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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인 Aug 12. 2021

지금, 양수가 터진 건가?

샤니를 기다리며..

2020년 12월 30일  21주 6일


저녁 8시 반,

재택근무하고 있는 남편과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임신한 후에 극도로 두려워진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 때문에 집안에만 있었는데 그것 또한 건강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매일 만보씩 걸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날씨도 춥고 운동가기 싫어서 괜히 누워서 뒹굴 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줌을 싼 것처럼 액체가 다리사이로 쏟아져 나왔다. 꽤 많은 양이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소변을 참듯이 아래쪽에 힘을 줘봤는데 그렇게 닫혀서 물을 막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당황해서 남편한테 상황 설명도 못하고 일단 화장실로 걸어갔다. 가는 와중에 입고 있던 레깅스가 완전히 젖고 바닥에 흘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곧바로 다니던 산부인과 야간 진료실로 전화를 했다. 그러자 질염 때문에 생긴 일일 수 있다며 병원에 일단 오라고 했다. 병원에 가기 위해 다리를 씻고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 앞에 잠깐 서있었는데 또 양수가 흐르고 있었다. 다시 씻고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것 같아서 일단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당직의는 초음파로 자궁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온 물이 양수인지 확인했는데 양수가 맞았다. 하지만 아직 양수 양이 많으니 일단 입원하라고 했다.

갑자기 이 상황이 무엇인지 어안이 벙벙했지만 자궁 안에 양수 많은걸 확인했으므로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좀 샜다가 다시 막히는 건가?


병원 입원이 거의 처음이라 낯설었지만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되겠지 싶어서 입원복을 입었다. 병실 화장실에서 입원복을 갈아입을 때 양수가 자꾸 흘러서 다리에 묻고 그게 찝찝해서 샤워기로 닦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내가 자꾸 시간을 지체하자 간호사가 좀 짜증 섞인 소리로 일단 빨리 누우라고 했는데 그쯤부터 뭔가 돌아가는 상황에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았다.


코로나라 전년도보다 임산부가 6만 명이나 줄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6인실에 나 혼자 뿐이었다. 내가 다니던 병원은 동네 산부인과라고 하기에는 꽤 규모가 있었고 함께 운영하는 소아과와 산후조리원과 함께 건물 전체를 쓰는 병원이었다. 나는 수액과 항생제를 맞으며 누워있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핸드폰으로 검색해봤다. 사실 검색한다고 해서 바로 나와 같은 케이스가 나오진 않아서 좀 오래 걸려 찾아야 했다. 나는 21주 6일 차였고, 이쯤에 양수가 파수되어서 병원에 장기입원을 사람들 글들을 보면서 안심했다. 양수는 처음에는 많이 흐르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병실에서 이제 태어난 아기가 밤새 우는 바람에 잠은 설쳤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침 7시부터 눈이 떠져서 다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여자분이 22주에 조기 양수 파수로 아기를 떠나보냈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22주부터는 뱃속의 아이를 잃었을 경우 유산이 아니라 조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장례를 치러야 했다고 한다. 장례? 갑자기 남일 같지 않았다. 출산과 아기의 사망 그리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생각하니 어지러웠다. 처음으로 눈물이 좀 나왔다.


오전 9시가 되자 주치의 선생님께서 출근하셨다. 간호사 선생님이 휠체어까지 가져와서 나보고 타고 가자고 했다. 아픈 곳 없이 환자처럼 대우받으니 어색했다. 주치의 선생님께 오전에는 양수가 많이 안 흘렀다고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리고 바로 초음파로 봤다.


양수가 거의 없다고 했다. 오전에 양수가 많이 안 흐른 이유는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전날 밤에 도착하자마자 꽤 많은 양이었던 양수가 밤새 모두 쏟아진 것이다. 아기가 너무 어려서 살기 어렵다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면 안 되나요?"

"가도 안돼요 그냥 기다리셔야 돼요"


"방법이 아예 없나요?"

"없어요 기다리셔야 돼요"


"뭘 기다리나요"

"아기가 유산될 때까지요"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아기가 스스로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꺼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낙태금지법 때문이겠지


이렇게 하루 만에 갑자기?

방금 초음파 볼 때도 팔다리 잘 움직인 애를 포기해야 한다고?

나랑 매일 클래식이랑 크리스마스 캐롤 들으면서 침대에서 딩굴딩굴거리던 아기를 그냥 이렇게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도저히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울고 있자 간호사가 휠체어를 밀어 병실에 데려다줬다.

병실 침대에 앉아 이렇게 울면서 아기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우선 남편에게 전화했다. 다행히 코로나로 재택근무 중이라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편을 부르고 남편이 병원에 오는 그 짧은 시간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창에 검색으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을 검색해서 무작정 대표번호로 전화했다. 모든 기관이 그렇듯이 전화받는 분이 날 전화 뺑뺑이 돌리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아이가 죽는 걸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ㄱ병원에서는 담당 교수님이 다음 주에 출근하시니 다른 병원으로 전화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다음 가까운 병원을 다시 검색했다. ㅅ병원 대표번호로 전화했다. ㅅ병원에서는 자기네 병원은 3차 병원이라 개인이 응급실로 오더라도 지금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있는 병원에서 협진 요청을 해서 응급실로 오면 받아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통화하는 사이에 남편이 도착했고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놀란 남편을 쳐다볼 겨를도 없이 나는 바로 간호사를 불러서 주치의 선생님께 협진 요청해달라고 부탁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오더니 협진 요청해도 자리가 없을 거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정확히는 "ㅅ병원이 가장 작은 주수의 아기를 살려본 경험이 있고 물론 아기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가능성도 희망을 걸어봐야겠지만 그래도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방금 직접 통화했는데 자리 있다고 했다. 아니면 다른 곳으로 어디든 보내달라고 하니 그제야 ㅅ병원 ㅇ병원 *병원 모두 연락해본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이 세 병원이 미숙아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병원이었다.) 나에게 희망을 주지 않던 우리 주치의는 그때부터 적극적이 되어 10분 안에 협진 요청을 끝내고 구급차를 불러줬다. 입원은 내가 전화했던 ㅅ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양수가 터진 지 14시간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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