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기 02 : 코르티나 담페초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마을들이 각자의 리듬으로 숨 쉬고 있었다. 평원 위의 집들은 나무 냄새를 품고 있었고, 언덕 위의 집들은 겨울바람을 받아내며 묵묵히 서 이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늘 떠나고 싶어 했지만, 막상 떠난 뒤에는 언제나 머물 곳을 찾고 있었다.
코르티나 담페초 Cortina d'Ampezzo
‘CORTINA'라는 글자가 붙은 다리를 지나자, 눈 덮인 산맥 사이로 노란 조명이 반짝였다. 마치 오래된 동화 속 마을 같았다. 하얀 산과 초록 창틀의 집들이 이어지고, 가로등 아래로 스키복 차림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겨울의 공기 속에 묘한 온기가 있었다. 나는 낯선 도시의 불빛이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호텔 앞 광장에는 크리스마스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별 모양의 불빛이 반짝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축제의 한가운데 있었다. 겨울이 가장 번화한 계절이라는 이 마을은, 추위마저 들뜬 공기처럼 가벼웠다. 눈길을 걸으며 형과 나는 저녁을 먹을 식당을 찾았다. 문득, 여행 중의 배고픔이란 단순한 허기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 TORRI'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Torri는 봉우리를 뜻하는데 말 그대로 5개의 봉우리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테이블마다 와인이 반쯤 비어 있었고, 아이들이 웃고 있었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우리를 향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인사를 건네는 일은 언제나 조금의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안녕" 옆자리의 꼬마가 수줍게 부모님 뒤로 숨었다. 그 모습이 왠지 반가웠다.
주문한 나폴리 피자가 나왔다. 하얀 치즈 위에 정어리 세 마리가 통째로 올려져 있었다. 비린내가 코끝을 스쳤지만, 이상하게도 불쾌하지 않았다. 그건 낯선 곳의 냄새였다. 나는 조심스레 한 조각을 들어 올렸다. 짭조름한 치즈와 생선살, 그리고 루꼴라의 씁쓸한 향이 입안에 퍼졌다. 그 순간, ‘아, 나는 지금 정말 여행 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하늘에서 작은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광장 위로 은은한 음악이 흘렀다.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잔을 부딪치고, 사진을 찍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낯선 곳에서의 한 끼 식사가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을 줄은 몰랐다.
여행을 하면 매일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 속에는 두려움도, 설렘도, 그리고 ‘살아 있음’이 있다. 코르티나 담페초의 밤공기에는 아직도 정어리 피자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냄새가, 내게는 여행의 냄새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