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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Nov 25. 2024

모두가 똑같이 살 수는 없다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책 <다 똑같이 살 순 없잖아>의 저자 김예지 씨는 극심한 불안장애로 인해 20대 때 회사 일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리랜서 일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고, 불안장애 치료를 받기에도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죠. 예지 씨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청소 일을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습니다. 청소 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긴 하지만, 수입이 꽤 괜찮기도 하고 좋아하는 그림도 그릴 수 있으니 해봐도 좋겠다 싶었죠. 



사람들은 청소 일을 하는 예지 씨를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 취직은 안 하느냐고 묻기도 했죠. 그녀도 처음에는 '직업 =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 계속 해도 될까,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예지 씨에게 "일을 너 자체로 인식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그후 예지 씨는 월, 수, 금은 청소 일을 하고 화, 목, 토는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조금씩 직업과 나를 분리하여 안정감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살 수는 없다."


몇 년 전,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을 때, 한 방송작가의 유튜브에서 주3회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방송작가로서는 꽤 괜찮은 월급을 제안 받기도 했지만 주5일 내내 일을 하는 게 싫어 쿠팡 알바를 선택했고 그 삶이 만족스럽다고 했습니다. 쿠팡 알바라고 하면 여자가 하기엔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만 있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였어요. 당시 저는 복잡한 정신을 잠재워줄 노동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더욱 인상깊게 다가왔고, 놀면 뭐하겠나 싶은 마음으로 쿠팡 알바를 신청했습니다.


신청서를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알바 가능 여부를 빠르게 회신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먼지를 뒤집어 쓰고 기계처럼 일을 하는 제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실제 쿠팡 알바 환경이 어떤지는 직접 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상상 속의 저는 어둡고, 고되고, 허름했어요. 어쩌면 20대 때, 여러 알바를 하며 겪었던 힘든 순간들이 실제 경험보다 더 부정적인 모습으로 떠올랐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저는 알바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쿠팡에서 받은 메시지도 곧바로 지웠습니다. 혹여 누가 볼까 싶어서요.


이처럼, 저는 사회가 말하는 성공적인 삶에서 벗어나면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회생활을 해보니, 사회가 말하는 성공적인 삶은 그저 일반적인 삶에 불과했어요. 이 사실을 깨달은 후, 수많은 인파 속에 휩쓸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마다 안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해'와 '이렇게 살면 안 돼'가 공존한 거죠. 그런 저에게 "모두가 똑같이 살 수는 없다"는 말은 두 가지의 갈래길에서 새로운 답안을 제시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진짜 성공적인 삶은 내 삶을 나답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직업에 귀천은 없다'라는 말보다는 '모두가 똑같이 살 수는 없다'는 말이 본인에게 잘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 예지 씨가 극심한 불안장애를 겪으면서도 남들 다 한다는 이유로 조직 생활을 꾸역꾸역 참아냈다면, 지금처럼 안정된 일상을 보내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평생에 걸쳐 경제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라는 것. 돈을 더 이상 벌지 않아도 되는 그날까지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입니다. 일글레 구독 하시면 매주 수요일마다 이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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