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고 바라던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기'를 성공했다.
내 인생에, 내 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그 일을 해낸 스스로가 기특했다. 돈을 아끼며 살림을 하느라 아이 낳고서는 일 년에 내 옷을 사는 것은 계절이 크게 바뀔 때 옷 한 두 벌 뿐이고, 신발은 한 벌도 안 사고 지나가는 해가 더 많아졌음에도, 이번에는 내게 마음을 먹고 선물을 주기로 했다.
다른 운동은 시작할 때, 어쩔 수 없이 바로 뭔가를 사야 시작할 수 있었지만 달리기는 평소 갖고 있던 운동화면 충분했다. 덕분에 그동안은 달리기를 한다고 산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마라톤을 위한 첫 투자를 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투자가 그렇듯, 앞으로 이게 망하지 않고 꾸준히 가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할 수 있듯이 '30분 달리기'를 성공하고 나서야 앞으로 내가 달리기를 좀 하다 그만두지 않을 것임이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그 투자를 시작할 수가 있었다.
4개월 넘게 일반 운동화로 달리면서도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러닝화를 장만하기로 마음먹으니 정말 좋은 러닝화를 사고 싶었다. 정말 좋은 러닝화란 무엇일까? 단순히 비싸고 요새 새로 나온 예쁜 러닝화가 아니라 내 발에 꼭 맞는 러닝화를 찾고 싶었다. 마침 각자의 발에 알맞은 신발을 추천해 주는 '슈피팅 서비스'를 추천받아 신청했다.
예약이 촘촘히 차 있는 가운데 빈 시간을 노려, 3만 원의 예약금을 걸어야 받을 수 있는 서비스였다. 물론 그 예약금은 신발을 구매하면 구매 비용에 포함되지만, 내 발을 알기 위한 것 또한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달리기처럼 나름의 정성이 필요했다.
좋은 건 함께 하면 배가 되니, 러닝은 하지 않지만 족저근막염으로 오랫동안 고생 중인 친구에게도 도움이 되는 시간일 것 같아서 함께 하자며 나란히 청했다.
35년을 함께 한 내 발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새로운 내 발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발 분석을 하러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벽면에 다양한 브랜드의 러닝화로 빼곡하게 채워진 신발 가게에 들어선 순간, 이 신발들 중 나의 단 하나의 신발은 무엇일까 설렜다. 평소 물건을 살 때면 떠오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주저함이 없는 당당한 쇼핑이었다.
이곳에는 러닝화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장님의 수많은 마라톤 궤적들이 함께 촘촘하게 들어차 있었다. '마라톤은 저렇게 걸어서 보관하는구나.' 나도 언젠가 메달이 많아지면 멋지게 걸어놓을 곳을 만들고 싶어졌다.
먼저 내 발 자체의 생김새를 분석하고, 다음으로는 러닝화를 신고 트레드밀에서 달리는 모습을 관찰해서 종합하여 내 발에 알맞은 신발을 추천받았다. 그동안에도 발 볼이 넓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수치를 보니 전체 발 볼 크기의 A~EE 중 E에 속할 정도로 발 볼이 매우 컸다. '내 발이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왕발이었다니.' 충격이었다.
심지어 발등도 높고, 아치도 높았다. 내가 그동안 신어온 235mm를 생각하며 내 발 크기가 그게 맞는 줄만 알았는데, 원래 발의 길이는 220mm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발 볼에 맞춘 신발을 신다 보니 원래의 발 길이보다 큰 신발을 신고 왔다는 숨겨진 진실이었다. 충격을 받은 내 표정을 읽은 탓인가. 이 서비스받으며 계속 "세상에 나쁜 발, 좋은 발은 없어요. 그냥 다른 내 발일 뿐이에요."라는 설명을 내내 들었다. 기분 좋은 세뇌였다.
내 발과는 대조적으로 친구는 발 길이는 길었고, 발 볼은 나보다 훨씬 적었다. 칼발이었다. 사람의 발이 이렇게 차이가 크구나. 친구와 나는 전혀 다른 신발을 각각 추천받았다. 친구는 집요하게 자신의 발이 좋은 발인지를 물었지만, 나에게 설명했듯 이 세상에 좋고 나쁜 발은 없고 서로 다른 발만이 있을 뿐이라는 그 말을 계속 되뇌어 주셨다.
러닝화를 사고 돌아오는 길, 이제 작지만 큰 볼 덕분에 '왕발의 엄마 러너'가 되었다.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새 신은 언제나 기분이 좋지만 유독 더 기분이 좋았다. 이 신발을 신고 누빌 곳, 누빌 순간들이 너무 기대가 되었다. 곧바로 다음 날 새벽 이 신발을 신고 달렸다. 신자마자 너무 편해서 달리기 뿐만 아니라 매 순간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러닝화를 일상화로 신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동안도 편하다고 느낀 신발들이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했기 때문에 편안함과 늘 함께하기를 택했다.
각 브랜드별로 넓은 볼, 좁은 볼을 위한 신발과 그리고 달릴 때 중립형을 위해 받쳐주는 신발 그리고 안쪽으로 기울어지는 내립형을 위한 신발 등 다양한 신발이 존재한 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발 볼이 넓고 중립형의 내 첫 러닝화를 신으니 내 발이 훨씬 편안해했다. 달리기를 안 했으면, 그리고 30분 달리기를 이루지 못했으면 결코 만나지 못할 그런 신발이었다.
나를 위한 단 하나로 제작된 그런 신발을 아니었지만,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게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이었다. 이 신발을 신고 앞으로 못 갈 곳이 없을 것 만 같았다. 달리기를 시작하며 곧바로 산 게 아니라, 이 운동에 대한 아니, 이 운동을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갖고 투자한 선물이라 더 값졌다.
가계부를 쓰며 지출을 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 신발을 사고 나서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랜만에 너무 잘한 소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