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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Nov 03. 2024

[프롤로그] 그러니까, 이 글은 왜 쓰는 건가요?

2023년 초 어느 날부터였습니다. 


구하고자 했던 데이터를 구할 수 없게 되었고, 써야 할 글은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악몽으로만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피폐한 정신이 몸을 갉아먹기 시작했죠. 이런저런 제도적/심리적 도움을 받으며 들로 산으로 쏘다녔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할 줄 아는 거라곤 말하고 글 쓰는 것뿐이었기에, 한풀이도 글쓰기로 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럴 때마다 브런치를 찾아 글을 게워냈지만 딱히 가상의 독자를 생각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내가 겪고 있던 매일을 모아서 일기를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있더라고요. 해야 할 일이 목전임에도 불구하고 브런치를 끄적이다 반나절을 보내기가 일쑤였어요. 


영어로 논문을 쓴다고 해서 영어가 한국어처럼 편한 경지에 이르진 못했습니다. 한 때는 야심 차게 꿈꿨던 그 경지에 오르는 것이 힘들다는 점을, 지금은 압니다. Bilingual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저는 성인이 된 이후 유학을 온 케이스라 영미권에서 나고 자라며 영어와 한국어를 체득한 "선천적" bilingual은 아니거든요. 언어가 능통하지 못함에 대해 저처럼 가슴 쳐대며 답답함을 호소한 사람도 많지 않을 겁니다. 동료, 교수들, 그리고 상담가에게 제 심경을 토로하면서 자주 했던 말이 있어요. "한국어로는 내 생각을 티끌 같은 먼지의 단계로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지만, 영어로는 빵 한 덩이 혹은 초콜릿 한 조각의 둔탁함으로 밖에 설명하지 못한다"라고요. 누군가는 그 간극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저는 제 머릿속의 생각이 말과 글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소실되는 정보가 많은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대학원생이란 결국 말과 글로 먹고사는 훈련을 받는 과정인데, 매일 얼뜨기 같은 나를 보는 것도 정말 스트레스 넘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듯 현실의 장벽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 처음 왔을 당시 저는 아주 깜찍하고 순수한 생각을 갖고 있었죠.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은 없을지니, 내가 열심히 '노오력'만 하면 먼지와 빵 덩어리의 간극을 물 샐 틈 없이 메울 수 있고 그런 날이 빨리 오리라 믿었습니다. 지금은 어떠냐고요? 시간이 지나서 실력 향상이 된 측면도 분명 있겠지만, 역시 포기하면 편하다죠? 약간의 포기를 곁들여 지금은 '배 째라' 상태입니다. 아니, 뭐,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어쩌겠어요. 


제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언어로 일기만 사부작사부작 써대다가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브런치에 글 쓰는 것도 재미있고, 한국어로 글을 쓰면서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도 생기는데, 이 둘을 조합해서 뭔가를 또 해보면 어떨까 싶었죠. 


남들보다 조금 늦게 유학을 나왔고, 유학 나오기 전까지도 매년 크고 작은 시험을 치르느라 20대를 다 보냈어요. 할 줄 아는 거라곤 무언가를 읽고 암기하거나 이해해서 그럴싸한 구조의 글을 쓰는 것 외엔 없었고요. 시험을 칠 때는 암기해서 손으로 써내는 것,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무언가를 읽고 이해한 후 타이핑으로 글을 써내는 것 - 목표는 다르지만 본질은 큰 차이가 없더라고요. 결국 어떤 현상에 대해 파악하고 글을 쓰는 것 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겠다는 결론이 나왔죠. 그렇다면 그 "글쓰기"에 대해 글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아니, 잠깐. 

금방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세상에 글 잘 쓰는 글쟁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논문을 잘 쓰는 사람, 소설을 잘 쓰는 사람, 각본을 잘 쓰는 사람,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 등등. 그 앞에서 주름잡자는 건가, 생각하니 벌써 불편했어요. 그렇다면 학술적 글쓰기로 국한시켜 볼까, 하다가 아니 제가 무슨 학문의 대가도 아닌데 논문에 대한 글을 쓴다니, 벌써 거부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렇다면, 그 "글쓰기"에 대한 훈련을 받는 과정에 대해 글을 써보면 어떨까, 관점을 바꿔보았습니다. 흔히들 박사학위를 운전면허증에 많이 비유하곤 해요. 필기시험, 장내기능, 도로주행을 통과해야 받을 수 있는 운전면허증이지만, 그걸 받았다고 해서 운전을 잘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잖아요. 운전을 비로소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된 것이지, 운전을 잘하기 위해서는 도로에서 삽질도 많이 하고 욕도 먹어보고 식은땀 흘리며 차선 변경도 하고, 뭐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아야 하니까요. 저는 박사학위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디 가서 "박사 입네" 하고 거들먹거릴 수 있는 마법사 지팡이가 아니라, "저도 운전할 수(는) 있어요"를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학위를 받은 후에 어떤 학자 내지는 전문가가 될지는, 그 사람이 어떤 운전 경험을 쌓고 어떤 도로에서 운전하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테니까요. 제 목표는 거창하지 않아요. 그저 장롱면허가 되지 않게끔 하는 것, 일단은 거기서부터 시작할래요. 


 



그렇게 소박한(?) 목표가 있는데 그럼 이 글을 왜 쓰는 거냐고요?

글쎄요. 사실, 여전히 일기의 성격이 강합니다. 제 30대의 상당 부분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간 "운전면허증". 누군가는 쉽게 땄을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마냥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래도 긴 빨대의 끝이 보이는데, 이 터널을 통과하면서 알게 된 것도 많은데, 그래도 한 번쯤 해볼 만했는데. 지금까지의 결론이 그렇다면, 내 모든 기억을 그러모아 글로 남겨보고 싶었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저를 위해. 


제 선생님이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박사 공부를 한다는 것은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이 훈련받는 것과 같다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소를 갖출 수 있게끔 정밀한 트레이닝을 거쳐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이 되게끔 만드는 과정이라고요. 물론 운동선수들을 정말 존경하는 저로서는 이 비유가 완전 찰떡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몸이 고된 것이 훨씬, 갑절, 힘들 겁니다), 필살기를 연마하기 위해 오랫동안 땀과 눈물을 쏟는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지나온 과정을 '정치학 선수가 되기 위한 훈련'으로 명명하겠습니다. 빨대같이 좁고 긴 훈련의 끝을 지나 "운전면허증"과 같은 박사 학위를 받으면,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대요. 고작 그 바다에 다다르기 위해 30대를 다 쓰다니 투자도 무슨 그런 쪽박 투자가 있냐, 싶겠지만 뭐 어때요. '정치학 선수'가 되었으면 족하다고 생각하렵니다. 


각설하고, 이 글은 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정치학'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에요. 세상에 훌륭한 정치학자들은 차고도 넘치고, 그들의 화려한 이력서, 말빨과 글빨은 이미 인터넷과 미디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철저히 '정치학 선수'가 되기 위해 제가 받은 훈련 과정에 대해서 쓰고자 합니다. 혹여 나중에 제 부모님이나,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너의 박사과정은 어땠니?"라고 묻는다면 구구절절하게 대답하지 않고 이 링크를 보내줄 겁니다. 네, 맞아요.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래요. 나름 파란만장했는데, 그래도 그 안에서 많이 울고 웃었는데, 어떻게 1-2시간 안에 간단하게 말할 수 있겠어요. 


훈련을 받은 과정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한 것이 있을 법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그냥 보통의 1인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더 가깝습니다. 어쩌다 보니 박사를 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그걸 정치학으로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는, 뭐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예요. 그 과정에서 훌륭한 선생님과 상담가, 그리고 어른들을 만나서 나름 잘 헤쳐나갔고, 그러다 보니 저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기도 했고요. 제가 그 긴 시간 동안 맨 정신 붙들고 살 수 있게끔 도와준 제 상담가가 하루는 그러더라고요. 제 박사 과정은 저의 spiritual journey라고요. 단순히 제 이름으로 나올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는 그런 물질적인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저를 돌아보고 저를 더 잘 알아가는 내적 성장이 동반된 과정이라고요. 그 묘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요즘 누가 박사 논문을 읽나요. 지도교수, committee members, 그리고 external examiner가 읽어주면 많이 읽는 거에요. 아주 소수만이 읽는 박사 논문일지라도 그걸 완성하면 나의 일부가 완성되지 않을까, 뭐 그런 기대도 조금은 가져봤어요. 어쩌면 그 때문에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일지도 몰라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의 spiritual journey를 잘 기억할 수 있게끔 뭐라도 남겨주고 싶다, 이왕이면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매체 - 글쓰기 - 로 남기자, 뭐 이런 생각의 흐름이 여기로 이끈 것 아닌가 싶네요. 


자, 이제 기억을 더듬어 써 보겠습니다. 참, 이미 소개글과 목차를 보고 아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지훈련장은 캐나다입니다. 캐나다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네요. 


혹시라도 인연이 닿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미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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