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를 구독하고 계시거나 저의 에세이를 오래 전부터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저의 글은 짧습니다. 보통 3분 내에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길이죠. 독자 분들 중에 "수진님의 글은 짧아서 좋아요", "수진님은 짧은 글에 핵심을 잘 담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나는 왜 짧은 글에 최적화 되어 있을까 생각해보면 저는 에세이 작가이기도 하지만, 회사원으로서 글을 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회사원이 쓰는 글은 호흡이 짧습니다. 소설처럼 긴 호흡의 글을 쓰지 않죠. 보고서를 구구절절 소설 쓰듯이 쓴다거나, 핵심을 맨 뒤에 반전처럼 숨겨놓는다면 어떨까요? 누구도 그 보고서를 읽지 않을 거예요. 회사에서는 시간이 곧 돈이기 때문에 보고서 한 장을 쓰더라도 짧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또한 보고서는 단 한 명이 볼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들이 함께 보거나 이후에 기록으로 남게 될 수도 있으므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합니다.
저의 경우,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프로젝트 결과를 PPT 5장으로 요약합니다. 그중 맨 앞장은 5장을 요약한 내용을 담습니다. 그리고 그 1장을 다시 5줄로 요약해 사람들에게 PPT 파일과 함께 슬랙(업무용 메신저)에 공유합니다. 사람들은 PPT 파일은 잃어버릴지언정 그 5줄을 기억합니다.
말도 비슷합니다. 혹시 사람들이 내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몇 가지를 스스로 체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는 '길게 얘기하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최대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15분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강연과 같은 상황에서나 15분이지, 일상 속의 대화에서는 그의 반절도 집중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혼자 5분, 10분을 장황하게 떠든다면 과연 누가 내 말에 집중할 수 있을까요?
물론 길게 말해도 집중이 잘 되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콘텐츠'가 있다는 것. 청자의 흥미를 끌 만한 콘텐츠를 구성감 있게 전달하면 아무리 길게 말해도 집중이 잘 됩니다. 물론 그 정도의 콘텐츠와 지식을 가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죠. 또한 말의 억양이나 리듬도 중요합니다. 유독 말을 지루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AI 목소리처럼 같은 높이의 목소리로 호흡도 없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호흡을 끊어줄 땐 끊어주고, 억양의 변화도 주어가며 대화를 이끄는 것이 청자의 몰입감을 높이는 좋은 방법입니다.
모든 말과 글이 짧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길게 말하거나 길게 글을 쓰라고 하면 못 써요. 문예창작학과 전공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수업도 '소설 창작'이었는데요. 긴 호흡의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짧은 글을 쓰든, 긴 글을 쓰든 중요한 건 그 글을 읽는 독자라는 것. 독자가 읽지 않는 글과 청자가 듣지 않는 말은 외롭잖아요. 짧게 쓰고 짧게 말하는 연습을 쌓다 보면 언젠가는 장편 소설도 쓸 수 있을 만큼의 글쓰기 기술과 1시간의 강연도 유창하게 이끄는 화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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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