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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Mar 11. 2024

라면을 먹을 뻔했다

킹받는 글쓰기 2. 띄어쓰기 어디까지 해 봄?


늦은 밤, 무심코 SNS에 들어갔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나를 라면 먹방 릴스로 안내했다. 자글자글 라면 끓는 소리, 잘게 썬 대파에 달걀 반숙 노른자까지. 릴스를 보기 전엔 분명 아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배가 고팠다. 이것은 릴스가 부리는 마법! 호박마차에 올라타는 신데렐라처럼 부드럽고 사뿐한 발걸음으로 라면이 든 선반 앞에 섰다. 된장맛이 나는 최애 라면을 고르고 냄비에 물을 따르려던 그 순간! 다음 날 아침 일정이 떠올랐다. 지역 도서관 6주차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는 날이다. 퉁퉁 부은 얼굴은 주름을 펴는 장점은 있지만 푸석푸석함까지 감추긴 어렵다. 그런 얼굴로 첫 대면을 할 순 없지. 아쉽지만 라면 봉지를 도로 내려놓기로 했다.      

섭섭하고 허전한 마음을 위로하는 방법은 역시 SNS다. ‘하트’라는 공감을 받아 허기를 느끼는 위장을 달랠 수 있길 바라며 라면을 손에 들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캡션을 단다.     


“이 시간에 라면 먹을 뻔했다. 잘 참았어.” 끝에 활짝 웃는 이모티콘도 붙였다.     


그런데 음, 뭔가 이상하다.     


“라면 먹을뻔했다.”     


맞나? 이것도 아닌가? “라면먹을 뻔 했다.” “라면 먹을뻔 했다.” 

에잇, 모르겠다. 그냥 “라면먹을뻔했다” 이렇게 다 붙여서 올리고는 얼른 창을 닫았다. 에세이 원고도 아니고 SNS 짧은 글인데 뭐 어때.     


그래도 명색이 글 쓰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찜찜하다. 바로 검색을 해봤다. “먹을 뻔했다”가 맞았다. 헷갈리긴 했어도 맨처음 직관적으로 쓴 게 틀리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다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수정’ 버튼을 눌렀다.


띄어쓰기는 늘 어렵다. 띄어쓰기의 대원칙은 ‘단어는 띄어 쓴다’는 것이다. 단어는 다시 단일어, 합성어, 파생어로 나뉘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아마 글이 읽기 싫어질 테고, 나도 이런 이야길 하려는 게 아니라 ‘단어’가 무엇인지는 이 글 맨 뒤에 추가로 달아놓겠다. 물론 나 역시 다시 공부할 겸해서.     


아무튼 ‘뻔’은 의존명사라서 앞에 ‘먹을’ ‘넘어질’ 같은 다른 말이 꼭 필요하다. 의존적이긴 해도 명사니까 앞말과 띄어 쓴다. 그나마 ‘뻔하다’는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쓸 때마다 확신이 없는 건 ‘-만큼’이다. ‘만큼’은 의존명사와 조사, 두 가지로 쓰인다. 의존명사일 땐 앞말과 띄어 쓰고 조사일 땐 붙인다. “먹을 만큼 먹어.”에서 ‘만큼’은 의존명사, “라면만큼 맛있다.”에서는 조사다.


‘명사, 조사, 동사, 형용사’ 같은 말들을 ‘품사’라고 한다. 품사는 중학교 1학년 때 배우는 문법인데, 띄어쓰기와도 관련이 깊다. 그때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은 지금도 글 쓸 때 띄어쓰기가 잘 되는지 궁금하다. 나는 딱 그 시기에 학교를 다니지 않아 품사를 전혀 배우지 못했고, 지금도 품사는 내게 어둠의 영역이다.


여기엔 나름 사연이 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상도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왔다. 어쩐 일인지 학교 배정이 늦어져 집에서 두 달이나 쉬어야 했다. 5월 중순에 겨우 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국어 교과서엔 형용사, 조사, 관형사, 부사 등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무슨 뜻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데, 친구들은 선생님 질문에 척척 대답도 잘했다. 품사 문법 진도는 이미 막바지에 이른 상황. 공부 욕심은 없어도 나대는 건 자신 있는 ‘파워 E’인 내가 수업 시간에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다니. 오로지 대답이 하고 싶어서, 머리와 눈알을 최대한으로 굴려 품사 지식을 조금씩 늘려갔다.


눈치와 허세로 배운 문법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었다. 어느 정도 대답을 하게 되니 만족감이 커져 어렵고 복잡한 부분은 건너뛰게 되었고, 그마저 진도가 다 끝나니 공부할 동기가 사라진 것.


14살 때 대충 익힌 지식으로 글 써서 먹고 산 지도 14년째. 이게 가능했던 건 ‘한글프로그램 ’의 맞춤법 도우미 덕분이다. 띄어쓰기를 잘못하면 빨간 밑줄이 쫙 그어진다. 글자 사이를 이렇게 저렇게 붙였다 떨어뜨렸다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빨간 줄이 사라진다. 이걸 무수히 반복하는 사이, 의존명사인지 조사인지 몰라도 느낌으로 알게 되는 게 많다. 물론 ‘-할 뻔하다’ ‘-뿐’ ‘-만큼’처럼 끝까지 안 외워지는 것도 있다.


근데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더라. 글 잘 쓰는 작가들도 띄어쓰기에 꽤 약하다. 어떻게 아느냐면, 그들이 SNS에 올리는 글을 보면 알지. SNS에는 띄어쓰기 검사 기능이 아직 없다. 한글프로그램에 먼저 쓴 글을 복사해서 올리거나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에 돌리는 번거로움을 감수하지 않는 한, 20년 넘게 글 쓴 작가들도 문법적 오점을 가끔 남긴다. 물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지 아주 엉망이란 뜻은 아니다. 문법에 너무 많이 어긋난 글은 읽기 어지러울 뿐 아니라 아무래도 독자에게 신뢰를 주기 어렵다.


품사. 띄어쓰기. 정확히 익혀서 보기 단정한 글을 쓰면 가장 좋겠지만, 잘 모른다고 해서 글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프로그램이 다 짚어주는데 겁낼 게 뭐 있나. ‘빨간 줄 없애기’ 미션이라 생각하고 고치면서 배워나가면 된다. 다들 이렇게 한다, 정말로.


혹여 오해하는 분 있을까 봐 덧붙이는데, 내가 품사를 잘 몰라서 괜히 스스로 위로하느라 이런 글 쓰는 게 아니다. SNS에 띄어쓰기 틀린 글 올릴까 봐 미리 설레발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라면 안 먹길 잘했다는 걸, 그 힘든 걸 참아냈다는 걸 위로받고 공감받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든 독자에게 솔직하게 전달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거다. 그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었으니까. 아, 라면 한 번 참는 게 이렇게까지 킹받는 일일 줄이야!




* 단어 :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나 이에 준하는 말. 또는 그 말의 뒤에 붙어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말.단어별로 띄어쓰기를 할 수 있으며, 조사는 제외한다.


* 단어의 분류 (단일어/복합어로 나뉘고, 복합어는 다시 합성어/파생어로 나뉜다)

1. 단일어 : 실질적인 뜻 하나로 된 단어. 더 작은 부분으로 나눌 수 없다. (예 – 하늘, 밥, 아주, 먹다)

2. 합성어 : 둘 이상의 단어가 결합한 단어 (예 – 강물, 작은형, 곧바로, 배부르다, 힘들다, 오르내리다, 굶주리다, 들어가다)

3. 파생어 : 단일어에 접사가 결합한 단어 (예 – 부채질, 풋고추, 되묻다, 지우개, 아름답다)

(*접사 : 단독으로 쓸 수 없고 다른 어근이나 단어에 붙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의존형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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