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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Nov 21. 2023

아동학대를 역이용하는 아이들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


제법 서늘해진 가을 저녁, 여성은 고된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벌써 오후 여덟 시, 식사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버렸다.

어두운 골목을 맥없이 걷는 여성에겐 회사 일이 힘에 부친다. 이 시간이면 녹초가 될 정도이니까.

그녀는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이다. 그녀가 바로 대한민국의 워킹맘이었다.


그녀에겐 한 가지 큰 고민거리가 있었다. 개인적인 문제라면 스스로 삭여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은 아니다. 누가 봐도 총명한 아이였다. 남편? 욱하는 성질이 있긴 하지만 자신에게까지 그러진 않았다. 사실 성격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진짜 문제는 그녀의 하나뿐인 중학교 2학년 아들이었다.

 

중학교 1학년까진 괜찮았다. 공부도 제법 해왔던 성실한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2학년이 되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돈을 요구했다. 멋도 부리고 친구도 만날 나이려니 생각하고 용돈을 올려줬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기 시작했다.

이번엔 명품 옷을 사달라고 하는 것이다. 성인도 감히 사기 힘들 정도의 고급 명품 옷을 말이다. 이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은 그만한 돈이 없었다.


아들은 엄마의 말에 수긍하지 못했다. 집 안의 주인이 자신인 것, 마냥 고함질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를 향해서.


 “옷 안 사주면 친구들한테 무시당한단 말이야!”


 “그렇다고 이렇게 비싼 옷을 사야 한단 말이야?”그녀는 대답했다.


 “엄마가 안 사주면 나 엄마 다니는 회사에 가서 깽판 놓을 거야! 아 엄마 다니는 교회도 찾아가서 방해할 거야!”     


그녀는 기가 막혔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뱃속에서 난 자식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들은 셈이었다.

사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회사까지 찾아와 아빠 몰래 용돈을 준 적도 적지 않았다.

공부는커녕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아들은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심지어 전에도 같은 이유로 한바탕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남편이 아들에게 혼을 냈는데 그게 문제가 되었다. 아동학대 신고가 된 것이다. 경찰까지 출동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누가 신고했을까? 옆집에서? 천만의 말씀이다.


신고자는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학대한다고 신고했다.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말이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제정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법이다. 시대가 변하며 가정 내에 학대 문제가 심각해 만든 특별법이다.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나 선생님들이 위반하면 이 죄에 해당하기도 한다.

문제는 물리적 폭력 말고 비물리적 폭력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바로 ‘정서적 학대’이다.

부모가 아동에게 욕설하거나, 심하게 부부싸움 하는 행위가 때에 따라서 정서적 학대가 될 수도 있다.     



아들은 계속해서 그녀를 협박했다. 옷을 사주지 않으면 협박은 밤새도록 이어질 분위기였다. 그녀는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안방에 있는 남편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이 더 커질 수도 있었다. 그녀로선 예전과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한 불안감이 적중한 건지, 안방 문을 벌컥 열고 남편이 거실로 나왔다. 이미 얼굴은 일그러져 있고 입술은 삐쭉 올라가 있었다.





“너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남편은 아들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제발 그만해..." 그녀는 남편을 말렸다. 또 아들이 아동학대로 신고하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을 테니까. 남편에게 애원까지 하며 진정시켜보려 노력했다. 남편도 참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욕하는 아들을 보니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어린 아들은 분노를 엄마에서 아빠에게 쏟아냈다. 욕설은 물론 고함질까지 이어졌다. 결국 참지 못한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왔다. 더 큰 위기를 느낀 아들은 그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


바로 경찰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그는 112로 신고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폭행.” 아동학대 신고를 접수했다. 코드 제로였다. 선배와 근무하던 나는 다급하게 출동했다.


순찰차를 타고 원룸과 편의점, 빌라를 지나 좁은 골목을 올라갔다.

정상에 오르자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가 보였다. 한 30년은 더 된 것 같았다. 외부인 출입 통제도 하지 않는지 정문에는 차단기조차 없었다.


신고자의 집 건물 앞에 가자, 한 남성이 우리를 보고 손짓했다. 40대로 보이는 남성은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이 사건의 가해자란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평소 담배를 즐기던 선배는 이때다 싶었는지 “내가 아버지와 이야기할 테니 너는 아들을 만나봐”라고 했다.    


신고자의 집은 아파트 꼭대기 층.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계단을 오르는데 생각보다 숨이 차올랐다. 반쯤 열린 현관문을 마저 열고 들어갔다.

이미 식탁 하나만으로도 가득 찬 거실에 나보다 덩치 큰 중학생 아들과 그의 반도 안 되는 모친이 서 있었다.

아들은 제 어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포식자가 먹잇감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신고자인 아들을 진정시키고 정중하게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말을 들어봤다. 마침 바깥에서 담배 피우던 선배에게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동학대는 없었다. 나쁜 건 중학생 아들이지 아버지가 아니었다. 여기서 고민이다. 형사 사건으로 접수할 수 없으니 그냥 자리를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 말이다.


생각 끝에 나는 고개 숙인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아들과 이야기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방에 들어오지 말아 주세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나는 위대한 신고자의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온갖 심술 굿은, 표정의 신고자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서 있는 나를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훑어보면서.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표정이었다. 버릇없는 놈이었다.

 

나는 오른손에 든 손바닥만 한 경찰 외근 수첩을 방바닥에 집어던졌다. 아니 내팽개쳤다는 표현이 옳다. 어린 시절 딱지치기할 때가 생각났으니까.


그러고 나서 황당해하는 신고자를 향해 말했다.


“이 어린놈의 자식이 어디 아버지를 허위신고하고 있어!” 솔직히 말해서 나의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켰다. 물론 그래선 안되지만 나도 사람이다 보니.


그는 갑작스러운 나의 대응에 놀랐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 곧 다시 소리쳤다.

“부모라면 내가 사달라는 거, 사줘야죠! 낳아주기만 하면 끝인가요?”


몇 번의 언쟁 끝에 그 녀석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 경찰로서 법적 대응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너는 아버지가 학대했다며 허위 신고했어. 그리고 어머니 회사와 교회를 찾아가 깽판 부린다고 했지. 허위신고와 협박으로 처벌할 수 있어. 오늘 너 처벌해 줄까?”


나의 말이 끝나자, 위대한 신고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뺨 위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회개의 눈물이었으면 좋았으련만, 분통 터지고 억울한 표정이었다. 나는 또다시 허위신고 하면 처벌하겠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남기고 방을 나왔다. 이 녀석이 지금은 그 버릇을 고쳤는지 모르겠다.


그간 많은 청소년을 마주해 왔다. 그들의 범죄 또한 자주 지켜봤다. 진짜 안타까운 건 부모들이다. 통제하고 싶어도 이미 커버린 그들은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출은 물론이고 폭력과 절도처럼 성인이 하는 범죄는 전부 따라 한다. 처벌되지 않는 자신의 신분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버릇없는 청소년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     


 집을 나서면서 갑자기 몇 년 전 강력팀 근무할 때가 생각났다. 중학생 딸의 어머니가 자식 문제로 나에게 상담한 적이 있었다.


“형사님. 우리 딸이요. 이제는 성매매까지 하고 있어요. 제 말도 듣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도 이제 지쳐요.”


울면서 하소연하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씁쓸했다.




'아동학대 역이용하는 아이' 사건은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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