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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Dec 08. 2023

우발적 범죄  VS 의도적 범죄

형사로서 처음 담당한 살인 사건

“형사님. 제가 찌른 건 맞아요.

하지만 죽이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경찰서 진술 녹화실에서의 대화였다. 녹화실은 두 평 남짓한 곳인데 창문 하나 없다. 공기마저 탁했다. 원형테이블과 의자 몇 개, 컴퓨터가 전부였다. 사방에는 계란판 같은 모양의 스펀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방음장치였다. 녹화실이라고 나름의 구색은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선배와 내가, 맞은편에는 조사받는 사람, 즉 살인범이 앉아 있었다.


탁한 공기 때문인 건지 방음장치 때문인지 그곳에 있으면 귀가 멍해진다. 조사 당사자들이야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겠지만, 단순 참여자인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조사받는 남자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 경우를 현행범이라고 말한다.) 식당에서 지인의 배를 칼로 찌른 혐의였다. 

그는 50대 중반으로 노모와 단둘이 사는 미혼남이다. 그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작은 키와 굽어있는 등이다. 초라한 행색에 행동마저 느릿느릿했다. 어눌한 말투는 그런 그의 모습을 더욱 강조했다.


남성에겐 문제가 하나 있었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이다. 볼품없는 체형과 말투 때문에 동료들에게 곧잘 무시를 당해왔다. 이 사건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가 단골 식당에서 점심 식사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같은 나이 또래의 직장 동료가 들어왔다. 식당 주인에겐 손님이지만 남자에겐 불청객이었을 거다.


직장 동료의 눈에 혼자 밥 먹는 남성이 들어왔다. 먹잇감을 찾은 짐승처럼 그를 보고 히죽거리기까지 했다. 앞으로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고.


피해자는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주문한 뒤 남성을 지켜봤다. 그는 조용히 백반에다 소주를 곁들여 반주하고 있을 뿐, 아는 체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괜히 심술부리고 싶었던 건지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평소처럼 그를 무시했다. 그의 행색과 어눌한 말투, 느려터진 행동에 대해 하나하나 콕콕 찍어가며 놀려댔다.


평소라면 잘 참았을 남성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감정조절이 되질 않았다. 자신 만의 세계를 방해받아서 그런 건지, 살짝 올라온 술기운 때문인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남성의 분노를 피해자 알지 못했다. 계속해서 그를 조롱했다. 정도가 심해지자 남성의 얼굴은 붉게 변해갔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폭탄과 같았다.



순간 남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을 살핀 후 주방을 향해 갔다. 그때까지도 피해자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남성은 주방에서 뭔가를 가지고 다시 테이블로 왔다. 그의 표정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 느릿한 남성이 이날은 행동이 빨랐다. 식당 주인조차 그가 주방에 왔던 것을 보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남자는 말없이 서서 앉아 있는 동료를 노려봤다. 손에는 무언가 쥐고 있었다. 날카롭고 기다란 것이었다. 위험한 그 물건은 주방에서 가져온 칼이었다!


피해자는 칼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야 위기를 알아채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시퍼런 칼은 이미 그의 배로 들어가 버렸다.      

 

대낮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었다.






식당 주인의 신고로 지구대 경찰이 출동했다. 도망조차 가지 않은 남성을 현장에서 체포했다. 체포된 지 약 두 시간이 지나 내가 근무하던 경찰서로 온 것이다.


칼로 찔린 사건이라니. 초짜 형사였던 나에겐 부담스러웠다. 이런 사건은 구속까지 검토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핸드폰이나,  편의점에서 물건 훔친 절도범 정도만 조사해 봤다.


머릿속이 텅 비어 서류를 읽어도 이해되질 않았다. 나는 사건 서류와 체포된 남성을 번갈아 봤다.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뭘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몰라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구원자가 나타났다. 바로 내 선배 형사였다. 그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직접 사건을 담당하기로 했다.


지금이야 분위기가 좋아졌지만 이때만 해도 못된 선배가 많았었다. 유일하게 이 선배만큼은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나도 선배가 좋아 잘 따르곤 했었다.

   


체포한 경찰관은 이 사건을 살인미수가 아닌, 상해로 봤다. 관내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 됐다고 말하기 어려웠던 건지, 의외의 죄명으로 사건을 가져왔다.


만약 살인이었다면 형사과에서도 강력팀이 담당한다. 반대로 상해 사건이면 같은 과에서 형사팀이 담당하게 된다. 이렇게 형사과에도 두 개의 성격 다른 팀이 있다.


현재는 형사 1과와 형사 2 과로 분류되어 1과에는 형사팀이, 2과에는 강력팀이 있다.



당시 나는 형사팀 소속이었다. 살인 사건이라 생각해, 강력팀에게 사건을 가져가라고 해봤다. 하지만 받으려고 하질 않았다.


왜냐고?


지구대에서 이미 살인이 아닌 상해로 했기 때문이다. 일이 많아지는 건 불 보듯 뻔하기에 거절했을 거다.


이번엔 형사팀장이 직접 나섰다. 형사과장실에 들어가 이야기했다. 과장이 조율해 줄 꺼라 기대했다.

믿었던 과장에게 들은 대답은, “아니, 형사팀은 살인 사건 못해요?” 이것뿐이었다.


우리 팀은 대놓고 미움받는 팀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사건을 담당한 선배는 투덜거렸다. 그래도 일하나, 만큼은 딱 부러지게 하는 선배였다. 우리는 구속영장 신청을 염두하고 그 남성을 조사하기로 했다.


구속 사건은 보통 조사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한다. 그래서 조사는 진술녹화실에서 진행했다.

선배는 조사자, 나는 참여자였다. 그렇게 나는 좁아터진 녹화실에서 졸고 있었다.     


“정말 죽일 생각이 없었나요?”

“예.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찌른 거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범인의 말투는 어눌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제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게 왜 순진한 사람을 놀려가지고.'

그의 어눌함에 내가 속은 건지, 나도 모르게 범인에게 공감했다.


하지만 선배는 달랐다. 무표정으로 조사하다 그에게 날카롭게 질문했다.


“칼로 찌른 부위가 어디죠?”

“......”


“직장 동료의 배를 찔렀어요. 사람 신체에 있어 배는 어떤 곳이죠?”

“......”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람의 배 속에는 신체 주요 장기가 모여 있습니다.

팔이나 어깨를 찔렀다면 다르지만, 당신이 찌른 곳이 바로 여기에요!"

선배는 손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칼에 찔린 피해자의 상처 사진이었다.


"이래도 죽일 의도가 없었다는 건가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던 남성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한 범인이었다. 끝내 자백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인이 변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특수상해에서 살인미수로 죄명을 변경했다. 판사도 우리의 손을 들어줬다. 남자는 결국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의도적 범죄와 우발적 범죄. 어쩌면 고의와 과실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당시 이 남성은 우발적으로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방에서 칼을 가져오고 배를 찌른 건 우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자신을 모욕한 직장 동료를 신고했다면 그를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었을 텐데.


나도 어린 시절 코흉터로 심한 놀림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범인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 한들 그의 행동으로 홀로 지내야 할 노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형사로서 내가 담당했던 첫 살인 사건은 결코 후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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