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아침부터 무척 바빴다. 어제 밤늦게 체코 여행에서 돌아와 짐도 못 푼 채 잠에 들었고, 늦게까지 자려는 아이들을 겨우 깨워 스쿨버스에 태웠다. 집안은 엉망이었고 빨래가 잔뜩 쌓여있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10시 반에는 영어수업이 있다. 생각해 보니 유독 이번주 숙제를 많이 내주셨던 것이 생각났다. 여러 개의 영상을 몇 차례보고 워크북에 답을 해가야 하는 숙제를 처음으로 내주셨다. 숙제의 3분의 1 정도 하는 성의만 보여 수업에 갔다. 수업 후에는 얼마 전 주재원의 아내로 오셔 처음 뵙는 분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그 후에는 아이들을 데리러 갔고, 돌아오는 길에는 한인 마트에 들러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아이스크림을 사고, 어묵탕 끓일 어묵을 샀다. 그리고 그 옆 현지 마트에서 간단하게 장을 봐왔다. 돌아오니 저녁 차릴 시간. 저녁 먹고 나니 아이들 씻기고 재울 시간.
달리기를 못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 이렇게 구구절절 기나긴 일과를 나열하다니. 여행지에서 달리기의 짜릿함을 느껴 평생 러너가 될 것 같다고 해놓고 그다음 날 이런 핑계나 대고 있자니 참 웃기다. 물론 아이들 잘 준비할 때 잠깐 나가서 달리고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남편이 말 안 듣는 두 아이를 씻기며 버거워할 테고, 아이들은 엄마가 올 때까지 잘 생각을 하지 않고 신나게 놀며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늦게 잠들면 내일 아침 아이들이 또 피곤해하겠지. 잠깐 나가서 달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의 미션을 달성하고자 가족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달리지 못하는 날 또한 이 달리기를 이어가는 과정의 일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실패하는 날도 있을 것. 그것으로 배우는 것도, 깨닫는 것도 있을 것. 그것을 통해 또 초보 러너로서의 나를 또 알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날은 달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달리기를 미루지 말고, 아이들이 오기 전에 마쳐두는 것이 좋겠다는 걸. 소중한 걸 하나 깨달았으니 괜찮은 걸로.
Day 9. 철인 3종에 0.1걸음 다가선 날
오늘은 몇 년 만에 수영장에 갔다.
'수영을 해야지'라는 생각은 종종 했었고, 작년 이맘때 폴란드에 왔을 때도 집 바로 근처에 큰 수영장이 있어서 레슨과 등록도 알아봤었다. 레슨 자리가 없다고 하면서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못 가고 있었는데, 수영을 잘하는 친구가 있어 덕분에 함께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오전 9시에 가서 1시간 수영을 했다. 배우긴 했지만 아직 자유수영이 서툰데, 친구가 조금씩 알려주어서 호흡과 팔을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 수영도 서툴고 폐활량도 부족해 50m 수영장의 절반 정도밖에 가지 못한다. 그래도 수영의 스타트를 끊어서 무척 뿌듯했다. 열심히 수영을 하고 나니 허기가 져서 친구와 함께 치킨 샐러드를 맛있게 먹었다.
수영을 마치고 집으로 가지 않고 전에 갔던 자메크 토파즈 공원에 가서 달렸다. 어제의 교훈으로 알게 되었듯, 아이들이 오기 전에 달리기를 마치는 것이 좋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달리러 다시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날씨가 무척 쌀쌀했다. 따뜻하게 겉옷을 걸쳐 입고 주차장부터 호수까지 뛰니 3분이 걸렸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호수 한 바퀴 도는데 딱 5분 정도 걸렸다. 마지막에 2분 걸으면서, 쌀쌀한 날씨의 러닝 10분 만에 마무리. 수영과 달리기를 함께 한 첫날이었다. 이제 자전거만 타면 철인 3종에 한 발짝 다가서는 것!
수영 후 호수공원 달리기
Day 10. 화가 난 채로 밖으로 뛰쳐나간 날
저녁밥을 차리기 전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두 아이들 때문에 화를 잔뜩 내고 짜증이 가득한 상태에서 나갔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에게 늘 책을 읽어주는데, 둘째가 자꾸 다른 것을 하며 산만하게 방해했고, 결국 물을 쏟고 테이블에 있던 모든 책과 태블릿 등이 모두 젖어 잔뜩 화가 나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니고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이지만, 그 순간에는 화로 가득 차있었다. 저녁밥을 하려는데 요리를 시작하면 오늘 또 달리지 못할 것 같아서 저녁을 차리기 전 10분만 달리고 오기로 했다.
운동화를 신는 동안에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데, 약간 설레는 마음이 느껴졌다. 밖으로 나와 달리기 시작하니 화로부터 도망칠 곳이 있다는 게 좋았다. 그것도 자연으로. 그것도 건강해지는 방법으로.
쌀쌀했지만 하늘이 파랬고, 버드나무가 바람에 흩날렸고, 뒤늦게 벚꽃이 활짝 피어있는 곳도 있었다. 기찻길로 달려가는데 큰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매연을 가득 뿜고 지나가서 무척 짜증 났다. 그 시끄러운 소리도, 매연도.. 앞으로 계속 달려가면 그 매연을 계속 맡아야 할 것 같아서 골목길로 바로 방향을 틀었다. 굳이 스트레스받으며 가려던 길을 고집할 필요 없지. 차가 거의 없는 마을 골목길이 평화로웠다. 나무 구경, 꽃구경, 집구경. 예쁜 집을 보면 '나중에 저렇게 집을 지어볼까?'생각도 하면서. 오감을 깨우기 위해 손끝으로 나뭇잎도 만져보았다. 쉬지 않고 달리다 돌아왔다. 별로 힘들지 않게 많이 뛰었다 생각했는데 7분 20초. 기대만큼 나쁜 감정이 다 가라앉아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좀 상쾌하게 기분 전환이 되었다.
Day 11. 수영장까지 달려가기
집에서 동네 수영장까지 950m. 저번에도 뛰어가볼까 하다가 짐이 많아서 차로 갔는데, 오늘은 도전해 보기로 했다. 최대한 짐을 줄여도 수영복, 수건, 세면도구, 그리고 폴란드 수영장에서는 필수로 가져가야 하는 슬리퍼까지. 큰 백팩이 없어서 양쪽 어깨에 짐을 하나씩 걸고 달리기 시작했다. 짐이 있으니 뛸 때마다 불편하고 자꾸 흘러내려 뛰기가 쉽지 않았다. 자세도 어정쩡. 심지어 짐이 무거워 빨리 숨이 차고 빨리 힘들어졌다. 이건 무슨 극기훈련도 아니고... 6분 동안 헉헉거리며 달려 수영장 직전까지 도착. 주차장에서는 천천히 걸어가며 숨을 고르고 몸을 풀었다. 짐이 많으면 제대로 뛰기가 어렵다. 빨리 자전거를 사서 짐을 바구니에 넣고 수영장에 가야겠다. 그리고 수영을 마친 후 자전거 공원으로 가서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면 초미니 철인 3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