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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인 Oct 19. 2021

생후 백일

23주 2일생을 낳았다

2021년 4월 13일  재태주수 36주 생후 95일


일주일간의 금식을 끝내고 배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아 다시 먹여본다고 했다. 그동안 쌓여있던 유축 모유로 줘본다고 했다. 한 번에 고작 4cc만큼이지만 탈이 나지 않아서 수술 없이 겨우 피해 가는 중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번에 다시 수술했다면 정말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을 거다. 그래도 600g대 때 수술했던 거보다는 지금 2kg가 넘었으니 다시 수술한다고 해도 그전처럼 위험하진 않을 것 같다. 이제 생존을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2021년 4월 18일  재태주수 37주 생후 100일


거짓말처럼 백일이 되었다. 새벽부터 떡집에 가서 주문한 떡을 찾고 삼신 상을 차려서 기도했다. 전날 18시간 동안 일해서 비몽사몽 한 남편과 병원에 면회를 갔다. 평소라면 짜증 냈을 텐데 아기 보러 간다고 하니 묵묵히 집을 나서는 걸보고 아빠가 되니 변했다고 생각했다. 백일떡은 많은 사람들이 나눠먹어야 아기가 건강하게 큰다는데 코로나라 아무도 만나는 사람이 없어서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진들께 떡을 드리고 나니 다른 사람은 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 현관문에 쪽지와 함께 백일떡을 걸어놓았다. 이주 후면 원래 태어나기로 했었던 5월이 된다. 지금까지 뱃속에 있었어야 했는데, 너무 미안하다.



2021년 4월 27일  재태주수 38주 생후 109일


장의 유착이 의심된다고 하여 지난 일주일간 장사진을 매일 찍었고 금식과 네오케이트 분유를 번갈아가며 수술 문턱을 넘나들었다. 오늘 드디어 장상태가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약 수술을 하더라도 2.5kg만 넘겨보자고 버티고 있었는데 버티는 동안 장이 조금 정상화되었다. 예정일이 9일 남았다. 앞으로 9일 후면 사회적 1일이 된다. 교정일이라고 부르는데, 모든 발달과정은 원래 예정일을 기준으로 본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다. 최근에 산소농도도 진전이 없고, 장도 불안정하고 (분유 1/4 수액영양제 3/4로 크고 있다.) 아직 입으로 빨지도 못하지만 여름 안에는 집에 올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아플 땐 작은 일에도 기분이 상해서 괜히 애먼 남에게 화풀이할까 봐 친구들과 연락도 끊었었는데 아기가 금식을 끝내고 다시 먹는다고 하자마자 기분이 풀렸다. 주변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볼까 봐 그게 싫으면서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낸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중이라 만나자는 사람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인 걸까. 모두 다 신나게 노는데 나 혼자 고립되어있었다면 훨씬 더 우울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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