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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리 Sep 16. 2019

달달 알싸한 진저시럽

소금 한 꼬집의 힘

from unsplash


소금 한 꼬집의 힘

달달 알싸한 진저 시럽


진저 시럽을 반나절 내내 뭉근히 끓이다 보면 나무며, 천이며, 만드는 사람에 생강 향이 스민다. 이 따스하고 달큰하며 매콤한 냄새가 좋아 진저 시럽을 만드는 날이면 내내 기분이 좋다. 생강과 시나몬, 알싸한 정향과 통후추의 향. 그리고 설탕의 단내가 조화롭다. 향은 수증기를 타고 피어올라 곳곳에 서서히 스민다. 그렇게 스민 냄새는 몇 날 며칠 기분을 쓰다듬는다. 마음의 결이 저절로 고와지는 시간이다. 진저 시럽은 주로 따뜻한 물, 우유, 맥주를 베이스로 하여 마신다. 감기가 오려는지 콧속이며 목구멍이 살살 간질일 땐 뜨겁게 끓인 물에 진저 시럽을 두어 스푼 넣어 ‘찐하게’ 마신다. 감기가 나을 때까지 꾸준히 마시면 체온을 지킬 수 있어 좋다.


진저라테는 뜨겁게 혹은 차갑게, 어떻게 마셔도 맛있다. 우유와 참 잘 어울리는 음료 베이스다. 시원하게 마실 땐 얼음을 담은 유리잔에 우유나 탄산수를 붓고 진저 시럽을 서너 큰술 넣어주면 된다. 차게 마실 때 생강 특유의 매콤한 맛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데 그 덕에 끝 향이 매우 깨끗하다. 뜨겁게 마시고 싶다면 데운 우유에 두세 큰술 정도 넣어 부드러운 라테로 즐길 수 있다. 따뜻한 라테를 만들 때 우유거품기로 거품을 내 얹어주면 포근한 진저라테를 눈으로 먼저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진저에일! 진저에일은 맥주에 얼음, 진저 시럽 두 큰술, 레몬즙을 조금 넣어주면 된다. 맛과 향이 깔끔하고 달콤해 칵테일처럼 즐기기 좋다. 이렇게 만든 진저 시럽은 요리에서도 톡톡히 쓰인다. 생강이 돼지고기와 잘 어울리는 향신채인 만큼 각종 양념에 넣어주면 고기의 잡내를 없애주고 풍미를 더한다. 또 떡을 찍어 먹는 조청으로 사용해도 그만이다. 참말로 쓰임이 많다.



처음 진저 시럽을 알게 된 건 합정역 근처에 있는 한 카페에서다. 외근을 나왔다가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근처 카페서 업무를 마무리할 참으로 들어간 곳이었다. 감기 기운이 있어 커피를 대신할 메뉴를 훑고 섰더니 사장님이 선뜻 “추천해드릴까요?” 하고 말을 건넸다. “아, 네. 제가 감기 기운이 있어요. 오늘은 커피를 안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하고 말끝을 흐렸다. “저희 가게 진저라테 정말 맛있어요.” “네? 진저라테요? 아… 그걸로 주세요.” 이름부터 생소한 진저라테가 나왔다. “우유를 끓여서 만든 거라 정말 뜨거워요! 조심해서 드세요.” 찻잔 위 폭신한 우유 거품이 퐁퐁하게 채워져 있다. 어디까지가 거품이고 어디서부터 마실 수 있는 건지 가늠하려 숟가락으로 우유 거품을 스윽 밀어내 보았다. 입천장이 데일까 싶어 호롭 소리를 작게 내며 조심히 마셨다. 달콤한 우유 맛이 먼저 마중 나온다. 아, 따뜻한 우유 맛이구나, 할 즈음 목 끝에 생강의 매콤한 맛이 코를 뻥 뚫어버린다. 포근한 맛에 청량한 맛이 더해졌다 표현해야 할까? 단맛의 끝이 이리 깔끔할 수가 없었다. 진저라테에 반해버렸다.


진저 시럽을 만들어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 같아 도전하기로 했다. 확실치 않은 레시피가 많아 실패도 여러 번 했지만 수어 번 만들어가며 가감하다 보니 나만의 레시피가 완성됐다. 다양한 향신료를 가미해 독특한 맛을 구현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 두고 먹을 저장식품의 경우는 기본에 충실해야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고민 끝에 불필요한 향신료는 과감하게 줄이고 생강의 질, 물의 양, 끓이는 시간과 온도, 설탕의 종류를 잘 챙기기로 했다.


시럽용 생강을 살 땐 발이 굵고 넓은 것, 고유의 매운 향이 짙은 것으로 고르는 게 좋다. 그래야 생강 본래의 맛과 향을 시럽에 제대로 봉인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설탕은 생강 무게의 30~40퍼센트가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불이 냄비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약한 불로 반나절 정도 끓이는 것이 적당하다. 나 역시 여러 번 재료를 섞어가며 만들었던 만큼 사실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 그저 개인의 기호에 따라 레시피를 달리 고쳐 자기만의 맛을 찾아가는 게 정답이라면 정답이다.


하지만 처음 만든 진저 시럽은 “어째 조금만 더 진했으면 좋겠다”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더 오래, 더 뭉근히 달여 보았다. 그런데 이번엔 너무 오래 끓였는지 쓴맛이 덩달아 진해져 시럽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다음 번엔 끓이는 시간을 줄여 보았다. 대신 잘 우러나오도록 생각을 믹서에 갈았다. 간 생강을 설탕과 함께 잘 버무린 후 뭉근히 끓였다. 그다음 면보에 탕 약을 거르듯 짜 내렸다. 진하게 내려지는 시럽을 보고 그럴싸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허나 결론은 실패. 점도는 만족스러웠으나 흙냄새가 너무 많이 나 진저 시럽이 아니라 흙 뿌리 시럽이라 이름을 고쳐 붙어야 할 지경이었다. 마지막 방편으로 설탕 양을 늘리기로 했다. 50퍼센트로 한 번, 60퍼센트로 한 번. 그러나 단맛이 재료의 맛과 향을 가려 별 소득이 없었다. 이리저리 생각을 해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이게 원래 진저 시럽의 맛인데 내가 뜬구름을 잡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진한 맛을 내기 위해 콩국수나 팥죽에 소금으로 간을 맞추던 게 떠올랐다. 진저 시럽은 달콤하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소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애초에 못했던 것이다. 소금을 염두에 두었다가 다음번 진저 시럽을 만들 땐 꼭 소금 한 꼬집을 챙겨야겠다고 단단히 기억해두었다. 며칠 뒤 다시 같은 방법으로 진저 시럽을 끓어내며 소금 한 꼬집을 챙겨 넣었다. 잘 식은 진저 시럽의 맛을 보는데 내심 기대하는 마음이 커서인지 미세한 설렘이 마음을 동했다. 성공이다. 정말 진해졌다. 마지막 빈 퍼즐을 명쾌히 완성한 기분이었다. 자신이 가진 본래의 맛은 가리고 부족함을 완벽하게 채워낸 소금의 존재가 실로 크게 다가왔다. 어떤 것의 일부, 그 일부가 모여 완전한 전부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을이 전하는 말

생강청은 일반적으로 가열 과정 없이 당침하여 만든 저장식품이다. 반면 생강시럽은 시나몬, 정향 등의 향신료를 설탕과 함께 뭉근히 끓여낸 저장식품이다. 때문에 청에 비해 생강 고유의 맛과 향이 진하고 향신료의 풍미를 더불어 즐길 수 있다.



감기 뚝 진저 시럽

진저 시럽을 만들어 놓으면 쓰임이 많은데, 우유에 시럽을 넣어 마시면 진저라테가 되고 맥주에 얼음, 레몬즙과 함께 시럽을 넣으면 진저에일이 된다. 생강이 필요한 요리에 넣어도 좋다. 


재료 생강 1kg, 설탕 400g, 시나몬 스틱 2~3개, 정향 3~5개, 소금 한 꼬집

조리순서 ❶ 생강을 깨끗하게 씻어 껍질을 벗긴 후 편을 썬다. ❷ 약불로 올린 냄비에 생강, 설탕을 섞은 후 뚜껑을 닫고 수분이 나올 때까지 반나절 기다린다. ❸ 수분이 나오면 뚜껑을 연 상태에서 시나몬 스틱, 정향을 넣고 약한 불로 6시간 졸인다. ❹ 마지막에 소금을 넣고 저어준 뒤 뜨거울 때 소독된 용기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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