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은 Mar 02. 2023

09. 나올 생각 없이 조용한 녀석   

출산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가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36주, 막달에 접어들었다. 막달 검사를 하고 양수 파열, 규칙적인 진통, 출혈이 있으면 바로 병원에 오라는 설명을 들으니 실감이 났다. 이제 진짜 곧인가! 드디어 만나는건가! 사실 설렘보다 출산의 고통을 상상하며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얼핏 보고 들은 것만 해도 엄청 아플 것 같았다.


출산휴가가 시작되는 날 학생 한 명을 만났다. "재은, 엄마가 그러는데요. 아이를 낳는 건 여자 몸이 깨지는 거래요." 찢어지는 것도 아니고 깨진다고? 내 몸이 산산조각 나는 이미지가 스쳤다. "설마 깨지겠어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손발이 차가워질 정도로 핏기가 사라졌다. 밤마다 출산 시 통증 줄이는 방법을 찾아봤다. 알고리즘으로 뜬 리얼 출산 영상을 보면서 눈이 커졌다. (도대체 왜 남기는 거지? 도대체 왜 봤을까!) 정말 고통스러워 보였다. 어흥이 낳다가 까무러치는 건 아니겠지?


출산의 고통을 짐작하며 몸서리치는 나와 다르게 어흥이는 잠잠했다. 평생 내 배에서 살 것처럼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막달이 되자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태동검사를 했다. 둥글게 커진 배 가운데에 태아의 심장박동과 움직임을 체크하는 기계를 붙이고 20분가량 누워있는 검사였다. 이상이 있으면 입원할 수 있어 일찍 가야 했다. 아침에 부랴부랴 출근길 사람들에 섞여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도착하면 노곤해졌다. 어흥이도 그런 모양이었다. 분명 집을 나설 땐 꾸물꾸물 움직였으나 태동검사만 하면 조용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기계를 여기저기 붙였다 뗐다, 배를 꾹꾹 눌러도 심장소리만 두근두근 옅게 들릴 뿐이었다.  


처음엔 무슨 일이 있나 싶은 불안함도 있었으나 같은 상황이 여러 번 되자 한숨부터 나왔다. 검사 결과를 받아 든 의사 선생님은 한결같았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곡선이 두세 번은 위로 치솟아야 하는데 잠잠한 상태예요. 혹시 모르니 오후에 다시 검사하겠습니다. 태아를 깨워서 오세요." 간호사 선생님은 안쓰럽게 쳐다봤다. "산모님 점심 드시고 초콜릿 같은 당분도 잔뜩 먹고 오세요." 점심을 많이 먹어 더부룩해서 잠이 오지 않는 상태로 누워있어야 어흥이의 움직임을 겨우 느낄 수 있었다.


40주 출산예정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생리통처럼 우리한 통증이 있긴 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어흥이는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오전 태동검사는 고요했고 오후에 다시 가야했다. 점심으로 쉑쉑버거에 콜라 한 잔을 들이켜고 트윅스 초콜릿을 먹으니 이제야 일어난 듯 움직였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초음파와 태동검사에서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지만 뱃속에 오래 있으면 태변을 먹어서 아이가 위험할 수 있어요. 일단 일주일은 지켜봅시다. 그래도 소식이 없으면 유도분만을 할지 제왕절개를 할지 결정해야 해요."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설마, 일주일 안에 결판이 나겠지.

언제든 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짐을 풀었다 꾸렸다 푸는 동안에도 어흥이는 꼼지락거렸다. 일주일이란 시간을 번 것 같으면서 제 때 나와야 한다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엄마는 원래 첫 아이는 늦게 나온다고, 마음 느긋하게 먹으라고 다독였다. 출산 시 고통 완화하는 호흡법은 이런 상황에서도 유용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긴장을 풀었다. 막달에 걷는 게 좋다기에 눈을 뜨면 요가를 하고 틈틈이 뒷산을 산책하면서 가을볕을 만끽했다. 자기 전에 근력운동을 하고 스트레칭을 했다. 살이 빠질 정도로 쉴 새 없이 열심이었다. 파트너가 어디 대회 나가냐며 운동선수 같다고 감탄했다.


호흡에 집중하고 몸을 움직일수록 이 시간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내가 무언가를 이토록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열 달의 시간을 오롯이 한 존재를 기다리는 데에 쏟는다는 것. 임신은 출산까지 디데이를 두고 하루하루 세는 일이라 여겼는데 막달이 되고 보니 느긋함을 배우는 귀한 날들이다.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보내면서 되려 지금을 살고 있다. 어흥이가 준 선물 같은 날들을 충실히 보내야지.


물론 일주일 안에 나오겠지 바람은 역시나, 녀석은 41주가 되어도 조용했다. 나는 이제 유도분만 아니면 제왕절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이전 08화 08. 임산출산육아 클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