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함메르쇠이 VILHELM HAMMERSHØI
빌헬름 함메르쇠이 VILHELM HAMMERSHØI
그리스의 시인 시모니데스는 “그림은 침묵하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독일시인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의 세계>라는 그의 저서에서
“형상은 침묵하고, 침묵하면서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는 형상, 즉 이미지를 “말하는 침묵”이라고도 표현했어요.
근래 들어 가장 산뜻하면서도 깊게 읽었던 책은 세라 메이틀런드의 <침묵의 책>입니다.
침묵을 향하여 아주 담대히 나아가는 책인데 결국은 인간의 심연에 도달하게 하는 글이었어요.
아름다워서 아껴가며 읽은 글이었어요.
마음은 인간의 심연이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침묵이고 침묵은....
존재일거라는, 책을 덮으며 나만의 생각을 살짝 엮어보기도 했습니다.
빌헬름 함메르쇠이는 덴마크 사람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모든 작품의 주제는 적어도 제가 보기엔 침묵과 고요입니다.
제 글방 브런치에 그의 ‘침실’이란 그림을 걸어놓고 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는 그림이죠.
간결하고 단아한 차림새에 가구도 지나칠 정도로 단순해서 어쩌면 엄격해보이기도 합니다만,
어둡지만 아련하고 흐릿하면서 부드러운 톤이 엄격함을 잠재워 쓸쓸하면서도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요. 침묵하는 여인,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은 고요하죠.
그의 색조는 거의 회색 톤입니다.
검은 색은 짙은 회색처럼 보이고 옅은 검은색은 밝은 회색처럼 보입니다.
함메르쇠이는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를 좋아했는데
휘슬러는 회색의 명암과 농담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그리자이유(grisaille)기법을 좋아했고
함메르쇠이도 그 영향을 받은 거죠.
충만한 고요를 그리는데 완벽한 빛,
침묵을 나타내는데 이보다 더 좋은 색채가 있을까요.
그는 실제로 지극히 내성적이었다고 해요. 만나는 사람도 소수였지만
그들과 대화를 할 때도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고독하고 우울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요.
사람을 정시하지 못했던 그는
그래서 더 사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했을 거예요.
어쩌면 사람의 뒷모습에서 더 깊은 내면을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고보니 꽤 오래전에 읽은 프랑스 사진 작가 에드아르부바가 찍은 사진에
미셀트루니에가 글을 쓴 ‘뒷모습’이란 책도 기억납니다.
‘돌아서서 가는 뒷모습을 보면 내가 알고 있던 그가 아니라는 배신감이 든다는’...글이 있었어요.
그는 코펜하겐의 해변가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거의 모든 작업을 했습니다.
자신의 아내 이다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의 뒷모습을 주로 그렸습니다.
그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무엇을 찾아냈을까요?
그의 앞에서는 보이지 않던 그들이 지닌 우수와 고독을 그리고 숨기고 싶었던 감정들을 그는 발견한 것일까요? 제게두 선명한 그림이 한 장 있어요.
대학 다닐 때 갑자기 아버지가 저의 자취방을 찾아 오셨어요.
용돈을 주시고 선걸음에 가신다고 해서 섭섭한 마음으로 배웅을 나갔지요.
길다란 골목길을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아, 아버지가 늙으셨구나, 아버지가 쓸쓸해 보여.
(지금의 저보다 더 젊으셨는데요)
난데없이 다가오던 선명한 직관 같은 것....햇살이 눈부신 가을 오후였는데요.
‘창가에서 독서하는 여인A Woman reading by a window’은 작가의 어머니입니다.
다른 그림에 비해서 조금 환한 편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고요와 침묵이 작지는 않아요.
주변 환경은 간결하고 문은 닫혀 있습니다.
살짝 젖혀진 커튼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길게 스며듭니다.
그녀는 환한 햇살을 찾아서 창문 가까이 의자를 옮겨 앉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그녀는 그늘 속에 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그녀,
이제 초로의 길에 들어선 그녀,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합니다.
시집일까요? 성경일까요?
어쩌면 작가의 의도대로 그녀는 그저 책을 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는 대신 하염없는 생각의 강을 흐르고 있을것같기도 해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아들이 그리고 있는 자신의 생애에 대하여,
아들의 붓질소리가 오히려 더 깊은 침묵을 만들어주고 있는 공간에서 말이지요.
그림의 왼쪽ㅡ은 오른쪽보다 내향성이라고도 하지요ㅡ에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그녀,
창문과 문은 그림 속에서 닫힌 듯...
그러나 여백을 만들어냅니다.
유명한 프랑스 영화 감독이 했던 말,
‘여백은 신의 공간’ 이란 놀라운 문장도 기억나는군요.
창문 밖 정원에는 분명 나무들이 있을 텐데 작가는 그저 흐릿하게 빛으로만 채워 넣습니다.
모든 소소한 것들을 제하면서 작가는 고요 속으로 스며들어갑니다.
그는 그렇게 침묵이라는 시를 써서 이렇게 우리에게 수많은 말을 건네고야 맙니다.
그는 겨우 49살에 죽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우표를 만들어 그를 오마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