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인 Aug 15. 2021

내 탓하기에는 좀 어려웠다. 냉정하게

샤니를 기다리며..

2021월 1월 2일  22주 2일


밤새 심장 모니터기가 아주 잘 잡히고 잠도 잘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괜찮았다. 이대로라면 4일은 금방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평일에는 저녁 두 시간 주말에는 점심 저녁 두 시간씩 면회가 가능해서 남편이 꼬박꼬박 오는데 오늘은 택시비가 아깝다며 자전거를 사서 타고 왔다. 내 남편은 꼭 내가 곁에 없을 때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낸다. 희한하다.


병원에 와서 모든 검사를 한 결과 양막이 찢어진 것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가장 의심해볼 만한 염증 수치도 낮았다. 조기양막파수에 대한 원인은 50%밖에 연구되지 않았고 따라서 내 경우에는 그 나머지 50%의 원인불명 중 하나의 케이스가 된다. 내가 입원한 ㅅ병원에서 이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어서 나는 기꺼이 그들의 샘플이 되기로 했다. 인류가 출산으로 이어져내려오고 있는데도 조기양막파수에 관한 연구가 50%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 좀 놀랐다. 아마도 생명 탄생과 관련된 일은 윤리적인 부분에서 제한이 있기 때문에 연구가 더딘 걸까? 아니면 최근 선진국에서는 저출산 문제로 산부인과가 소위 "돈이 되지 않아서" 연구자들이 부족한 걸까?

꼭 한 가지 원인이라도 더 밝혀져서 그에 대한 대비나 치료가 가능했으면 좋겠다. 나 같은 일은.. 정말 아무도 겪지 않았으면 한다.


오전 오후 계속 잠만 자는데 유튜브나 영화 같은 걸 보면 집중하기 어렵다. 현실도피성 수면 인가 싶다.




2021월 1월 3일  22주 3일


아침부터 단 걸 먹었더니 꼬물범이가 뱃속에서 잘 움직였다. 그동안 눈물이 나서 태담을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말도 걸었다. 태교음악으로 그동안 계속 캐럴을 들었기 때문에 내 플레이리스트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음악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존 레전드의 "Bring Me Love"를 듣다가 I deserve you here 'cause I've been good이라는 가사는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양수가 터지고 나서 의학적으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그럼 내가 못돼서 벌 받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했지 자식이 나쁘게 될 만큼 살아오지 않았다.


임신하고 나서 넘어진 적도 없고 임신 3주 차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걸 먹은 적도 없고 일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고 코로나가 무서워서 사람들도 거의 안 만났다. 또 집에만 있으면 건강에 안 좋을까 봐 일주일에 4~5일은 만보씩 걷고 늘 즐거운 음악과 영화,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5분에 한 번씩 하는 입덧이 너무 심해서 남편이 살짝 안아주기만 해도 헛구역질을 해댔기 때문에 성관계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걸리는 점이 있다면 내가 서른네 살이 아니라 스물네 살에 임신했다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나이에 대한 죄책감이었는데.. 나의 스물네 살 때 남자 친구 역시 지금의 남편이지만 우리 둘 다 학생 신분이었다. 남편은 그 후 7년은 더 학생으로 있었다. 그럼 오랫동안 학생이기만 한 남편을 차고 내 자아실현이라며 피디로 전국 돌아다니지 말고 일찌감치 어릴 때 다른 남자랑 결혼했어야 했나 그랬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도달하자 그럼 어차피 지금 아이는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 탓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 친구들 모두 코로나 시국에도 직장 다니면서 임신해도 이런 일이 없다는 걸 생각하니 또 다 의미 없는 생각들이었다.


내 탓하기에는 좀 어려웠다. 냉정하게

그러니 난 당당하게 널 잃지 않을 만하다


양수파수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다 양수 없이 뱃속에 있다가 태어난 아기들에게 여러 위험들이 있고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찾게 되었다.


내일이면 생존의 최소 조건인 22주 4일이 된다. 빨리 자고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22주 4일 그다음엔 23주 24주 25주 이렇게 일주일 단위로 셀 수 있겠지

34주까지 갔으면 좋겠다 따뜻한 봄날에.

5월 6일이 예정일이라 남편과 어린이날 선물과 생일선물을 따로 주냐 함께 주냐로 논쟁을 벌였었는데.. 굳이 일찍 태어나서 두 개 다 받으려는 걸까?

이전 03화 우리 모두 불쌍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