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왓, 단풍국!
거두절미하고, 캐나다에서 박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한국은 미국과 참 여러모로 밀접한 나라죠. 사회과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정치학계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당장 서울의 주요 대학 정치학과만 보더라도 현직 교수진의 90% 이상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거든요. 그들이 가르치는 커리큘럼, 특히 대학원 커리큘럼을 보면 미국 대학의 그것과 거의 같습니다. 당연히 학생들도 유학을 생각할 때 대단히 구체적으로 관심사를 정하지 않고서야 (e.g., 유럽 정치, 북유럽 복지국가 등) 대부분 미국을 목표로 합니다. 저 또한 그랬구요. 캐나다는 뭐랄까, 제가 좋아하는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 메달을 딴 곳, 그리고 드라마 도깨비로 인해 "단풍국"이라는 별칭을 얻은 곳, 뭐 그 정도로만 기억되던 곳이었거든요. 저와 이렇게 인연이 깊고도 진한 곳이 될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인생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군요.
기억을 더듬어 어딘가 캐나다와 관련된 인연의 끈이 파묻혀 있나 찾아봅니다. 오, 학부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군요. 당시에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경쟁이 나름 치열했는데, 그 중 가장 치열한 경쟁력을 자랑하던 곳이 지금 다니는 학교였거든요. 아는 사람이 이 학교 교환학생을 다녀오면, '우왕, 좋은 곳 다녀왔구나' 할 수 있는, 뭐 그런 곳이었어요. 그 이후 한국에서 석사를 하면서 지금 다니는 학교 이름을 다시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지금 제 지도교수의 연구를 읽을 때였어요. 그렇지만 보통은 소속을 알기 위해 상대가 재직 중인 학교를 찾아보는 것일 뿐, 제가 가게 될 학교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습니다. 유학을 가더라도 저 멀리 미국 어딘가에 떨어지겠거니 했었죠.
그렇다면 애당초 캐나다 대학에도 지원하고 결국은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실 수도 있겠어요.
자, 유학 준비 과정으로 돌아가봅시다.
정량적/정성적 평가 요소를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나면 지도교수님 추천과 본인의 선호도를 잘 조합하여 지원 리스트를 추려냅니다. 유학 지원 과정에서는 지도교수의 영향력이 꽤 많이 작용하는데요, 특히 지원할 학교를 고를 때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열람할 수 있는 입시 지원표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개인이 가진 역량과 네트워크에 의존하여 정보 탐색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지원자도 정보 탐색을 하지만, 지도교수가 가진 정보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어느 대학에 누구가 내 박사 동기인데 이런 쪽으로 연구한다더라, 혹은 어느 대학에 누구가 요즘 이런 쪽으로 연구를 많이 하더라, 등등이요. 물론 대학 이름도 중요합니다. 정말 미친 듯이 특정 교수 A만 바라보고 공부할 것 아니면 대학 간판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또 조금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보자면, 박사 공부에 있어서 그런 줄 세우기가 얼마만큼의 의미를 갖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여담이지만, 개통령 강형욱 씨의 유튜브 영상 중에 그런 부분이 나옵니다. 본인이 추가로 공부를 더 하게 된다면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님께 배우고 싶다고. 그러자 제작진 중 한 명이 '그분은 XX여대에 재직 중이세요'라고 하죠. 강형욱 씨의 반응은 아주 순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게 뭐 어때서요? 그 교수님은 최고의 동물행동학자이니 나는 그에게 배움을 구하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강아지 같은 얼굴로 합니다. 물론, 크고 좋은 대학일수록 배움의 기회도 넓고 이후 취업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박사 공부에 한해서는 '내가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느냐'가 우선 나와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강형욱 씨의 순수한 강아지 얼굴이 더욱 와닿았습니다.
그 외 지원자 개인의 선호도 역시 무시할 수 없겠죠. 저 또한 몇 가지 기준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어떤 학교는 한국인 지원자가 워낙 많아서 한국인들의 지원서만 따로 모아서 읽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어요. 지도교수님께서 해당 학교에 원서를 넣지 않을 거냐고 몇 번이나 물으셨지만 저는 단호하게 "hell, no"를 외치고 그 학교를 리스트에서 제외시켰습니다. 그 외에도 지나치게 고립된 지역에 위치한 학교는 배제시켰어요. 1-2년 살 것도 아니고, 최소 5년, 길면 8년, 어쩌면 졸업 후 정착할지도 모르는 곳인데 제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갖춘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은 내 연구와의 정합성(fit) 입니다. 즉, 해당 학교에서 내가 할 연구가 어느 정도 중점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내 연구를 도와줄만한 교수진이 다양하게 있는지, 등을 가장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죠. 미국 국내정치를 연구하는 교수진이 많은 곳에 지원하면서 '저는 한국 정치할래요' 해서는 합격하기 힘들겁니다. 자, 이토록 중요한 '연구 정합성'을 판단함에 있어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존재합니다. 보통은 학교 웹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정보 혹은 교수들이 따로 운영하는 개인 웹페이지를 보는데요. 이곳에는 publication, presentation, teaching courses에 관한 정보가 있긴 해요. 하지만 publication이 보통 최종 출판물의 형태로 나오기까지 길면 1.5년 정도 걸린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정보가 해당 교수의 현재 관심사를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웹페이지를 업데이트하지 않는 사람도 꽤 많고요. 그렇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알려줄 사람이 중요해지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정형화되지 않은 정보의 형태를 띱니다. 아는 선배가 해당 학교에서 유학하고 있다면 보다 직접적인 조언을 구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유학준비를 도와주는 지도교수나 추천서를 써주시는 교수님들의 정보력이 중요해지는 순간입니다. 아무래도 교수님들은 계속 학계의 동향을 살피고 여기저기서 듣는 정보가 많기 때문에 웹페이지가 담아내는 것 이상의 것들을 알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지요.
저는 캐나다에서의 유학을 깊게 생각한 적은 없었기에, 석사 지도교수님께서 이 학교를 추천해 주셨을 때 마음속에서 불길이 '화악' 댕겨지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인이 많아서 지원을 하기 싫다는 그 대학은 딱 2번 물어보시곤 더 묻지 않으셨지만, 캐나다 대학은 강하게 권유하셨던 것 같아요. 교수님 왈, 프로그램도 나쁘지 않고 (석사 지도교수님 성격상, '나쁘지 않다'라고 하면 좋은 겁니다), 그 중에 교수 누구누구가 있는데 본인이 인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대학이 위치한 도시도 너굴이 네가 좋아할 만한 곳이라고 말씀해 주셨죠. 당시 뉴욕바라기였던 저는 뉴욕 외의 모든 도시가 잿빛으로 보이는 기현상을 겪고 있었는데, 그래도 유학은 가야겠기에 정신 차리고 다시 뉴욕 외의 도시에 위치한 대학에도 눈을 돌렸습니다.
석사 지도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교수 A는 내가 인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포인트는 아주 결정적인 정보였어요. 정확한 워딩을 전달해 드리자면, "최소한 걔가 또라이는 아니고 사람이 좋다는 건 내가 안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두 분은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3-4년 차이로 박사학위를 받은 동문이었기에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이이긴 했어요.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이 정보 한 토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럼 막간을 이용하여,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께 여쭤볼게요. 박사 과정을 무사히 끝마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학교 랭킹? 학교/학과 인프라? 장학금 패키지? 학과가 제공하는 수업과 연구지도의 퀄리티? 본인의 노오력과 꺾이지 않는 마음? 본인과 부모님의 건강? 멀쩡한 지도교수?
다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 단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멀쩡한 지도교수 (aka. 최소 또라이는 아닌)'를 꼽겠어요. 학생이 평균적인 열정과 능력이 있다는 가정 하에, 박사 과정 성패의 80% 이상이 지도교수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대단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당연히 교수가 연구 논문을 대신 써 주거나 자식처럼 키워준다는 의미는 아니겠지요. 박사과정이란 결국 '나'만이 할 수 있는 연구를 해나가는 것이니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게다가, 미래의 연구자이자 '동료'를 기르는 과정이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이라도 그렇게까지 사제지간의 느낌이 강하지 않은 관계도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교수 바이 교수입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기나긴 박사 과정에서 갖은 우여곡절을 겪을 때 조언을 구할 사람이 필요하고 내 연구를 나 다음으로 잘 알고 검토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지도교수는 supervisor 라고도 부릅니다). 결국 지도교수와 학생의 관계도 학술적 성과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 특수 인간관계의 문제로 귀결되고,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연구를 포함하여) 나와 얼마나 잘 맞는 사람이냐', 그리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얼마나 잘 맞는 사람'이냐에 대한 답은 그 사람을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알기 힘들겠지요. 그래서 대충 연구주제가 맞으면 어느 정도 맞지 않을까,라는 추상적인 기대를 갖고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일단 연구주제는 차치하고,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볼 때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비단 유학과정뿐 아니라, 대학원이라는 도제식 시스템이 갖고 있는 특성상, 가르침을 구하는 대상과 가르침을 주는 대상이 성격면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으면 여러모로 편합니다. 일례로, 제 석사 지도교수님은 저랑 성격이 비슷한 분이셨어요 (그분이 만에 하나 이 글을 보시면 전혀 반대의 의견을 제시할지도 모릅니다만). 직설적이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결과에 조금 더 경도될 수밖에 없는 사고방식. 책임감 강한 사람들. 쪽팔리는 것을 죽도록 싫어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 그래서 석사 지도교수님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대단히 애를 써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었어요. 어차피 저 사람은 나랑 생각하는 바가 비슷할 테니까. 교수님의 지도를 받는 동안 제 능력이 모자라 스스로를 탓하느라 괴로운 시간은 많았지만 교수님의 가르침이 버거워 고생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성격을 지닌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 칼같음과 철저함에 상처받은 사람들도 여럿 보았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성격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쉬운 조건이라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은 있습니다.
앞으로 상당시간을 함께할 박사 과정 지도교수가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습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학계란 사실 고성능 나르시시스트(high-functioning narcissist)들이 모인 곳과 같아서 인격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크게 놀라울 일도 아닌 것이, 다들 어려서부터 공부'만' 잘하고 자랐을 테고 어쩌다 보니 공부로 최정점을 찍어서 그걸로 계속 밥벌이를 하다 보니 공부 외의 것을 돌아볼 기회가 적습니다. 게다가 학계에서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연구실적(publication)인데, 이것도 대충 아무거나 휘갈겨서 낼 일이 아니라 인용이 많이 될 수 있는 연구를 만들어야 하죠. 개별 학자의 연구가 얼마나 인용되었는지를 정량화하여 해당 학자의 쓸모를 나타내는 index가 존재합니다. 저널도 high-ranking일수록 높은 지수를 자랑하고요. 결국 성과, 그것도, 남이 평가해 주는 정량화된 성과에 대단히 치우친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교수가 아무리 노벨상 받은 대가라도 이러한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고성능자들이 만들어내는 웃기지도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제 귀에 들어온 일만 하더라도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치부하기엔 해당 교수의 직업윤리에 대해 의심할 만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벌어진 '사랑과 전쟁' (불륜 포함), 학생의 아이디어 도용, 학생이 한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공저에서 이름을 빼겠다는 협박, 자기 연구할 시간 없으니 아예 지도학생을 받지 않겠다는 뻗댐, 교수가 소리 소문 없이 다른 학교로 잠적하여 낙동강 오리알이 된 학생, 등등 장르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프닝'은 우수한 실적 앞에서 귀여운 애교로 치부됩니다. 결국 고성능 또라이들이 전체 구조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커질수록 그 피해는 상대적 약자인 학생이 받을 수밖에 없지요.
이렇듯 지도교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저도 석사 교수님께서 캐나다 대학과 특정 교수를 추천하실 때 이를 완전히 뿌리칠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문제가 없진 않았습니다. 그 특정 교수의 책과 논문은 읽어서 그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지만, 당시 제가 계획하던 연구주제와 그의 연구주제가 아주 맞는 것은 아니었어요. 즉, 연구정합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죠.
이것이 정말 정합성의 문제인지 혹은 정보 비대칭이 낳은 문제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단 정보 비대칭성을 해결하기 위해 '컨택'을 해보기로 합니다. 참고로 인문/사회과학에서는 흔히 말하는 '컨택'이 드물어요. 자연과학에서는 해당 랩을 운영하는 교수에게 미리 컨택을 하고 그 교수가 지원자의 연구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공식 지원절차를 거치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 쪽은 다릅니다. '컨택'을 통해 학생을 뽑았다는 경우는 거의 듣지 못했어요. 간혹 유학을 희망하는 사람 중에 자기가 어느 대학 모 교수를 (잘) 아니까 그것만으로 그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으리라는 푸른 꿈을 꾸는 사람을 보는데요. 제가 아는 한, 0.01%의 확률로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라고만 말해주겠습니다.
지원자 선발과정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매해 입학사정회(admission committee)가 꾸려지고 각 학교/학과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1차, 2차 라운드를 거치고 (주로 정량적 지표로 걸러냅니다), short-list에 오른 사람들의 지원서를 검토한 후 각각의 연구 정합성에 따라 개별 교수들에게 보내줍니다. 교수가 최종 선택권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교수들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죠. 교수들은 해당 학생들에게 관심이 있다 없다, 혹은 지도학생을 받을 생각이 있다 없다를 admission committee에게 통보합니다. 교수의 의사는 반영하지만 최종결정은 admission comittee의 권한입니다. 가령, 해당 교수가 특정 학생을 뽑고 싶어도 그 해 학과 예산이 없거나, admission committee에서 결정한 기준을 해당 학생이 넘지 못했거나, 등의 경우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교수 개인이 가져온 예산으로 랩을 운영하는 자연과학과 달리 이 쪽은 교수 개인의 재정자립도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학과의 결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가 '컨택'을 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해당 교수의 최신 연구동향을 알기 위해서였죠. 학과 홈페이지에는 당시 그 교수의 연구성과가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았기에, 컨택 외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물론, 컨택을 한다 해서 답장이 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게다가 답장이 와도 합격이 보장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정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연락해 봤어요. 캐나다 대학 말고 미국 소재의 대학에도 컨택 이메일을 많이 보내봤습니다만, 최종적으로 5통 미만의 답장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캐나다 교수는 의외로 답을 빨리 주었습니다. 본인의 최근 연구 관심사를 소상히 알려주더군요. 학과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보다는 많은 정보였고 제 연구주제랑 접점이 꽤 있었습니다. 매우 좋은 소식이었어요. 하지만 본인이 다음 해부터 안식년을 떠날 예정이고, 최종 결정은 admission committee가 할 것이라고 말해주더군요. 지도학생을 그 해 받지 않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받은 답장들도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우리 과에 들어온다면 다시 이야기해 보자', '지금은 관심 없다', '해당 주제는 흥미롭게 들리는데 일단 입학하면 보자', 등등. 심지어 미국의 어떤 주립대학 교수는 올해 학과 재정상황이 좋지 않으니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정보도 알려주었어요. 그럴 경우 신속하게 지원 리스트에서 제외했습니다. 장학금이 없는데 박사를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거든요. 여하간, 여러가지 답장을 종합해보니 처음 알고 있던대로 admission comittee의 최종 간택을 받아야만 유의미한 결과가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즉, 교수에게 컨택을 해봤자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다는 소리죠.
그렇지만 정보 비대칭성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습니다. 나름 구할 수 있는 정보는 다 구했다고 생각하여, 캐나다 대학을 포함한 지원 리스트를 10-12개 정도 추려내고 원서를 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지원과정에서 변수는 무수히 많이 존재하여 나비효과 뺨치는 현상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납니다. 저는 꽤 보수적으로 지원했었는데, 지나고 나니 박사 유학이야말로 운칠기삼이라 본인이 원하는 만큼 상향(?)지원해도 잃을 것은 없습니다 (원서비는 잃을 수 있습니다). 수능시험이나 고시처럼 시험으로 결정되는 것들은 내가 받은 점수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예측을 할 수 있지만, 박사 유학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어느 하나의 요소가 아닐뿐더러 운이 정말 많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정량화할 수 있는 것(e.g., 학점, 영어점수)들을 잘 준비한다 해도 정성적인 부분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훌륭한 writing sample, SOP (statement of purpose), 그리고 추천서가 나와도 불확실성이 완벽히 통제되는 것은 아니에요. 내 경쟁자들이 누군지, 해당 학과의 어드미션 커미티에 그 해 누가 들어가는지, 내가 일하고 싶은 교수가 지도학생을 받을 건지, 심지어 그 해 그 과의 재정 상태에 따라 받는 학생의 숫자가 달라진다든지 등, 제가 나열한 것 이상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해마다 달라지고 내부자가 아니면 절대 모를 내용이라, 외부에 드러난 정보만 보고 지원하는 지원자에게는 눈먼 정보일 수밖에 없죠. 따라서 정말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미련 없이 지원하되 너무 지원서를 남발하는 것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원서 제출도 돈이 드는 일입니다. 한 학교에 지원할 때마다 영어 점수 보내야지, 지원비용 내야지 등등, 학교마다 20만 원씩 들었던 것 같네요.
위의 것들은 지원자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이라 쳐도, 지원자 개인에게서 파생되는 내부적 불확실성도 분명 존재합니다. 지원할 때는 5년 안에 박사를 쉬이 받을 것 같지만, 현재 북미를 기준으로 정치학 박사 평균 졸업년수는 6.5-7년에 육박하고, 생애발달주기 상 여러 가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30대를 고려할 때 변수는 더 늘어납니다 (e.g., 결혼, 출산과 육아, 부모님 노환, 본인의 건강문제 등). 안타깝지만 이런 변수들은 박사과정을 지연시키는 경향이 크지요. 제 지인 중 한 명은 이런 변수를 고려하여, 지원 당시엔 미혼이었지만 차후 본인이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무리가 없는 도시의 학교를 최종 선택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수는, 박사 지원할 때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본인이 제시한 연구주제가 바뀔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연구주제가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저도 그랬고, 저 주변의 모든 박사 선후배, 동기들을 보건대 연구계획서 내용대로 박사 논문 써서 졸업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내가 때려 죽여도 이 주제로 연구할 거고, 이 교수 밑에 뼈를 묻겠다, 는 생각이 없다면 큰 학교가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연구주제가 바뀌어도 선택할 대안이 많기 때문이죠. 꼭 지원하는 학과 내에서 뿐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은 편이 좋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경향을 볼 때 대체로 북미 동부/서부 연안에 있는 대도시의 학교는 꽤 큰 규모의 정치학과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바다를 접해있으니 관심사가 다른 나라로 향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따라서 북미 정치뿐 아니라 아시아, 유럽정치 등을 다룰 수 있는 교수진이 다양하게 포진해 있는 편입니다.
지원을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다 보면, 각 대학마다 빠르면 1월 늦어도 3월 중반을 넘지 않게끔 최종 결과를 통보합니다. 최종합격 소식을 통보한 학교들은 나름의 장학금 패키지를 제시하는데요. 저는 이 장학금 패키지를 최종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같이 일해보고 싶은 교수가 있는 학교를 골라서 지원했을 것이고, 그런 학교들 중 합격 통보가 온다면 그들이 제시하는 '연봉'에 따라 최종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특정 교수랑 죽기 전에 꼭 한 번 같이 일해보고 싶다, 내일 당장 죽어도 이 교수랑 일한 것에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교수가 있는 학교의 합격 통보를 수락하는 것이 맞습니다.
장학금 '패키지'라고 하니 뭔가 거창해보이지만, 꼭 그렇진 않습니다. 일단 등록금, 학생회비, 학생보험이 포함되어 있고 stipend라고 불리우는 생활비 명목으로 지원이 조금 나옵니다. 이 지원을 산정하는 방식은 각 대학이 위치한 도시의 물가와 집세, 생활비 등을 반영한다고는 하는데, 정말 굶어 죽는 것만 막아줄 정도로 나오기 때문에 추가로 비용이 들 경우에는 연구조교나 수업조교로 일을 해야 합니다. 물론, 남의 돈으로 공부를 한다니 대단히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혜택이 그렇듯이 이 패키지에도 조건이 있고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보통은 첫 4년 혹은 5년까지만 지원을 해주고 (이 부분은 같은 학교 내에서라도 개별 학과의 사정에 따라 상이합니다), 그 이후에는 연구조교/수업조교를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업조교를 2개 하거나, 연구조교를 추가하거나, 아예 티칭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또한 첫 4-5년을 커버할 수 있는 패키지 내에서도 입학 성적에 따라 조건이 부여됩니다. 조건없이 매년 특정 금액을 보장받는 경우가 가장 좋구요. 연구조교나 수업조교를 해야만 특정 금액이 지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전체 지급액의 50%만 준다는 경우도 없진 않아요.
이 중에서 가장 최악은 장학금없이 합격통보만 '띡' 날리는 경우입니다. 물론 집에서 연간 1억 정도, 짧으면 5년 길면 8년까지 지원해줄 수 있다면 이 합격통보를 덥석 물어도 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렇게 돈이 많은 경우에는 굳이 박사를 하지 않고 MBA나 2년짜리 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일반대학원'으로 분류되는 스트림에서 박사까지 온 경우에 자비로 지내는 케이스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돈이 많은데 소문나는 것이 싫어서 조용히 지내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벌면서 공부하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만, 이전 화에 말씀드렸던 살인적인 coursework과 각 단계에서 요구하는 시험/요건, 호락호락하지 않은 연구활동, 등을 돈 버는 일과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신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못 합니다. 못해요.
캐나다의 한 대학을 전지훈련장으로 삼게 되었고, 미친 듯이 빠듯한 기간에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도시로 짐을 옮긴 뒤 다시 짐을 싸서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3-4일 간격으로 이민가방을 몇 번 풀었다 쌌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을 정도니까요.
뉴욕에 대한 미련을 꼬리에 주렁주렁 달고 있었던 저는, '전지훈련장'이 될 캐나다를 가면서도 굳이 뉴욕에 들러서 10일 정도 머물다 갔답니다. 해당 시점으로부터 1년 전, 뉴욕에서 인턴쉽을 할 동안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어르신이 계십니다. 그분은 아주 오래전 캐나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본인의 분야에서 크게 전문성을 발휘한 어르신입니다. 제가 그분의 자식들보다도 한참 어린데도 불구하고 저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해 주셨답니다. 그분의 연세, 배경, 사회적 지위를 고려할 때 흔히 희화화되는 그 세대의 특징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더욱 존경했던 분입니다.
1년 만에 다시 방문한 저에게 그 철에만 난다는 첼시마켓 청어를 사주시면서 그 어르신은 이런저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제가 뉴욕이 아닌 다른 도시를 가게 되어 덜 흥분(?) 한 것을 눈치채셨는지, 아니면 그냥 본인의 인생을 반추해 봤더니 그런 결론이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불현듯 저에게 캐나다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한국도 미국도 아닌 제3의 지대에서 얻게 되는 균형 잡힌 시각이 있을 것이니 절대 놓치지 말고 잘 벼려놓으라고 하시더군요.
늘 그렇듯이,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이후 제가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격정적으로 치닫는 국제정세와 난데없는 전염병을 겪으며 캐나다에 있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은 많이 했습니다. 이 나라가 마음에 들었고, 졸업 이후에도 계속 살고자 계획하게 되었어요.
이 도시에 온 첫 날, 공항의 자동문을 지나 첫 발을 내딛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눈이 찢어질 정도로 밝은 태양빛이 머리 위로 내려앉았어요. 날이 매우 좋았기에 이 도시가 나를 반겨주는 것 같은 저만의 해석도 덧붙여 봤답니다. 아마도 나의 설렘과 흥분을 몇 스푼씩 담아 더 찬란하게 빛났을 겁니다. 예민한 기관지를 가진 탓에 한국에서는 철마다 미세먼지로 고생했었는데, 폐 깊은 곳까지 들이마셔도 찝찝함이 남지 않는 그 밝고 화사한 공기의 냄새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는 나무들이 좌우로 늘어선 도로를 끝없이 달리면서 드디어 캐나다에 온 것을 실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