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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인 Aug 13. 2021

우리 모두 불쌍했다

샤니를 기다리며..

2021년 1월 1일  22주 1일


혼자 있을 때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면회 온 남편만 보면 눈물이 나온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부인과 아기를 병원에 두고 혼자 빈 집에 있을 그를 생각하니 우리 모두 불쌍했다. 마음으로는 22주 4일까지 버티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어제 오전에 애기를 보내줘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무너지지 않고 병원을 알아봐서 올 수 있도록 한 게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였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과정을 다시 곱씹어보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그 의사는 왜 나에게 아기를 포기하게 했을까? 본인이 살릴 수 없으면 더 큰 병원에 전원시키는게 작은 규모의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22주 4일생부터는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전문가가 모른다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가? 결국 나처럼 직접 연락하지 않으면 살릴 수 있는 아이들도 포기되는 건가? 그 상황에서 바로 다른 곳으로 연락해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환자의 적극성 뒤에 숨어서 방관하는 걸까? 그동안 이렇게 포기된 아이들이 몇이나 있었을까?


의문과 분노가 점점 쌓였지만 사실 분노보다는 의문이 더 강했다. 그 의사는 정말 몰라서 포기시킨 거였을까 아니면 알지만 낮은 확률은 곧 없음으로 판단하여 나에게 안된다고 한 거였을까? 후자라면 그 결정을 왜 본인이 하려고 했을까? 환자 본인의사는 안중에도 없는 거였나? 누군가에겐 간절한 임신이었을지도 마지막 임신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적어도 선택할 기회는 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임신 중기에 분비물이 많아진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양수가 조금씩 새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잘 몰라서 이렇게 됐나봐 미안해.  눈물이 나와서 태담을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아기가 음악을 좋아하니까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듣기만 하면 잠을 잤다. 계속 잤다. 계속.


3일 남았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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