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5년 전에 혼인신고를 했다. 만난 지 2년 차, 같이 지낼 집을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을 다녀봤지만 번번이 쓴맛을 봤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서울 어디에도 발 붙이기 어려울 것 같았다. 조건이 맞는 곳은 '근린생활시설'에 융자가 있는 위험한 매물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예비 신혼부부로 행복주택에 넣었는데 덜컥 당첨이 된 것이다. 들어가냐 마냐, 결혼식을 하냐 마냐,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식은 미뤄두고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 서울에서 집을 알아보고 나니 전세금 떼이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지낼 수 있다면 혼인신고를 여러 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행복주택이 도로변에 있어 빵빵거리는 소리가 자주 나고 창문을 열면 회색 건물이 시야를 가렸지만 우리만의 공간이 생겨서 좋았다.
서로 다른 이유로 주말에 만났다. 평일은 각자의 공간, 나는 직장이 가까운 부모님 집에서 파트너는 돌봄이 필요한 그의 부모님 집에서 보냈다. 주말에 만난 우리는 밀린 TV를 보고 자고 먹고 산책하며 늘어지게 쉬었다. 가구가 많을 필요가 없어 필요한 것만 갖추고 간소하게 지냈다. 한강권이라 조금만 걸어도 탁 트인 한강을 걸을 수 있었다. 가끔 날씨 좋은 날엔 강바람을 느끼며 와인을 마시고 야경에 기대어 조곤조곤 수다를 나눴다. 낭만적이었다. 우리만의 별장으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라 일상을 살아갈 환기가 됐다. 주말부부처럼 "다음 주에 만나"가 인사였던 우리에게 어느 날 큰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가 생긴 것이다.
생리 예정일 즈음에 코로나 3차 백신을 맞았다. 코로나 백신 1차, 2차를 맞고 생리주기가 늦어졌어서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다. 생리통처럼 우리한 느낌이 오래가길래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마 임신인가. 올해 대학원을 가야 하고 새로 벌인 일들이 많은데. 도무지 혼자 임신테스트기를 해볼 자신이 없어서 주말까지 기다렸다. 파트너가 사 온 테스트기로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심장이 쿵쾅댔다. 이럴 수가, 코로나 자가 키트는 늘 한 줄이었는데 임신테스트기는 선명하게 두줄이 나왔다. 실감이 나지 않아 웃음부터 났다. 파트너는 왠지 그럴 것 같았다며, 생각보다 침착하고 차분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앞으로 어떻게 하지?" 외침 같은 내 말에 가만히 나를 안아주었다. 따뜻한 품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되겠지 안심이 됐다. 일어날 일이 일어나 버렸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앞으로를 준비했다. 나는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소식을 전하고 축하를 받은 뒤에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편이라면, 그는 바로 리서치를 시작했다. 예전에 봤던 다큐가 있다면서 홍대입구역 근처 산부인과가 어떠냐고 제안했다. 다큐를 보니 소신껏 진료를 하며 자연분만을 지향하는 병원의 운영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날 병원에 가기로 하고 뒤척이는 밤을 보냈다. 잠은 안 오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는 말했다. "우리가 계속 이렇게 지낼 순 없을 테니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나 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많은 변화가 찾아올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산부인과에 가자 비로소 실감이 났다. 한쪽 벽이 초음파 영상으로 가득 찼다. 검은 화면 한 구석에 길쭉하게 동그란 물체가 보였다. 아기집이었다. 내 몸에 이런 곳이 있다니, 깊은 바닷속 같다고 생각했다.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파트너는 자궁이 우주 같다고, 아기집을 소행성이라 표현했다. "지구에 충돌하는 소행성처럼 우리에게 찾아든 생명체랄까"
그동안 비혼을 고집하지도, 아이를 낳지 말자고 결심한 건 아니었다. 우리의 상황과 조건 안에서 가능한 만큼 집을 구하고 주말에 만나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아주 불현듯, 갑자기, 예상치 않게 아이가 찾아왔다. 딱히 낳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소행성으로 인한 충격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나와 파트너에게 어마어마한 변화가 생긴 셈이었다.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로 전환되겠다는 것, 내 몸에 작은 생명이 열 달 동안 머물면서 생길 변화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