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뭇국과 체리
5월 1주차_아침밥을 건너뛰고 말았다
#1 보리쌀밥과 마라샹궈
먼 길을 운전하느라 지친 몸으로 밀린 집안일을 끝내고야 잠에 들었던 지난밤을 뒤로하고, 어김없이 찾아온 월요일은 역시나 낯설고 힘겹다. 신기하게도 일어나야 할 시간에 눈이 뜨이고,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
어제 안친 보리 섞은 쌀밥을 푸고, 아직도 남아 있던 마라샹궈 냉동했던 걸 해동시키고, 파김치를 꺼내고, 비엔나소시지 세 알을 데우고, 바나나를 손으로 뚝뚝 잘라내고, 아몬드우유를 컵에 따랐다.
마라샹궈를 깨끗하게 비우고, 종내 속 쓰림에 후회할 걸 알면서도. "마음만으로는 될 수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는 박준 시인의 시가 떠오르는 아침. 주말의 날씨와 차이 없는 예보를 보고, 다시 코트를 꺼내 입고 나서는 출근길. 지하철에 오르니 땀이 나는 건 또 어쩔 도리가 없다.(22.05.02)
보리쌀밥, 마라샹궈, 비엔나소시지, 파김치, 바나나, 아몬드브리즈#2 함박스테이크와 계란후라이
오월이 되었고, 그동안 움츠러든 시간들이 고개를 들고 기지개를 켜는 요즘. 뿔뿔이 흩어져 있던 모임 사람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고, 지난 2년 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즐겁게 웃고 떠들던 밤이 지나고. 생각보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일어난 오늘 아침.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파김치를 꺼내고, 함박스테이크를 데우고 그 위에 데미그라스소스를 붓고, 계란 두 알을 깨서 후라이를 만들고, 바나나 하나를 먹기 좋게 썰고, 아몬드우유를 컵에 담았다.
선선한 공기가 기분 좋은 아침에 에어팟을 끼지 않고 걸었다. 도로 위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와 익숙한 새소리와 사람들의 발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들리던 화요일 아침.(22.05.03)
보리쌀밥, 파김치, 함박스테이크, 계란후라이, 바나나, 아몬드브리즈#3 간장계란밥과 참치통조림
어제는 낭만적인 섬에 잠시 당도했다가 이윽고 다시 현실에 배를 정박시키고 맞이하는 오늘 아침. 이제는 불을 안 켜도 환한 집에서 오늘도 나는 주방으로 가서.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그 위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또 그 위에 계란후라이 두 장을 올리고, 참치통조림 한 캔을 따고, 비엔나소시지 다섯 알을 굽고, 파김치를 꺼내고, 바나나를 먹기 좋게 자르고, ABC주스 한 팩을 컵에 따랐다.
조금 세차게 불던 봄바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하고, 따스한 기운이 가득한 오늘. 구름 없이 맑은 하늘과 초록빛이 가득한 거리를 기분 좋게 걷는 수요일의 출근길. 내일은 쉬는 날이라 더욱 가벼워지는 발걸음.(22.05.04)
간장계란밥, 비엔나소시지, 참치통조림, 파김치, 바나나, ABC주스#4 소고기뭇국과 체리
연휴 전야를 하얗게 불태운 다음날의 아침밥을 건너뛰고 말았다. 어떻게든 차려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도저히 밥 먹을 기운이 없었고 잠이 더 고팠다. 하루 종일 골골대다 조금 회복이 되어 지난밤에 아침거리를 챙겨놓고 잠든 나는.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냉동소고기뭇국을 푹 끓여내고, 함박스테이크 한 개를 데우고 그 위에 데미그라스소스를 붓고, 남은 파김치와 참치를 꺼내고, 체리 다섯 알을 씻어내고, 아몬드우유를 컵에 따랐다.
긴팔 셔츠 하나만 걸쳤는데도 더운 아침 출근길. 어제보다 맑고 또렷한 기분이어서 감사한 오늘이 또 금요일이라 행복한 아침. 파란 하늘을 닮은 마음으로 오늘도 힘차게!(22.05.06)
흰쌀밥, 소고기뭇국, 참치통조림, 파김치, 함박스테이크, 체리, 아몬드브리즈#5 낙지볶음밥과 청국장
금요일을 무사히 넘기고, 늦게 알람 맞춰두어도 일찍 눈이 뜨인 아침. 조금 뒤척이다가 이번 주 마지막 기록을 채우기 위해 오늘도 냉장고 문을 열고.
낙지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냉동청국장을 한소끔 끓여내고, 참치통조림 하나를 따고, 비엔나소시지를 데우고, 남은 체리 다섯 알을 씻어내고, 그릭요거트를 꺼내고, 아몬드우유를 컵에 따랐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천천히 아침밥을 챙겨 먹고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기로 마음먹는 하루의 시작.
낙지볶음밥, 청국장, 참치통조림, 비엔나소시지, 체리, 그릭요거트, 아몬드브리즈어떻게든
차려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도저히
밥 먹을 기운이 없었고
잠이 더 고팠다.
글, 사진 / 나무늘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