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역 4번 출구 / 무릎
노인이 나타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의족 옆 모금통은
네모보단 조금 더 다정한 모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덮다가 덮다가
덮어야 하는 걸 덮을만한 면이 없을 땐
마지막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치부도 엄살인 양
내 몸도 아닌데
흉터 날 것 같은 불안들이 도처에 불어난다
아마 노인도 그즈음에 다리를 뽑아 들었을 테다
발 밑으로 소란만 한 진동이 친다
열차가 저 아래에서 무언가를 덮으려나 보다
잠깐일 것이다, 우리처럼
의심으로 진심을 쉽게 덮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열차는 금세 덮었던 지하의 지하를 내어준다
그 노인은 지금 몇 층에 있을까?
늘 세워져 있던 노인의 아프지 않은 다리를 떠올리면
내 몸의 가장 밑단도 어쩐지 무릎이어야 할 것만 같은데
사람들이 내 뒤에서
“지나갑시다.” “지나갑시다.” 한다
나는 지나가야 하는 사람을 위해
지나가지 않을 수 있다
노인이 등을 대고 있었던 벽은 문처럼 생겼다
그곳에 귀를 대면
누군가가 “누구세요?”라고 할 것 같다
그럼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도 덮을 수 없을 때까지
무언가를 덮고 또 덮으며
골똘해야 하나, 무거워져야 하나
지하철을 탔던 사람이 출구로 나가고
지하철을 탈 사람이 출구로 들어온다
우리의 지향은 언제나 출구 쪽으로
나만 이곳에서, 없는 입구처럼 있다
네모보다는 조금 불안한 모양으로
2호선 열차가 또 발 밑으로 지나갈 때
순환을 믿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 노인이
그곳에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도 "지나갑시다." "지나갑시다." 한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잠깐 비켜주고
나는 무릎을 앞세워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