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3주 차의 기록
불쑥불쑥 찾아오던 눈물이 마르고,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오갔던 그 사람의 모습이 조금은 희미해졌다. 내 일상을 다른 조각들로 애써 채우려고 했던 노력들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연인이 잘 지내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아무렇지 않게 헤어지게 됐다며 이야기를 하고, 괜히 내가 먼저 "잘 헤어졌지"라고 말하며 웃어 보인다.
날이 추워져 오랜만에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고 회사에 출근을 했다. 사무실 옷장에 트렌치코트를 걸어두려고 문을 열었는데, 내가 지난봄에 넣어두었던 바람막이를 발견했다. 얼마 전 집에서 한참을 찾아 헤맸는데, 내가 넣어둔 그곳에서 그대로 여름을 지냈을 바람막이를 만났다. 얼마 전에는 그가 선물했던 에어팟의 유닛을 잃어버려 한참이나 찾았다. 1주일이나 온 집안을 뒤졌는데, 오늘 집 앞 산책을 가려고 입은 후드 주머니 안에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는 거냐고.
제발 그렇게 살지 말라고.
아마 내가 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라면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 삶은 늘 약간씩 빈틈이 있다. 알림장에 적어둔 준비물을 잘 까먹는 아이였고, 친구 생일을 잘 잊었고, 휴대폰에는 늘 배터리가 없다. 여행 준비는 늘 가기 전 날에 하는 그런 사람. 그 사람의 삶은 틈이 없었다. 여행 가기 1주일 전에 짐을 쌌고, 항상 필요한 것들을 챙겨 다녔고, 늘 정리를 했다. 그 사람에게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에겐 늘 이해가 부족했다. 사랑이 있다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그의 말들을 이해할 수도, 받아줄 수도 없었다. 내 그릇이 그만큼이라서.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바람막이와 에어팟 유닛은 다 내 품으로 돌아왔다. 조금 느리고 시간이 걸릴 테지만 내 일상은 다시 자리를 찾을 것이다. 그 사람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여러 번의 이별로 알게 된 법칙을 다시 되새겨본다. 괜찮다고 말하고 잘 지낸다고 말하며 오늘을 보내다 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이별 플레이리스트
정승환 - 잘 지내요
잘 지내요, 오늘도
언제부턴가 참 쉬운 그 말
나조차 모르는 내 맘을 들키기 싫어
감추는 게 익숙해져요
내 기억은 언제나 오래된 퍼즐 같아서
늘 하나씩 모자란 그 조각을 찾고 있죠
내 마음은 언제나 쓰다 만 편지 같아서
늘 어딘가 부족한 말들로 끝나버리죠
잘 지내요, 오늘도
망설이다가 건넨 내 말에
누군가 조용히 알아주길 바랐어요
말끝에 글썽인 눈물을
내 추억은 언제나 고장 난 시계 같아서
늘 흐르지 못한 채 한 곳에만 고여있죠
내 사랑은 언제나 두고 온 아이 같아서
늘 똑같은 자리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죠
사실 난 두려워요
늘 불안한 내 모습
비좁은 이 마음을
누구에게 들킬까
스스로를 지켜낸 시간들
오늘도 잘 지낸단 말로 날 숨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