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라인 :멈춰진 시간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비상구로 걸어갑니다
그러는 동안은 새로운 나를 깨닫고 무엇이든 할 것 같은 희망도 생깁니다.
물론 권선징악 혹은 이상적인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영화를 본 후입니다.
이 과정 또한 나를 다잡는 명상만큼이나 큰 마음의 재설정이 되는 순간입니다.
‘다시 할 수 있다’ , ‘괜찮아’
영화 아델라인의 멈춰진 시간 (원제 the age of Adaline- 분명 이 제목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영화에서 그녀의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라 그녀가 노화를 더 이상 안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녀의 나이가 고정되어 있는 듯하다는 것인데
역시 한국어 의역에는 많은 경우에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 혹은 다른 문홰의 어떤 것을 왜곡하는 것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의 내용보다는 아델라인이라는 그 주인공의 마음에 울림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어땠을까?
몸이 더 이상 늙지 않으니 신나는 것일까?
아니면 우월감에 빠질 것인가?
또 그 나 이듬이 사라진 몸을 실험해서 비밀을 알아내려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자신을 저주할 것인가?
혹은 주변에 다른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는데 혼자만 그대로 있어 어떤 외로움을 느끼게 될까?
아니면 오랫동안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익히고 모아서 더 많이 아는 자신을 마치 신적인 존재처럼 인지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될까?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 혹은 친구들 조차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는 자신이 외로울까?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그 해피엔딩은 영원한 것이 아닌 유한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시작이 있고 그 과정에서 수없는 갈등과 기쁨과 말할 수 없는 감정들과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과 마주치면서 지나오지만 끝이 있어 더 소중해집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
그래서 삶이 소중합니다.
그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명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