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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Dec 01. 2023

천의 얼굴을 가진 범인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

나는 2021년을 끝으로 형사 생활을 접었다. 나의 경찰 생활 중 3분의 2가 형사였지만, 미련 없이 나왔다.

지금 말하는 건 나의 형사 생활 중 마지막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2020년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젠 눈이 아닌 비가 내리는 그런 날씨였다. 그렇다고 화사한 느낌의 봄날씨도 아니었다.


그날은 비가 왔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였다.


나는 강력팀 당직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벽부터 오기 시작한 빗줄기는 제법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비 오는 날씨를 좋아하는 성격인 데다 곧 퇴근할 수 있었으니까.


경찰서 강력팀 당직 근무는 24시간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다음 날 아침에 퇴근한다. 그 시간 동안에 관내에서 발생된 강력 사건은 모조리 당직 팀의 몫이다.


오랜만에 사건이 없던 하루였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을 준비했다. 해방감 마저 느껴졌다.


필연적인 사건은 꼭 이럴 때 생기는 법인가?


갑자기 형사과장께서 모든 형사들을 소집했다. 이유인즉슨 관내 모 산책로 갈대밭 사이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거다.


마대 자루 안에서 처참하게 죽은 시신이었다.


그것도 20대의 젊은 여성.


 


퇴근은 물 건너갔다. 경찰서 모든 형사들이 동원됐다. 팀마다 임무가 주어졌다. 우리 팀은 범인 검거 작전에 투입됐다.


이 젊은 여성을 살해하고 갈대밭에 유기한 살인범은 누구였을까?


묻지 마 살인이었을까?


묻지 마 사건은 흔한 범죄가 아니다. 살인 사건은 가족이나 지인과 같은 아는 사람에 의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다른 팀의 적극적인 수사 덕분에  범인을 알아냈다. 시신 발견 후 몇 시간 만이었다. 역시나 범인은 피해자와 관계가 있었다. 잔인한 살인범은 이 여성의 남자친구였다.


우리 팀을 포함해 두 개 팀이 범인을 검거하러 갔다.


그가 사는 곳은 수도권 모 아파트. 신도시 치고는 비교적 오래된 곳이었다. 한 개동에 여러 세대가 살고 있는 복도 형식의 아파트였다. 범인은 집은 가장 높은 층에 있었다.


범인이 집에 있는지 모르는 상황. 섣불리 접근했다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우리는 먼저 아파트 단지 주차장을 살폈다. CCTV로 본 범인의 승용차가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승용차가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 스포츠카 느낌의 외제차였다.

자그마한 트렁크에 여성의 시신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에서도 사악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났다. 검은색의 외관은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했다.

이 자동차의 주인은 검은색 차에 시신을 고 인적 드문 산책로 갈대밭에 버려둔 것이다.


자동차가 있다는 건 범인도 집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범인의 집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형사는 복도 우측 끝. 박형사는 좌측 끝. 두 명은 가운데 엘리베이터에서 대기.


신호를 주면 함께 진입하는 거야."


선배형사가 지시했다. 강력팀장보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담배를 즐겨서 그런 건지, 더욱 걸쭉한 목소리였다.


선배는 경험도 경험이지만, 센스와 실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강력팀장보다 현장감각이 뛰어난 건 당연했다. 보통 사건은 아니었는지 강력팀장도 선배의 말에 반문하지 못했다.

선배는 비록 나와는 다른 팀이었지만 어깨너머로 의 업무 능력을 배우곤 했었다.



우리의 작전 회의 장소는 스타렉스 봉고차였다.  그곳엔 119 구조대도 함께였다. 고층에 사는 범인이 다른 마음을 품을 수도 있기에 소방까지 요청한 것이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건물 바닥에 에어매트까지 설치하기로 했다.


형사 경력 5년 차였던 나도 긴장한 건지. 손에서 땀이 났다.



선배 형사 지시대로, 박형사와 나는 범인의 집으로 올라갔다. 복도 좌, 우측을 맡아 문지기처럼 지켰다.

나는 범인의 집 위치를 파악해보고 싶어 복도를 걸어봤다. 하지만 몇 발자국도 걷지 않아 멈춰 섰다.


범인의 집은 내가 지키고 있는 통로 바로 앞에 있었다!


순간 흠칫 놀라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놀란 나의 숨소리와 발소리가 문 너머 범인에게 들릴까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나의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숨소리를 죽였다. 손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범인의 집 현관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통로 끝에 서있는 박형사에게 손짓했다. 혹시라도 범인이 눈치챌까 겁이 났다. 흥분과 놀라움, 걱정이 섞인 감정이 휘몰아쳤다.

나의 손짓을 본 박형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는지 중간까지는 평소처럼 걸어왔다. 팔자걸음이었다. 그의 발소리가 크게 느껴져 답답하기만 했다.


나에게 가까이 오고 나서야 눈치챈 박형사였다. 그는 조심조심 다가왔다. 서로 눈으로 사인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는 열린 문틈으로 내부를 슬쩍 봤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문틈으로 본 범인의 집 내부는 어두웠다. 집의 대략적인 구조가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나의 심장 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나와 박형사는 숨을 더 죽였다. 80킬로였던 내가 이렇게 은밀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드르렁. 드르렁."


 

안에서 누군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백주대낮이었는데 안에는 아직 깊은 밤이었다. 집안 내부 우측에서 들려왔다. 남자의 코 고는 소리였다. 너무나 크고 선명했다.


범인은 우측 첫 번째 방에서 자고 있었던 거다. 완전범죄라고 생각하고 안심한 건지, 생각이 없던 건지, 세상 편하게 자는 소리였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그런 놈이었다.






모든 형사들이 현관문 앞에 섰다. 내 발크기만큼 열린 문을 보자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이것저것 가릴 게 없었다. 문지기처럼 통로를 지킬 필요도 없었다.

선배가 앞장서고 박형사가 그 뒤, 내가 세 번째로 들어가기로 했다. 강력팀장님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선배 등 뒤에 서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선배의 등이 넓었다. 어릴 때 레슬링 선수였다고 했는데 그 덕분인지 나의 등과 어깨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저 사람이 형사가 아니라 범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순간 이런 생각을 하고는 다시 집중했다.



드디어 검거 작전이 시작됐다. 선배는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본능에 따라 코 고는 소리가 들리는 우측 방으로 몸을 틀었다.


방문도 활짝 열었다.


침대와 행거뿐인 어둡고 침침한 방이었다. 침대 위에 누군가 있었다.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를 누군가였다.

끝나지 않은 겨울 날씨 공기와 자기를 잡으러 온 저승사자의 차가운 분위기를 느낀 건지 침대에서 자던 범인이 놀라서 일어났다.


 "뭐야! 누구야!"


 "가만히 있어!"


범인보다 키도 덩치도 컸던 선배가 침대로 몸을 날렸다. 내 앞에 있던 박형사도 달러 들었다. 좁아터진 방에 대여섯 명의 장정들이 서로 몸을 부대꼈다.


정신없는 상황에서 나는 벽에 붙은 스위치를 찾았다. 그러고는 스위치를 눌렀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빛이 사방을 비췄다. 범인의 모습은 아주 선명해졌다. 속옷 차림의 그는 온몸에 문신이 있었다. 선배는 이미 그를 제압해 수갑까지 채운 상태였다.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침대 이불속이었다. 여자의 소리였다.


 "꺄악! 누구세요!"


이미 범인의 손목에 은팔찌를 채운 선배는 이불로 여성의 몸을 덮어줬다. 그러고는 매너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입니다. 아가씨는 저쪽 방으로 가 있으세요."


그렇게 우린 살인범을 검거했다. 신고 접수하고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수색 과정에서 죽은 여성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이상한 건 여성이 죽고 나서도 핸드폰으로 계속 문자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지인들과.


누가 연락했을까?

억울하게 살해당한 여성이 그랬을까?


그건 범인이었다. 범인은 사귀던 여성을 죽이고 그녀의 핸드폰으로 지인들과 연락한 것이다. 마치 자신이 그 여성인 것처럼. 여성과 연락을 주고받은 지인은 그녀가 이미 죽은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두 개의 강력팀 중에 한 개 팀은 범인과 여성을 데리고 경찰서로 복귀했다. 나와 우리 팀은 CCTV를 분석하기로 했다. 범행 이후 범인의 행적을 담은 CCTV였다.



영상에서는 범인과 여성이 등장했다. 조금 전 이불속에 있던 여성이었다.

죽은 피해자를 담았던 여행가방을 들고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범죄를 마친 후 가방을 버리고 오는 모습도 보였다. 역시 둘이 함께였다. 우리는 이 여성도 시체유기죄 공범으로 함께 검거했다.


나는 그보다 영상에 나온 범인들의 얼굴을 주목했다.


우리 국민들도 살인범 기사를 접하면 분노한다. 경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표정을 본 나는 말문이 막혔다.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과는 아주 상반된 모습이었다. 젊은 남녀의 모습에서 살인범이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범인의 두 얼굴을 보았다. 아니 그는 천의 얼굴을 가진 자였다.


 "아 저 XX 같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이었다.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알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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