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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 무장 경찰 Nov 03. 2023

당신의 힘듦을 알아요.

내가 공감하는 것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드디어 무전기 소리가 멎었다. 술집과 노래클럽이 즐비했던 이 거리도 고요함을 되찾았다. 거리곳곳 버려진 쓰레기와 토사물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제 좀 쉴 수 있으니 말이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이곳은 난장판이었다. 주취 폭력 신고로 다섯 번이나 출동했었다. 이 거리가 조금 전까지 삭막했다면 믿을 수나 있을까. 나는 순찰차를 한 편의점 앞에 세웠다.



지구대 경찰관은 교대 근무한다. 4개 팀이 주간과 야간을 번갈아가면서. 주간과 야간 근무 중에 어느 것이 더 힘든지 말하자면 단연코 야간 근무다.

특히 초저녁부터 새벽 3시가 가장 바쁘다. 이 시간에 사건이 집중된다. 가끔은 끊임없는 신고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초저녁부터 술 취한 사람과 씨름하다 보면 체력 좋은 나도 지친다. 새벽이 오면 참았던 피곤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어서 날이 밝아 퇴근했으면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때였다. 고요함을 깨뜨리는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찾는 상황실 무전 소리였다.

 ‘코드 1’ 신고, “남자가 죽으려고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출동하기 싫어하는 사건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자살, 자해 신고이다. 정신 이상이나 신변 비관하는 사람이  때문에 일어나곤 한다. 내 경험상 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해 위험이 클 경우, 강제로 정신병원 입원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싫어한다. 강제 입원까지는 족히 3시간은 족히 걸리니 말이다.



 나는 순찰차 핸들을 돌려 신고장소를 향해 출발했다.


운전하면서 얼마 전 만났던 50대 남성이 생각났다. 그는 스타킹을 목에 감아 죽으려 했었다. 그것도 잠시, 나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죽으려던 계획이 실패했던 안타까운 남성이었다.


' 남자도 스타킹 남자처자살 시도하는 건 아닐까?'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순찰차 속도를 냈다. 앞을 가로막는 신호란 신호는 전부 무시하며 질주했다. 우렁찬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신고자의 집은 오래된 빌라였다. 엘리베이터는 고사하고 복도 불도 켜지지 않았다. 나는 오래간만에 보급용 랜턴을 꺼내 봤다. 하지만 켜지지 않았다. 구입하고 두 번 써본 랜턴이었다. 괜히 꺼냈나 보다. 평소 배터리 충전을 소홀히 했던 내 탓이다. 이 어설픈 모습이 11년 경찰이라니 부끄러웠다.

어쩔 수 없이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계단을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남자가 현관문을 열었다. 문만 열어주고 바로 들어가 얼굴을 제대로 볼 새가 없었다. 나와 후배는 조심스레 들어갔다.

후배는 자해 시도한 흔적이 있는지 살폈고, 나는 죽겠다고 신고한 사람과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어두운 거실에 덩치 큰 남자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는 소주병과 술잔이 있었다.

캄캄한 거실에 시커먼 남자 혼자 있어 분위기가 더욱 우울했다. 게다가 그는 안주 하나 없는 깡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후배가 나에게 귀띔으로 말했다. 자해한 흔적은 없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단순한 술주정이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몇 마디만 나누고 일어나려고 생각했다.


“왜 죽으려는 건가요?” 내가 질문했다.


남자는 낮은 저음으로 대답했다.

제가 빚이 3억입니다.”


그 남자에게서 깊은 사연이 있어 보였다. 나는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남자는 중장비 운전기사였다. 게다가 미혼남이다. 신경 쓸 가족 하나 없어 생계유지는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넉넉한 편이라고 했다.

문제는 그가 가진 빚 때문이다. 그는 암호화폐 투자가 망해 큰 빚을 졌다고 한다. 지인에게는 물론이고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남들이 좋다는 코인을 매수하고 폭발적으로 상승하자, 대출까지 받아 투자했다. 그것도 잠시, 끝도 없이 솟을 거라, 생각한 코인 그래프는 한순간에 주저앉았다.


한순간에 말이다.


사연은 딱했지만, 적당히 들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간 스스로 죽겠다고 신고한 사람치고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경찰인 내가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인생상담은 경찰보다 정신과 의사나 자살예방센터 상담사의 일이기도 하다.


 “경찰관님 제 맘 모르죠?. 저 죽고 싶어요. 차라리 정신병원 보내주세요. 진짜 죽어 버릴 거예요.”


나의 두 배는 족히 되는 덩치를 가진 남자가 울먹거리며 하소연했다.


경찰은 자살, 자해 우려가 있는 정신 이상자, 알코올 중독자에 대해 긴급입원 조치할 수 있다. 반항하면 수갑까지 사용할 수 있다.


경찰의 권한이 막강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판단이 잘못되면, 심각한 인권 침해도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강제 입원할 정도는 아니었다. 생사만 확인하려고 한 건데, 그는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시간은 이미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의 짜증도 점점 커져갔다.

자살 신고는 이렇게 질척거리는 사람이 많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이유이다.


정신병원에 연락했지만, 거절당했다. 응급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긴급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이다.

"정상적인 진료 시간에 오라고 하세요." 이게 병원 측의 답변이었다. 


남자의 가족에게 데려다주려고도 해 봤다. 하지만 그는 가족은커녕 함께 있어 줄 지인조차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경찰관으로서 역할은 이제 끝이다. 이제부터는 남자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였다.


“이제 자해하거나 죽는다는 신고, 하지 않을 거죠?”


남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몇 번의 질문 끝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지만, 여전히 죽고 싶다고 했다.


만약 내가 떠난 후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조직에선 나를 잘했다고 할까? 비난할까?


당연히 후자라고 본다. 경찰에 대한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아는 우리 조직은 출동직원을 보호하기보다 적발하고, 처벌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편이다. 근본적으로 수사기관이기 때문일까.     


결국 나는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지금 시간은 신고도 거의 없는 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속 시원하게 이야기 들어주자고 후배에게 말했다.

나는 남자의 상담사가 되기로 하고 그의 앞에 앉았다. 그렇다고 함께 소주까지 마신 건 아니었다.


어두운 분위기부터 바꾸고 싶어 불을 켰다. 거실이 환해지자 우울한 분위기가 조금은 사라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와 대화를 시작했다.


남자의 입에선 끊임없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어 그리 지루하지도 않았다. 한참을 떠든 그의 얼굴에선 드디어 미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그에게 다시 물었다.


“이제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을 거죠?”


그는 웃으며 “이제 괜찮습니다. 날 밝으면 바로 정신과 진료받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더는 그에게서 자해 위험은 없었다. 나와 후배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나섰다. 남자는 우리를 배웅하며 말했다.   

  

“경찰관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했는데요.” 


그가 다시 말했다.


 “저는 속 터놓고 말할 가족도 친구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야기를 오늘 처음 본 경찰관님이 들어주셨네요.”     


나보다 다섯 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가 감사하다며 허리까지 굽히고 인사했다.


사실 나는 그에게 어떤 조언을 해준 게 없었다. 그냥 듣기만 했다. 단지 들어준 것. 그게 전부였다.

내가 3억이나 되는 빚을 대신 갚아줄 수도 없었다. 그의 심리 상태를 전문적으로 봐줄 능력도 나는 없다. 하지만 남자는 이런 나와의 대화를 통해 극단적인 생각은 접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11년 근무해 보니, 나는 범인 검거할 때보다 이런 상황에 보람을 느낀다. 때론 감동까지 받는다.


그 이후 이 남자에게서는 더는 자살 신고가 없었다.

어쩌면 남자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기 말을 들어주길 바란 건 아닐까? 

도움 청할 곳도, 하소연할 곳도 하나 없는 상황에서 죽기 싫어 경찰을 찾았을지 모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또 다른 야간 근무 날에도 만취한 남성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역시 스스로 신고했다. 역시 경찰이 도와줄 만한 게 전혀 없었다.

그날도 바쁘지 않아 인내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줬다. 끝까지 들어봤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전부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참 만에 마음을 누그러뜨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가족도 들어주지 않는 내 말을 오늘 처음 본 경찰관님이 들어주셨네요. 무시하지 않고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이건 횡설수설한 말이 아니다. 혼자 떠든 말도 아니었다. 그의 진심이 담긴 말과 단어 하나하나가 내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간혹 경찰관이 신고한 사람 위에서 그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30대 젊은 경찰관이었던 내가 그랬었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그들을 바꿀 수 없다. 되려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사실 그들은 경찰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자기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한다.


그래서 나는 악의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을 가르치기보다는 들어주고 공감해 줄 때 

더 좋은 결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이 30대 경찰관인 나와 현재 경찰관인 나의 다른 점이다.     








“작가님은 경찰관에게 필요한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얼마 전 국악방송 라디오에 출연해서 진행자에게 들은 질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라 즉흥적으로 대답했다.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경찰이 다루는 사건 전부가 형사 사건으로 진행되진 않거든요. 대부분 현장에서 화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경험해 보니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일이 해결된 적이 참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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