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 ‘소리’를 보면
4살 생일이 얼마 전에 지났습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만 이리저리 머리를 둘러 대다가도 나를 빤히 쳐다봅니다.
검은 눈동자 안은 밤이면 반사를 하지만 낮에는 검고 깊은 느낌이 듭니다.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알 수는 없습니다.
만약 뉴럴링크라도 달았다면 확실치는 않아도 어떤 뇌파가 있다는 것은 알 테지만 어차피 그것도 분석을 통한 해석의 영역이지 그것이 진정 강아지가 의도하는 생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참을 계속 쳐다봅니다. 눈을 떼지 않고 같이 쳐다봅니다.
강아지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이렇게 쳐다보고 있을까?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면 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아니면 인상을 찡그리면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오만상을 짓지만 강아지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나를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조금 지나니까 꼬리를 흔들어 대기 시작합니다. 분명 저건 강아지들의 ‘즐겁다’는 의사표현이니 뭔가 기분이 좋다는 것, 그 뜻은 어쩌면 나더러 같이 산책을 나가자 라던지 아니면 뭔가 간식을 달라는 것이 아닐까 짐작은 하지만 여전히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 상황에 산책이나 간식을 주면 반드시 꼬리는 더 세차게 흔들고 따라나섭니다. 그러다가 갑자가 ‘저리 가’라고 외치면 그냥 ‘왜 저러나 “ 하는 표정으로 그냥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그냥 다시 쳐다봅니다. 그렇게 몇 번 저리 가를 외치면 그제야 어디론가 가버립니다. 소파뒤에 자기만의 은신처 혹은 그보다 뭔가 더 기분이 안 좋을라치면 케이지로 들어갑니다. 사실 기분이 안 좋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혼을 내면 늘 거기로 가는 것을 보면 기분 안 좋을 때는 케이지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강아지를 부르면 달려옵니다. 다시 똑같은 상황이 시작됩니다. 한 참을 쳐다봐도 아무런 변화 없이 똑 같이 나를 쳐다봅니다. 편견이 없는 강아지의 행동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전두엽의 크기가 다른 이유로 강아지는 우리만큼의 쓸데없는 고뇌가 없는 것일까요? 그래서 이렇게나 사심 없는 눈빛과 행동? 물론 간식과 산책을 위한 집념과 집착은 사심이 100%인 것이지만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거기서 나를 반사시키게 됩니다.
강아지는 그냥 지능이 낮아서 생각이 없는 거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더 알아서 더 영리하고 더 예민해서 우리가 느끼는 이 안다는 것은 분명 우리의 현대인의 삶에서는 필요하지만 인간이라는 근본에서는 혹은 환경을 위해서는 필요할까 생각합니다. 지인의 괘변이겠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개와 고양이는 사람과 함께 살지만 사람보다 더 진화했던 종족이었고 그들이 망처 버린 세상에 차라리 발전을 멈추고 지금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개와 고양이는 오히려 사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진화의 방향에는 아무 상관없는 은유적인 해석입니다만 지금 사람이 하고 있는 이 파괴적인 행동들 보다는 강아지의 순수한 눈빛은 아니 순수할 수밖에 없는 눈빛이라도 거기에서 나에 대한 감성을 찾아갑니다.
나화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을 쳐다봅니다.
가만히 쳐다보면 내가 했던 일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일들 그래서 반성하고 혹은 위로하고 위안을 받습니다.
가만히 강아지를 쓰다듬어 봅니다. 그러면 꼬리를 흔들고 편안하게 늘어집니다. 그리고 그 어떤 비교나 편견이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봅니다. 나 또한 강아지를 바라보면서 그 변함없는 표정에서 오히려 위안을 얻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편견이 없이 단지 맛있는 음식과 산책을 요구할 뿐 그 이상의 직책과 돈 그리고 성공을 향한 욕심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만큼으로 충분히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서로 비교하며 누가 더 나은지 아니면 부족한지 아니면 스스로를 자책하면 나는 왜 강아지가 되었을까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왜 태어나서 이모양으로 살아가는가가 아닌 나는 이렇게 매일을 잘 살아가고 있다 정도만 하더라도 된 것이고 다만 매일의 어려움 그리고 고민들을 내가 받을 필요가 있는 것 혹은 받고자 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받고 나는 그저 나로 존재하는 것. 다른 이들이 던지는 쓰레기 같은 말이나 비난 같은 것들을 강아지의 눈빛처럼 그저 그렇게 바라보고 특별히 대응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현대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비교하고 질투하고 욕심하고 야비하게 서로의 삶을 방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도 나도 모두가 한 명의 개인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한 명으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부모와 친척들과 친구들의 관계도 각자의 개인의 삶에 더한 약간의 관계정도면 충분합니다.
차분하게 너무 감정을 담지 말고 차분히 바라봅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좀 가라앉고 잠깐 쓰다듬어주면 그저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의 마음도 강아지의 등도 마찬가지고 쓰다듬어 줍니다.
거기에는 지나친 반응보다 차분한 눈빛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