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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다

약골 엄마의 마라톤 도전

by 다우

"10km 기록이 어떻게 돼?"

"1시간 6분이요."

"풀 뛸 거야?"

"제가 뛸 수 있을까요?"

"10km를 55분 안에 들어오고, 하프를 2시간에 들어오면 풀도 뛸 수 있어."

"하프는 뛸 거지?"

"뭐.. 발목이 괜찮다면 해보고 싶어요."

"할 수 있어. 뛰어 봐."


이것은 트레이너와의 대화가 아니라,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과 달리기로 발목이 아픈 환자의 대화이다. 달리는 의사 선생님이 진료하는 한 정형외과에 다녀왔다.


달리기를 계속하다 보니 나의 고질적인 문제 '발목'이 아팠다. 아마 5년 전이었나. 높은 굽의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 발목을 심하게 삐었었다. 친구들과 여행 중이라 바로 병원에 가지 않았고, 여행이 끝나고서도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발목 좀 삐었다고 일상생활이 안 되는 게 아니니 그냥 생활했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약해진 발목은 여전히 내 발목을 잡는다.


달리기를 하지 않아도 발목이 종종 아팠다. 가까운 재활의학과에서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고는 했다. 이번에는 달리기를 하다 그런 거니, 달리기를 직접 해 본 명의를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러닝크루 리더 분은 무릎 부상이 자주 생겨 이 병원에 갔었는데, 그분께도 “내가 평생 달릴 수 있게 해 줄게.”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는 그 말에, 나의 발목을 보고는 어떤 말을 해주실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집에서 한참이 걸리지만 찾아간 병원이었다.

달리기에 자부심이 느껴지는 달리는 사람의 모습이 있는 간판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병원 대기실에 가득한 의사 선생님의 달리기 관련 기록과 인터뷰 내용들은 평범한 병원이 아니라, 한 개인의 달리기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시관 같았다. 자신의 달리기를 자랑하는 이 공간에 있는데, 왠지 모르게 설렜다. 이 성취의 기쁨이 뭔지 알기에 자랑하고 싶은 그 마음에 공감이 갔다.


달리는 의사 선생님은 정말 명의였다. 그 어떤 병원에서도 의사 선생님이 직접 엑스레이 찍어주는 것을 못 봤는데, 엑스레이를 발의 각도를 직접 확인하며 찍어 주시고, 체외충격파 치료도 물리치료사가 아니라 의사 선생님께서 직접 해주셨다.


그동안 제대로 모르고 있던 내 발목의 상태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보통 발목이 휘어진 상태에서도 뼈가 수평을 유지해야 하는데, 내 발목은 그러질 못하고 무려 20도나 벌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릴 적에 발목이 나가서 발목이 안 좋다고 말하는 의사 선생님 본인은 14도가 벌어져 있다고 하니, 내 발목의 상태는 꽤나 안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30도가 벌어졌어도 풀 마라톤을 뛰는 사람도 있다고 하며 울퉁불퉁한 산에서 뛰는 트레일 러닝보다 평지 마라톤과 트레드밀 달리기를 추천하셨다. 그리고 발목이 삐려는 순간 발목을 수직이 되도록 착지하는 방법도 직접 시연하며 알려주셨다.


달리기를 하다 발목이 아파서 며칠 달리기를 쉬었다고 하니 "달리기는 4일 이상 쉬면 안 돼. 바로 달려봐."라고 조언해 주셨다. 체외충격파 치료를 직접 해주시며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달리기를 어떻게 하실 생각을 하셨어요?"라고 묻는 내 질문에 41살에 처음 마라톤을 시작하며 본인도 달리면 무릎이 안 좋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았고 오히려 운동을 할수록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달리기를 하는 의사가 흔치 않던 당시 입소문으로 러너들이 병원을 찾기 시작했는데 울트라마라톤(42.195km 이상 달리기)을 하는 환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본인이 안 해봤기 때문에 조언을 해 줄 수가 없어서 직접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을 하셨다는 얘기가 놀라웠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강릉까지 잠을 안 자고 달리기를 위해 잠을 안 자는 훈련도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면 몸이 어느 정도 좋아하지만, 그 이상은 안 돼."

"그것을 뛰어넘으려면 이렇게 해봐야 해.“


이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살아오며 어느 일에 이렇게 미칠 정도로 몰입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발목이 아파서 찾아간 병원에서 삶과 달리기에 이렇게 진심인 분을 만나다니. 의외의 수확이었다. 이 분을 보며 나도 달리는 그 순간만큼은 달리기에 진심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병원을 다녀오고 바로 3일 동안 쉬었던 달리기를 바로 다음 날에 하고 왔는데, 신기하게도 발목이 전혀 안 아팠다. 물론 한 번에 손상된 인대가 다 낫지 않으니 병원 치료는 꾸준히 이어서 해야 했고, 치료비는 다른 곳들보다 좀 비싸고, 집에서 가는 데 한참이 걸렸지만 다시 가서 치료를 제대로 다 받고 발목이 한결 편안해졌다.


멀리 있는 병원에 가는 길이 설레는 일상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해 주실 말을 기대하며 병원을 다녔고, 발목이 아프면 하루는 쉬고 그다음 날에 다시 달리며 발목을 튼튼하게 만드는 시간으로 삼았다. 치료를 하고 한동안 괜찮았던 발목이 다시 아파 오면 병원에 갔고, 치료를 받은 후 조금 나아진 발목으로 다시 달리며 내 발목을 담금질했다.


발목이 안 아픈 기간이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 치료를 받고 왔다고 해서 이미 틀어진 발목을 다시 돌려놓을 수 없기에 앞으로도 내 발목은 나의 발목을 잡을 예정이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건 내 달리기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내게는 달리는 의사 선생님이 있으니, 다시 문을 두드리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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