 확인하시며 자꾸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신다. 


“엄마, 서울에도 다 있어. 필요할 때 거기서 사면 되는데 뭘 그렇게 챙겨. 가지고 올라가는 게 더 힘들어.”

“아이고, 알았다. 복숭아 좀 깎아서 넣었으니까 올라가는 길에 먹어. 위도 안 좋은 애가 괜히 과자 같은 것만 사 먹지 말고. 과일이 속도 편하고, 갈증도 안 나고 좋아.” 




열차에 올라 엄마가 흔드는 손 인사에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몇 번을 더 손을 흔들다가 도착하면 전화하라는 제스처를 했다. 열차가 출발한다. 헤어지는 순간의 먹먹함은 언제쯤 적응하게 될는지, 과연 적응하는 때가 오기는 하는지 싶은 순간이었다. 이것저것 반찬이 가득 담긴 종이가방이 묵직하다. 맨 위, 비닐에 싸여 있는 사각 반찬통을 꺼냈다. 은색 과일 포크도 함께 들어 있다. 부스럭거리며 묶인 비닐을 푸는데, 주책맞게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반팔 티셔츠 소매로 눈을 꾹꾹 눌러 눈물을 훔쳐보아도 소용없다. 울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세차게 눈물이 흘렀다. 뚜껑을 여니 향긋한 단내가 폴폴 올라왔다. ‘부운홍’ 빛을 자랑하는 복숭아 껍질을 깎은 다음 칼집을 넣어 조각조각 자른 모양새가 참 예쁘다. 무른데 하나 없이 담겨 있는 뽀얀 복숭아를 보고 있자니 나를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을 마주한 듯했다. 


“아, 우리 엄마 복숭아 닮았네.”




여름이 전하는 말

보통 마트나 시장에서 만나는 복숭아는 백도 또는 황도 정도지만 알고 보면 복숭아는 다양한 품종을 가지고 있다. 복숭아는 7월 하순부터 출하되는데 그레이트(백도)와 용택골드(황도), 8월 초에는 단단한 마도카(백도)가, 8월 중순에는 말랑한 백도인 애천중도와 천중도, 그리고 역시 말랑한 황도 종인 하황도와 단금도가 출하된다. 9월 초순에는 다시 단단한 백도인 유명이 출하되고 마지막으로 9월 중순경에 장호원 황도를 마지막으로 한 해 복숭아 농사가 마무리된다.



복숭아 절임

병조림은 식감과 당도가 맛을 좌우한다. 너무 오래 끓이면 너무 물러져 흐물흐물해지고 너무 일찍 불을 끄면 단단해서 식감이 아쉽다. 당도는 기호에 따라 조절할 수 있지만 기본 비율을 물과 설탕을 1:1비율로 맞춰야 복숭아를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재료 복숭아 5개, 설탕 300g, 생수 250g, 화이트 와인 50g, 타임 약간, 레몬즙 약간

조리순서 ❶ 복숭아는 껍질을 깎아 큼직하게 자른 후 갈변을 막기 위해 레몬즙에 버무려 둔다. ❷ 냄비에 분량의 물과 설탕을 넣고 약불에 올린다. 이때 설탕이 다 녹을 때까지 젓지 않는다. ❸ 다 녹으면 화이트 와인을 넣는다. ❹ 잘라둔  복숭아를 넣고 30초~1분 정도 끓인 다. ❺ 병입 후에도 잔열로 복숭아가 익기 때문에 아삭함이 남아 있을 때 꺼내 병에 담는다. ❻ 타임을 한두 줄기 넣어 준 후 뚜껑을 닫고 뒤집어 진공상태를 만든다.

이전 03화 손에 쥔 아보카도의 그 감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