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개그맨 윤성호 씨가 '뉴진스님'이라는 법명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개그 프로그램의 한 캐릭터인 줄 알았던 뉴진스님은 알고 보니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신문사 사장 오심스님께 실제로 받은 법명이었죠. 새로울 New, 나아갈 진(進). 새롭게 나아간다는 이름으로 디제잉을 하는 윤성호 씨는 '아무도 찾지 않던 개그맨'에서 '불교계 행사 섭외 0순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던 개그맨. 뉴진스님으로 활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일이 없어 늘 생계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멈추지 않았던 건, 바로 '배움'이었는데요. 지인의 조언으로 왁싱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행사 진행자로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디제잉도 3년 정도 배웠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문득 '10년 후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3개 국어를 하는 멋진 아저씨가 되자'는 결론을 얻어 베이징대 어학원으로 떠났습니다. 대중들에게 잊힐까 두려워 3개월만 다니려고 했지만,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배워보자 싶어 2년을 꼬박 중국어에 올인했죠. 그 결과, 중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매우 높은 중국어 실력을 얻게 되었죠.
목적이 뚜렷하지도, 결론이 보장되지도 않은 배움들이 당장 생계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방송국에서는 윤성호 씨를 찾지 않았지만, 배워둔 왁싱 기술을 살려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수입이 없음에도 어렵게 시작한 유튜브였는데, 이제야 반응이 오나 싶을 때쯤 갑작스럽게 해킹을 당하면서 하루아침에 채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책상 밑에 숨어서 스스로에게 되뇌고 되뇌었던 말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담배도 끊고, 술도 끊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의 파도가 지나간 후 찾아온 기회가 바로 뉴진스님이었던 것이죠.
윤성호 씨는 지금 국내를 넘어 대만 등 해외 불교 행사에서도 디제잉을 하고 있습니다. 뚜렷한 목적 없이 배워둔 디제잉 기술과 중국어가 이제야 빛을 발하게 된 거죠. 만약 그가 일이 없을 때,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손을 놓고 있었더라면 뉴진스님이라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덥석 잡을 수 있었을까요?
승리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행운이라 부른다. 패배는 미리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찾아오며 사람들은 이를 불운이라 부른다.
- Roald Amundsen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탐험한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의 말처럼 기회는 반드시 준비된 자에게 찾아옵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배우는 것이 어떠한 쓸모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넋 놓고 놓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 배움이 목적이 없더라도, 누가 알겠어요? 뉴진스님처럼 언젠가 뚜렷한 목적이 생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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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