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 2일생을 낳았다
2021년 5월 2일 재태주수 39주 생후 114일
아기 몸무게가 급격하게 늘은 것에 비해 폐가 받혀주지 못해서 호흡기가 한 단계 높은 양압기로 다시 돌아갔다. 좀 놀랐지만 그만큼 컸다는 뜻이기도 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꿈에서도 아기가 나온다. 보고 싶다. 곧 출산예정일인데 지금쯤 낳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이런 마음 모두 사치다. 우리 아기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도 가장 심각한 아기들이 모여있는 방에 있는데 이들 중에 우리 아기가 가장 오래됐고, 이제 많이 크고 호전되고 있으니 누군가 새롭게 이 방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 아기가 제일 먼저 다른 방으로 이사를 갈 거라고 했다. 최근에 옆 침대에 새로운 아기가 왔다. 내가 면회 갈 때 옆 침대에는 아빠가 혼자 면회 왔었는데 다음번에 가보니 이제 막 출산한 것 같은 엄마가 옆 침대 아기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번에 갔을 땐 그 자리 침대가 비어있었다.
남편은 모유를 가져다주다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장의사가 작은 박스를 들고 나오는 것을 봤다고 했다. 우리 둘 다 각각 목격한 이후에 극도로 우울했다. 우리 아기가 잘 살아 나오길 기도하면서 세상에 아픈 아기들이 없길 기도한다. 똑같은 의료진이 정성스레 돌봐도 여러 결과들이 나온다. 옆에서 눈치채는 우리도 이렇게 절망스러운데 당사자와 가족들 그리고 의료진들은 얼마나..
우리 아이를 너무 예뻐해 주시는 의료진들이 있다. 나는 그냥 아기들을 좋아해서 소아과에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이겠거니 했는데.. 이제 알겠다. 우리 아기가 살아있음은 그들이 3교대, 당직 등 밤을 새우고 사생활을 포기하면서 노력한 일의 성과이기도 하다. 밤새 일하고도 성적이 좋지 않을 때의 절망감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다른 직업은 나쁜 성과의 결과가 사람의 목숨은 아닐 테니까.
최근에 우리 아기일도 그렇지만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 가신 친척 할아버지가 코로나로 돌아가시거나 또 남편 후배의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돌아가신 일들이 있었다. 죽음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기분이다. 원래 이렇게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동안은 어려서 접할 일이 없었나 아니면 정말 최근에 내 주변에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기는 건가 싶다. 또 한편으로는 최근에 우리 아기 말고 나와 동갑인 친구들 대여섯 정도 아무 문제없이 회사 다니면서 아기를 잘 낳았다고 해서 왜 내 아기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우울했다. 그나마 노산이라 이런 일이 생겼나 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나 혼자 늙었나 보다.
우울한 이야기를 쓴다고 해서 매분 매초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상 최근에 게임에 미쳐 살고 있다. 원래 게임은 크게 해 본 적 없고, 심즈나 문명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것만 가끔 했었다. 썩 재미없이 살고 있는 와중에 핸드폰 게임이나 해볼까 싶어서 이게임 저게임 인기순위를 보고 다운로드했었는데, 한 게임이 할만했다. 고양이 한 마리와 쥐 네 마리가 싸우는 게임인데 다른 유저들과 함께 하는 게임이다. 다른 유저들과 같이 하는 게임이 처음이라 친목을 다지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매일 4시간 이상씩 하고 있다. 한판에 10분 정도 걸리는데 이런 게임을 처음 해봐서 그런지 오래 해도 새로 온 다른 유저들보다 잘 못한다. 그래도 계속하니까 레벨이 점점 오르더니 랭킹 상위 1%까지 올라갔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실력은 곧 노력이다. 내 아이디는 아기이름을 이용한 아이디인데 그래서 그런지 내가 어린 남자 앤 줄 알고 날 챙겨주면서 게임을 가르쳐주는 유저도 생겼다. 게임하는 다른 애들이 채팅하는 걸 보기만 해도 재밌다. 내 주변은 이제 이십 대도 한 명밖에 없는데 십대 이십대들이 공부하기 싫어하거나 부모님 몰래 핸드폰을 한다거나(몰폰이라고 하더군) 학원 가기 싫어한다거나 하는 채팅을 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그들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잘 못 알아듣겠는 말들도 있어서 처음엔 검색도 좀 해봤다) 적어도 거기에서는 내가 아이가 아파서 입원해있는 아줌마는 아니었다. 게임을 잘하진 못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게이머였고 서로 반말하는 걸 기본으로 하는 인간관계도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게임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은 초집중하면서 아무 생각 안 할 수 있다. 아기가 집에 와야 게임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