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아리따운 간호사에서 선교사로, 또 아이들 건강을 체크하는 사람으로!

by 미라클코치 윤희진

<우리 엄마>라는 책을 받았다. 17명의 작가들이 어머니에 대해 쓴 글이다. 저자들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솔직 담백하게 적은 글을 보니, 나도 엄마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엄마는 경남 삼천포(지금은 사천시) 작은 어촌 마을에서 1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줄줄이 딸린 동생들 때문에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얘기하지 않으셔도 알 것 같다. 외숙모가 외삼촌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외사촌들을 데리고. 그 후 외삼촌은 쓸쓸히 지내시다 돌아가셨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외삼촌이 돌아가신 지도 꽤 되었기에 남동생을 잃은 슬픔도 겪어보셨다. 어떤 느낌인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이어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몇 해 전에 외할머니까지 별세하셨다.



엄마는 간호사셨다. 진주 간호고등학교(지금은 경상 국립대학 간호대학으로 승격되었다)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지내다 보건공무원이 되셨다. 합천 공무원 총각인 아빠를 만나 4남 1녀가 있는 집 맏며느리가 되었다. 엄마의 시집살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가 시집을 왔는데, 큰삼촌은 직장에 다니고, 밑으로 작은 삼촌들은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다. 막내인 고모는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러니 내가 태어났을 때 함께 길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고모랑 나는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사이다. 다른 조카들과 달리 나를 예뻐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리라.



292670_284509_456.png 엄마가 근무하셨던 합천군 보건소_현재의 모습



어찌 되었건 엄마는 줄줄이 딸린 시동생들과 시누이들을 보살피느라 바쁘셨다. 물론 공무원으로 사시기도 바빴지만. 장녀인 데다가 맏며느리로 사셨던 어머니. 이제는 친정부모님도, 시부모님도 다 돌아가셨다. 그래서 양가 집안의 가장 큰 안주인이 된 것이다. 엄마가 간호사 시절 찍은 사진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엄마는 간호 공무원 주임, 즉 6급 공무원으로 명예퇴직을 하셨다. 정년퇴임 2년 정도를 남겨 둔 시점으로 기억된다. 아빠는 5급 사무관으로 정년 퇴임하셨고. 1년쯤 이따가 명예퇴직하신 것이다. 퇴임하셔도 엄마는 일을 계속하셨다. 퇴임 후 아동복지센터를 운영하고 계신 아버지를 도와 지역사회 아동들을 위해 봉사하신 것이다. 물론 보수가 있지만, 하는 일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이후 아버지를 이어 지역 아동센터장으로 섬기게 되었다. 어찌나 서류 작업할 게 많은지 나도 친정 가면 도와드렸었다. 나라에서 지원받는 사업이었기에 서류를 꼼꼼히 작성해야 했다.



일을 쉬지 않아 엄마는 늙는지 몰랐다. 그런데 얼마 전 친정에 가서 엄마의 얼굴을 뵈었는데, 주름살도 많아졌고, 머리는 히어 졌다. 아리따운 간호사는 온데간데없고. 코로나 19가 오기 전 엄마는 아빠와 함께 필리핀 선교를 하러 가셨다. 물론 그전에 아빠는 목사 안수를 받으셨다. 장로로 오랫동안 교회에서 섬기시다가 선교에 대한 소명을 받으셔서 필리핀으로 선교하러 가신 것이다. 영어를 두 분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셨는지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 19가 세계를 뒤덮고, 부모님은 어쩔 수 없이 철수하셨다. 그러나 언젠가 코로나가 나아지면 다시 들어가시려고 지금도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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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요즘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합천 유아원에 출근하신다. 코로나 19라 아이들 열을 체크해 주는 사람을 채용했는데, 거기 엄마가 가게 된 것이다. 늘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시는 엄마, 간호 공무원으로 일하시면서도 배움의 열정을 가졌던 엄마. 엄마는 고졸이 아니라 대졸이시다. 그것도 전문학사를 거쳐. 자그마한 대학에서 문학도 배우시고, 사이버대학에 다니시더니 결국 졸업장을 따셨다. 지금 생각해도 바쁜 와중에 어떻게 그걸 다 해내셨을까 의문이 든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엄마는 교회 권사로 오랫동안 섬기셨다. 지금은 이상한 교회 목사, 사모, 집사(?)들 때문에 소송에 휘말려 계시지만. 있는 돈 없는 돈 바쳐가며 섬겼는데, 배신도 그런 배신이 없다. 우리 부모님이 그 교회에 한 일이라고는 교회 돈이 없을 때마다 보충해서 재정을 맡은 것 밖에 없는데. 정확한 연유는 모르지만, 그 교회와 좋지 않은 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계시다. 어서 이 문제가 좋게 해결되었으면 한다.



사랑하는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이 한 편의 글에 어찌 다 담을 수 있을까? 그 세월의 흔적을 내가 어찌 다 옮길 수 있을까?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다. 엄마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또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우신지. 나는 참 못난 딸이다. 여태껏 엄마에게 용돈 한 번 드린 적 없다. 철부지 딸이다. 늘 기도만 빚지고 사는. 엄마가 계신 까닭에 내가 존재하는데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엄마께 효도하고 싶다. 엄마의 시간은 나보다 더 빨리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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