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인드 무장 경찰 Nov 17. 2023

당신을 이해하는 경찰관이 있다면

당신이 공감해 주길 바라는 것

 “학교 다녀올게요.”     


K는 문 앞에 서서 말했다.그의 인사를 받은 건지, 모른 척 하는 건지 방에선 아무 대답이 없었다. K는 묵직한 검은색 책가방을 한쪽에 걸쳐 메고 말없이 집을 나섰다.

K는 수능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등교 시간은 이미 훌쩍 넘었다. 모두가 학교에 있을 시간, K는 없었다. 전교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우등생이었던 K가 등교하지 않은 것이다. 핸드폰도 꺼져 있었다. 단 한번도 결석한적 없던 K의 행동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K는 지금 어디 있는 걸까?



K의 결석 소식을 들은 그의 아버지는 당황했다. 다급하게 경찰에 신고했다.

K는 미성년자이다. 단순 가출이 아닌 실종 신고와 같이 처리하기로 했다. 낮에 벌어진 이 특이한 실종 사건은 도통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실종 수사팀 역시 K의 행적을 찾지 못했다.


K가 사라진지 8시간째. 이 사건은 지구대 주간 근무 팀을 넘어 야간 근무 팀인 내 몫이 되었다.









야간 출근한 나는 선배와 한조가 되어 근무했다. 선배는 나보다 15년 먼저 근무한 배테랑 경찰이다.

그간 만나온 선배 대부분 나름의 경찰다운 모습이 있었다. 엄하거나 화가 가득한 모습, 근엄하거나 신경질적인 모습. 저마다 다양했다.

대체로 썩 좋은 표정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선배는 달랐다.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영화 <킹스맨>의 슈트 입은 콜린 퍼스와 같은 젠틀함을 풍겼다. 슈트가 아닌 경찰 제복이었지만.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는 그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남자인 나조차도 듣기 좋았으니까.

그것뿐이 아니다. 선배는 화를 낸 적이 거의 없다. 어떤 악성 민원인에게도 평정심을 유지해왔다.




 


선배와 나는 K군의 사진을 받은 뒤 그가 갈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핸드폰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걸까?


가출할 만한 아이는 아닐 텐데.


설마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걸까?



한참을 찾아 헤매고 있을 무렵, 또 한 건의 신고를 접수했다. 폭력 신고였다. 중년 남성과 학생이 싸운다는 내용이다.

마침 근처에 있던 터라 우리가 출동했다.     






“너 왜 연락도 없었어! 학교는 왜 빠진거야!


중년 남성은 학생을 붙잡고 호통쳤다. 붙잡힌 학생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남성을 매섭게 바라보고 있었다. 숨소리마저 거칠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처럼, 보였다.


분노를 참고 있던 학생을 자세히 보니, 우리가 종일 찾아 헤맸던 바로 그 K였다. 그를 붙잡은 남성은 K의 아버지였다.


갑자기 K가 손에 든 핸드폰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모두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을 때 K가 아버지를 뿌리치고 도망가려고 했다.


덩치 큰 K를 내가 달려가 붙잡았다.


혼자 힘으로는 부족한 상황이었다. 나를 뿌리치려 하자, 더욱 세게 나는 붙잡았다.

그때 반갑게도 동료 직원이 둘이나 더 현장에 나왔다. 후배 여경까지 가세했다. 가까스로 K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나는 K를 그의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갔다. 조용히 대화하기 위함이었다. 젠틀한 선배는 K의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했다.


K는 왜 가출했는지 나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K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교를 목표로 공부했다. 그러나 그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다. 그것도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 말이다.


K를 집요하게 괴롭힌 학생이 있었다. 학교에선 공부조차 할 수 없었다. 반 친구는 물론 선생님조차 막아주질 못했다. 어쩌면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모른 척 방관한 사람과 그 모습을 즐긴 사람도 있을 테니까.


K를 향한 괴롭힘은 더욱 심해져 점점 물리적 형태의 폭력으로 발전해 갔다.


더는 참지 못한 K가 부모와 경찰, 그리고 학교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학교폭력 심사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괴롭힘은 끝났지만 이미 6개월이 흘렀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어디 시간뿐일까. 마음의 상처는 더욱 되돌릴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K는 수시 접수 기회를 놓쳤지만,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몇 달 지나서 있을 수능시험에 모든 것을 걸어 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K를 둘러싼 환경은 이마저도 방해했다. K를 괴롭게 만든 두 번째 원인이 생겼다. 그건 바로 부모님이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었다.


매일 같이 싸우는 부모님 덕분에 집에서는 공부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K 앞에서 이혼까지 하자며 싸워댔다. 정상적인 학생이라면 K와 같은 환경에서 온전히 공부에 몰입할 수 있을까?

 

부모가 싸울 때마다 K는 자신만의 아지트를 찾아갔다. 스터디 카페였다. 괴로운 환경에서 벗어났던 유일한 장소가 스터디 카페였던 거다.


바로 전날에도 그의 부모는 크게 다투었다. 이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K는 처음으로 일탈이란 것을 해본 것이었다.

학교와 가정을 벗어나 그가 있던 곳은 역시 스터디 카페뿐이었다.


사실 K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부모님이 매일 같이 싸워요. 공부하려고 스터디 카페에 있었어요.”


K는 나에게 등교하지 않은 건 잘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딱한 그의 사정을 들어보니 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평소의 나라면 미성년자인 K를 부모에게 인계했을 테지만, 오늘만은 다른 방법으로 처리했다.


선배가 적극적으로 K를 도와주려고 했으니까.


 “오늘 스터디 카페 들어가는 거 확인하고 통보하겠습니다. 아들이 공부하도록 도와주세요.”


선배가 말했지만, K의 부친은 반대했다. 왜 자식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집 안에 머물게 하려는 걸까? 나는 그의 심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죄가 없는, 되려 피해자인 K를 강제 체포해서 집에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선배는 특유의 근엄한 목소리로 K의 부친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는지 끝내 K의 부친도 마음을 접고 허락했다.     



순찰차에 K를 태우고 스터디 카페로 향했다. 차 안에서 본 K의 가방은 묵직했다. 뭐가 들었나 궁금해 물어보니, 모두 수능 서적뿐이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해선 안 되지만 11년 경찰 경력인 나의 눈에는 나쁜 짓을 할만한 아이는 아니었다.

이렇게 노력하는 아이를, 부모라면 최소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그것도 이름만으로 마음 약해지는 ‘가족’이란 말로.

너를 생각한다는 말이 되려 그를 괴롭히기도 한다. 일종의 가해자인 그는 가족의 모습으로, 선배와 친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너 저녁은 먹었니?” 순찰차 안에서 선배가 말했다.


K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순간 선배는 편의점 앞에 차를 세웠다. K와 함께 편의점에 들어가서는, “너 먹고 싶은 거 다 골라봐.” 자상하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경찰관의 호의에 당황한 건지 그가 머뭇거렸다.


 “괜찮으니 골라봐. 밥을 먹어야 기운 내서 공부하지” 선배의 재촉에 K는 소심하게 김밥과 음료를 골랐다.


 “더 골라. 그걸로 되겠어?” 선배가 우유와 김밥, 그리고 빵을 한가득 그에게 건넸다.     


K는 먹거리 가득 담긴 봉지와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스터디 카페로 들어갔다. 부모님도 몰라준 자신의 마음을 처음 본 경찰관이 헤아렸다. 왜 그런지 고맙다는 말이 입 밖에 나오진 않았지만, 경찰관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의 얼굴이 밝아진 건 아니지만 그늘이 조금은 사라진 듯, 했다.


카페로 들어가는 K의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흔들리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선배 경찰관의 따뜻한 목소리였다.  






참고로 선배는 편의점에서 안타까운 K만 사줬을 뿐 후배인 저에게는 음료수 하나 사주지 않았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전 03화 순찰차는 자가용이 아닙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