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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Dec 30. 2023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경찰 무기 사용에 대한 나의 기준

나에게 있어 특별한 옷은 경찰 제복만이 아니다. 제복 말고도 특별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경찰 조끼다. 게임에서 아이템을 담는 일종의 인벤토리라고 할까?


초록색과 남색이 어울린 조금 칙칙한 디자인이다. 주머니에는 무전기와 수갑, 업무 수첩, 삼단봉에 무기까지 주렁주렁 달려있다. 아, 내 핸드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조끼는 생각보다 무겁다. 무장한 채 뛰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한겨울이면 그 불편함은 더해진다. 내복 위에 제복을 입고, 그 위에 겨울 점퍼까지 입는다. 마지막으로 조끼를 입는데 몸을 조여 온다. 살이 찌면 불편할 수 있다.

주로 여름에 다이어트 열풍이 심하다지만 나는 겨울에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나마 과거와 비교하면 개선됐다고 본다. 내가 초임 시절만 해도 조끼는 지금보다 헐렁한 재질이었고, 무전기도 팔뚝만 했으니 말이다. 범인이라도 잡으려고 뛰면 무전기가 덜렁거렸다. 바닥에 떨어질까 한 손으로 무전기를 붙잡아야 했다. 이러니 달리기가 느릴 수밖에. 장비와 내 몸이 따로 움직이는 기분은 입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다.


어설픈 경찰 인벤토리에도 살상용 무기는 있다. 이름하여 38 권총, 리볼버다. 탄창에는 공포탄 한 발에 실탄 세 발이 들어있다. (첫 발이 공포탄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실전에서 총을 쏴본 적이 없었다. 누가 쏘는 걸, 본 적도 없다. (실탄 사격은 예외다)


같이 근무하는 선배가 몇 년 전 사용했다고 무용담처럼 말하는 걸 듣긴 했었다. 그런데 워낙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 말이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본 것도 아니고. 사람이 아니라 멧돼지를 잡으려고 쐈다나, 뭐라나. 그것도 도시 한복판에서.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권총 이야기가 아니다. 또 하나의 훌륭한 무기인 테이저건! 일명 전자충격기다. 이 특이한 총은 장전하면 상대방을 향해 빨간 레이저 표적 점이 나온다. 영화에서 나올법한 미국 FBI 느낌이랄까? 한 번은 칼을 든 남자의 눈에 레이저를 비췄는데 그게 무서웠는지 칼을 버리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 11년 동안 테이저건도 쏴본 적이 없다. 가능하면 말로 꼬셔서 체포했다. 그것도 안 되면 여럿이 제압했었다. 다치게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혹여나 인권문제가 나를 괴롭힐지 몰라 자중했다.


이런 나에게 테이저 무사용 경력을 깨뜨린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다.






오전 여섯 시쯤, 편의점에서 술 취한 남자가 소란 피운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이 시간은 야간 근무가 끝나기 직전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투덜거리며 후배인 조순경과 출동했다. 그는 입직한 지 1년도 안 된 초임이었다.


문제의 장소는 술집이 즐비한 상가 한켠에 있는 작은 편의점이었다. 문 앞에서 편의점 조끼를 입은 젊은 남자가 나에게 빨리 오라며 손짓했다. 그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려있었다. 서로 유니폼 조끼를 입어서 그런 건지, 같은 야간 근무자라 그런 건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편의점 안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문 앞부터 계산대까지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사발면과 과자, 생수병, 기타 진열제품이 널브러져 있었다. 왼쪽 계산대 위에는 온갖 종류의 담배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문제의 남자가 있었다.


웬 거구가 노란색 티셔츠 차림에 한 손을 높이 치켜들고 서있었다. 그 남자는 옆머리와 구레나룻까지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산발을 했다. 치켜든 손엔 생수병이 있었는데 언제라도 집어던질 기세였다. 무엇보다 산발머리와 노란 티셔츠가 어우러져 사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편의점 직원도 아닌 그가 어쩌다 계산대를 점령한 건지 궁금했다.


 "저 남자가 편의점 들어와서 갑자기 사발면과 생수를 바닥에 던지기 시작했어요."

신고자는 내 뒤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갑자기 계산대로 달려오는데 너무 무서워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나는 사자머리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손 내리시고 나오세요. 손님이 거길 왜 들어갔어요?"


나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사자머리였다. 그는 생수 폭탄을 집어던지려고 팔을 높이 들었다. 옆에 있는 여자친구가 말려도 소용없었다.


이번엔 나보다 키가 큰 조순경이 앞에 섰다. 그러고는 "빨리 나오세요. 계속 이러시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처벌? 어디 한번 해봐!"


역시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계산대 위에 있는 담배까지 집어던졌다. 그의 여자친구도 포기한 건지 옆으로 비켜섰다.



앞서 나는 테이저건 표적 점만으로도 범인의 의지를 꺾은 적이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같은 방법을 써보기로 하고는 후배를 향해 소리쳤다.


 "조순경 테이저건 꺼내!"


이쯤 되면 긴장할 법도 한데 사자머리 남자는 계속해서 으르렁거렸다. 심지어 비웃기까지 했다.


전기 충격 없이 계산대 안을 점령한 남자를 어떻게 끌고 나올 수 있을까? 덩치 큰 남자 세 명이 좁은 계산대 안에서 부대낄 상황을 생각하니 답이 나오질 않았다. 오히려 남은 담배가 전부 쏟아질 것만 같았다. 누구 하나 다칠 수도 있었다.



나는 계산대 들어가는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후배가 꺼낸 테이저건을 잡고 그를 향해 겨눴다. 위협적인 빨간색 레이저는 사자머리 눈을 향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나오세요. 다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디 쏴볼 테면 쏴봐!"


그는 두 팔을 들고 사악하게 비웃으며 말했다. 무서울 법도 한데, 레이저를 비추고 이리저리 휘저어도 동요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우리나라 경찰 공권력이 약하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지구대에 지원을 요청해 봤다. 혹시 모를 격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내가 있는 편의점 옆에 있는 술집에도 싸우는 사람이 생겼다. 사자머리 남자와 대치하면서도 밖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요청받고 달려온 동료는 옆에 있는 술집으로 가야 했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이젠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 전 나에게 침 뱉은 남자를 기억하는가?

그 사건은 범인 제압할 때 무기 사용에 대한 내 기준을 바꾼 계기가 됐었다. 나도 말이 통하지 않는 범인에게 더는 당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심을 했다는 뜻이다.  내 몸이 다치지 않는 것도 아주 중요했기에.


사자머리를 향해 겨눈 테이저건을 가슴으로 내렸다. 그러자 그는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탕!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전극 침이 날아갔다. 정확히 그의 가슴과 배에 박혔다. 명중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테이저건의 진짜 위력은 지금부터니까.


타 다다다 다닥! 괴상한 소리와 함께 몸에 박힌 전극 침에서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사자머리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뒷걸음질 쳤다. 얼마 못 가 벽을 향해 그대로 쓰러졌다. 나는 그대로 달려가 노란색 티셔츠를 잡고 계산대에서 끌고 나왔다.







 "아이고.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손 뒤로 해! 지금부터 업무 방해로 체포한다."


사자머리 남자는 짜릿한 전기충격을 맞보고 나서야 순순히 말을 듣기 시작했다.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로 데려갔다. 그렇게 나의 테이저건 무사용 경력은 끝이 났다.


만약 테이저건을 쏘지 않았다면 누구 하나 크게 다쳤을지 모른다. 경찰이 다치면 그래도 괜찮다. 범인이 다치면 강압 체포니 뭐니 하며 괴롭힐 게 뻔하다. 차라리 몸에 구멍 두 개와 짜릿한 전기충격으로 쉽게 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다. 지금 나는 무기 사용 기준을 스스로 완화시켰다.







 "이경사 테이저건 자주 사용했나 봐?" 멧돼지 잡았던 선배의 말이었다.
 "처음인데요?"
 "그래? CCTV 보니까, 테이저건 쏘고, 카트리지(테이저건 탄환을 말한다) 제거하고. 범인 끌고 나오는 거 보니까 아주 프로던데?"
 "아. 그래요? 정신없어서 몰랐네요."
 "다른 사람은 자기도 감전될까 봐 카트리지 만지지도 못하는데 대단하네. 아주 잘했어!"
 "제가 사실 겁이 많은데,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했나 봐요."


 "테이저건은 말이야........"

나는 그날 선배 경찰의 무용담을 한참 들어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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