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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Nov 10. 2023

순찰차는 자가용이 아닙니다.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것

“나 집까지 태워줘.”


“제가 왜 태워드려야 하죠?”


“너 경찰이잖아. 경찰이면 시민을 도와줘야지. 안 그래? 빨리 태워줘.”     


남성은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요구했다. 그는 50대 중반으로 키는 평균인 나에 비해서 한참 작았지만, 덩치는 훨씬 컸다. 무더운 여름 날씨와 맞지 않는 회색 점퍼까지 걸치고 있었다. 나는 벌써 30분 넘게 길 한복판에서 이 남자와 씨름하고 있었다.


지구대 경찰관의 주요 역할 중 ‘보호조치’ 업무가 있다. 술에 취해 스스로 집에 가지 못하거나 길바닥에 누워 자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출근하면 자주 접하는 사건이다.

“술 취한 사람이 길에 쓰러져 있다”, “술집 손님이 술 취해 요금도 내지 않고 자고 있다”, “택시 손님이 만취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신고가 많다.


술 취한 사람을 깨워서 일어나면 다행이다. 인사불성 상태로 집이 어디인지 말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다리가 풀려 제대로 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경우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 순찰차로 정중히 모셔다 드리기까지 한다.


만약 아무리 깨워도 눈을 뜨지 않는 경우라면 119 구급대에 요청해 병원 후송까지 고려하고 있다. 경찰이 만취한 사람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아 종종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그 잘못을 온전히 경찰에게 묻기도 한다.


나는 자진 귀가하지 못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도와주는 편이다. 그러나 적당히 취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귀가하도록 권유한다. 경찰이 택시는 아니기 때문이다. 보호조치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다.     









이 남자는 나를 개인 기사처럼, 순찰차를 자가용처럼 생각했다.

그는 나의 다리보다 두 배나 되는 묵직한 하체의 소유자다. 나도 어디 가서 하체가 빈약하다는 소릴 듣지 않는 편인데.

무쇠 다리로 뚜벅뚜벅 잘도 걸어 다녔다.


거동이 완벽한 사람을 술 좀 취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직접 귀가시켜야 하는 걸까? 그건 나의 기준에 맞지 않았다. 아마 동료들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일 거라 본다. 더구나 신분 확인해 보니 집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데려다줄 수 없다고.    

 

그러자 그가 욕설을 퍼부으며 말한다.

“네가 그러고도 경찰이야? 곤경에 처한 시민을 모른 체할 거야?”

“.......”

“너 내가 민원 넣을 거야. 청와대에 한번 민원 넣어볼까?”     


나의 설득과 남자의 고집스러운 말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물리적인 싸움이 없을 뿐, 심리전과 신경전은 계속됐다. 그동안 벌써 두 건의 112 신고를 건너뛰었다. 내가 처리해야 할 사건인데 동료가 대신 출동했다.


이 훌륭하신 고객 때문에, 출동할 수 없다고 지령실에 보고한 게 두 번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심각한 가정폭력 사건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나는 그를 향해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경찰관이 도와주는 건 스스로 집에 가지 못하는 경우나 깨어나지 못해 병원 후송이 필요한 경우예요. 선생님은 만취 상태가 아니고, 스스로 걸을 수 있어 모셔다 드릴 수 없습니다.”     


내 말을 들은 남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쯤 되면 내가 태워 줄 거라, 생각한 건가. 이젠 표정이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더는 참지 못한 남자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고는 내 주변을 돌며 손으로 몸을 툭툭 건드렸다. 온갖 비아냥대는 말을 뱉으면서 말이다.


나는 그가 이렇게 나올 거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직접 당하니 가슴이 뛰고 피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나의 맘을 모르는 남자는 더욱 심하게 시비를 걸었다. 이쯤 되면 나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기 시작한다.

 






술 취한 사람의 특성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데, 나는 이미 수십 번 같은 말을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듣고 있었다.

더 이상의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했다. 그에게 뭘 더 설명해야 할까?


끝내 나는 그를 무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에게 집에 잘 들어가라고 말한 뒤 차갑게 몸을 돌려 현장을 이탈했다.


만약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면, 조금은 정중하게 말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기꺼이 그를 도왔을 것이다.

순찰차 한번 태워주는 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니까. 사실 유치원생 친구들은 자주 태워주고 있었다.


다만 나는 진짜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범죄 신고도 나가지 못하는데 순찰차를 마치 자가용처럼, 나를 개인 운전기사처럼 하대하는 태도가 싫었던 거다.

특히 이런 부류의 사람은 순찰차를 자가용처럼 이용하는 게 하나의 습관이기도 하다. 술만 먹었다 싶으면 경찰에 112 신고한다. 술 먹어서 귀가하지 못하니 태워달라고 하면서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리 냉정한 사람은 아니다. 잔잔한 영화에도 감동해 울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얼마 전, 노령의 여성을 순찰차에 태워준 적이 있었다. 물론 여성이 매력적이라서 태워준 건 아니었다.

순찰하던 도중, 한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였다. 그곳에서 순찰차를 향해 손짓하는 여성이 있었다. 다급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우리 남편이 지병이 있어 쓰러져 병원에 갔어요. 보호자인 내가 가야 하는데 1시간째 버스가 오질 않아요. 택시도 오지 않고. 도와주세요.”     


나의 외할머니 같은 여성을 그냥 지나칠 경찰이 과연 있을까? 나는 그녀를 순찰차에 태웠다.





여성은 병원으로 가는 내내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러고는 낡은 핸드백에서 꼬깃꼬깃 접혀 있는 종이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무심코 받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종이는 현금이었다. 일만 원권 지폐 두 장이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건 내가 돈을 요구한 게 아니라, 그녀가 나에게 준 거라는 사실이다. 나는 도움 필요한 시민에게 되려, 돈을 갈취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맛있게 식사하라는 감동적인 멘트까지 남겼다.


나는 당연히 돈을 받지 않았다. 금액이 적어서 그런 건 아니다. 요즘 돈 받는 경찰은 거의 없다. 내 주변에도 보질 못했다.

나는 소중한 이 돈을 여성의 핸드백에 직접 넣어주고는


“마음만 받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이렇게 친절한 경찰관 본 적 없죠?” 애교 섞은 말까지 건넸다.


이 여성 말고도 도움 줬던 일은 많았다. 새벽 시간 공장 지역 순찰하던 중, 택시를 타지 못한 여성을 태워준 일, 길을 헤매는 외국인을 태워준 일. 치매 노인 태워 귀가시켜준 일. 이런 작은 일을 통해 많은 나를 만났던 사람과 공감대가 형성되곤 했었다.


국가에 세금 내는 사람이 경찰 도움받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일로 진짜 도움 필요한 사람을 외면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만약 이 남성이 진짜 도움 필요한 경우 경찰이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시달려 출동하지 못한다면 어땠을까?


도와줄 만한 사람을 도와주는 게 더 옳은 행동이다.


지구대 출근한 나는 오늘도 주취 자 신고를 접수했다. 그리고 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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