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하는 대화의 중요성

결국 아이는 경청하는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 한다

내가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듣는 둥 마는 둥 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그 사람과는 다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만큼 기분 나쁘고 싫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말할 때 귀 기울여주고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내 아이를 대할 때에도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 필요하다. 마치 내 아이를 임금을 대하듯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면서 내 온 마음을 다하여 아이가 하는 말에 집중하며 듣는 것. 그것이 경청이다. 아이는 엄마를 원하고 있는데, 엄마는 엄마의 할 일에 바빠서 아이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한다면 바른 자세가 아니다. 그리고 아이는 이 모든 것을 다 흡수한다. 어릴 때를 잘 생각해보자. 내가 말을 할 때 부모님은 잘 들어주시는 편이었는가? 아니면 부모님 일에 바쁘셔서 눈길조차 받지 못했었는가? 그때의 기분은 어땠는가? 아마 지금도 그 서운함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참 바쁘셨다. 공무원이셔서 거의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거나 이런 시간이 별로 없었다. 부모님과의 추억이 몇몇 남아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다.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할머니와의 관계가 각별했다. 친구들이 엄마와 티격태격하고, 엄마께 반항하듯 나는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하긴 할머니께서 도시락도 싸 주시고, 고등학교 때는 경남 진주까지 오셔서 엄마 역할을 대신해 주셨다. 그때는 얼마나 철이 없었던지, 할머니께 반항도 많이 하고, 간섭하지 말라며 참 많이 원망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내가 많이 어리고 미성숙했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께서 2018년 여름 하늘나라로 가시고,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 어찌 보면 내겐 엄마 같은 분이셨기에 더 그런 것 같다. 돌아가시기 전 몇 년 간은 알츠하이머 병으로 고생하시다 가셨다. 그러기에 정말 더 가슴이 시리다. 물론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지내고 있으시니 오히려 감사하다. 고통과 눈물 없는 그곳에서 말이다. 할머니는 6, 25 전쟁통에 본인보다 18살 많은 총각(할아버지)과 결혼하셨다. 그리고 필자가 8살 되는 해에 남편을 여의고 오랜 시간 과부로 지내 오셨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만약 철이 일찍 들어서, 할머니와 오랜 시간 보낼 수 있는 그 고등학교 시절에 말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듣고 공감해 드렸다면 어땠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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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의학자이자 시인, 수필가인 올리버 웬델 홈즈는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일인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명언이라 할 수 있다.

듣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인 소통이다. 물론 여기서 듣는 것이라 함은 ‘경청’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오해한다. 말하는 것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며, 듣는 것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행동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듣는 것이 얼마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인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상대방이 말할 때 잘 듣는 것이 얼마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인지는 잘 들어본 사람들은 금방 공감할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말투도 읽어야 하며, 적절한 리액션도 해줘야 된다. 그리고 중간중간 질문을 통해 말하는 사람이 본인의 화제에 대해 더 잘 이야기하도록 해 주는 역할도 듣는 사람의 역할이다.

래리 바커와 키티 왓슨이 쓴 《마음을 사로잡는 경청의 힘》 에서,

“경청은 대화의 과정에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경청할 때 상대방은 자신의 감정이 인정받았다는 안도감을 갖게 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위협감이나 위화감을 해소해 준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생존 본능이 있다. 이 본능이 위협받을 경우 어떤 상호 작용도 적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상대방에게 어떤 형태로든 저항하게 된다. 경청은 이 날카로운 본능을 조용히 누그러뜨리며 상대방이 편안히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경청을 통해 당신은 상대방에게 당신의 말과 메시지, 감정을 아주 쉽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라고 말하고 있다.


듣는 능력이 말하는 능력을 결정한다.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말부터 하는가? 아니면 듣기부터 하는가? 당연히 듣는 것부터이다. 수 만 번 엄마라고 들은 후 아이는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듣는 것이 잘 듣는 것인가? 올바른 경청의 자세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경청을 수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으로 여겨라. 상대방의 이야기에 대한 나의 반응에서 머물지 말고,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섣부를 예측을 하지 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가 마를 꺼내기 전에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예측하거나 단정 짓는 태도는 정말 위험한 행동이다.

셋째,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라. 대화를 할 때 바람직한 태도는 쌍방이 한 화제에 대하여 탁구를 하듯 오고 가고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잘 듣다가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듣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넷째, 상대방과 눈을 마주쳐라.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음에도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처사로 보일 수 있다. 무심코 라도 상대방의 눈을 회피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다섯째, 관심을 쏟고 듣는 자세를 유지하라. 상대방이 말을 끝맺을 때까지 듣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듣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이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경청은 쉬운 일이 아니다.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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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와 사와코가 쓴 《말없이 사람을 움직인다 듣는 힘》이라는 책 표지에 이런 글이 있다. “잘 말하는 사람에게는 귀를 열지만 잘 듣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은 힘이다.”

정말 공감이 되는 문장이다. 내가 말을 할 때 잘 들어주는 사람, 공감하면서 들어주는 사람, 경청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자녀 또한 잘 들어주는 부모, 경청해주는 엄마와 대화하고 싶어질 것이다. 때로는 아이의 말을 듣기보다 내가 가진 가치관을 아이에게 심어주기 바쁜 엄마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럴 때가 있다. 그러나 자녀도 가치관과 철학을 가진 인격체이다. 그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고 끌리는 것이다. 자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인다면, 자녀는 먼저 다가와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보따리를 풀어놓듯 쏟아낼 것이다. 자녀와 이야기 꽃을 한 송이 한 송이 피워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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