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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Sep 17. 2019

전남대 총학생회장은 찬반 선거였다 (2006~2009)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사

 2005년 11월 선거를 끝으로 전남대 총학생회 선거는 4년 간 찬반투표로 치러졌다. 2006년 11월부터 류선민, 김현웅, 오주성, 김유리가 찬반투표를 통해 차례로 총학생회장이 되었다. 그즈음 학생들의 무관심은 더욱 보편화되었다. NL 세력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전남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경쟁후보가 없으니 선거는 용이했다. 한총련에서 후보를 정하고 투표율을 채우는 선거운동만 진행했다. 이들은 선거기간에는 '반미', '자주'와 같은 학생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자신들의 신념을 슬쩍 숨기고 좋은 이야기를 했다. 학생들은 '학생회가 없어지면 생겨날지도 모르는 불이익'을 우려하여 찬반 투표에 참여했다. 대학교는 3년이면 구성원의 상당수가 교체된다는 점도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스스로의 신념과 사상을 드러내고 떳떳하게 진행한 선거는 아니었으나, 이들의 권력은 공고하게 유지되었다.


 사상의 자유는 모든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미국에 반대하고 북한을 높이 평가하는 것 역시 자유롭게 행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맹목적인 반미 주장을 하는 것 외에는 실력이 전무한 이들이다. 이 시점의 전남대 NL 세력은 제대로 된 판단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때부터 많은 학생들이 인터넷 공간에 부끄러움을 토로하는 글을 남기기에 이르렀다.


  2006년도 전남대 총학생회장 장송회는 한총련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2007년도 전남대 총학생회장 류선민 역시 한총련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2008년에는 한총련 대의원 중 그 누구도 의장선거에 출마하지 않아 의장 선출이 무산되었다. 결국 김현웅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한총련 투쟁본부장을 맡았고 한총련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 시점의 한총련은 이미 난파선이었다. 서울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여러 대학들이 앞다투어 한총련을 빠져나갔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한총련을 탈퇴하며 다수 학생의 관점과 괴리된 학생운동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운동방식과 상부 기구에 의한 하향식 의사결정의 비민주성 등이 지적되었다.

 


 2006년도 총학생회장을 지낸 장송회는 현재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개인의 의사표현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인물이 재임기간에는 학생들의 관점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주장을 학교의 이름으로 내세우고, 퇴임 후에는 그 경력을 밑천 삼아 해당 세력의 다른 조직에서 자리를 차지한다. 실로 부끄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

 

 2007년도 총학생회장 류선민은 지적능력이 의심될 정도로 맹목적인 신념들을 드러냈다. 그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2007년 1월 24일 범청학련 남측본부가 주최한 집회에 참여하여 "핵보유 민족의 존엄과 기상으로 반통일세력의 최후 발악을 저지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선군 정치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전쟁의 위협을 막는다"며 북한의 선군 청지를 철저히 옹호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자라면, 군대를 앞세운 정치의 전체주의적인 면모를 간과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그저 북한의 모든 것을 무조건 옹호하고 미국을 극렬하게 비난했다. 누구에게나 특정 국가를 비판하거나 높게 평가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교조적인 믿음에 가까워진다면, 그것은 이념이 아닌 신앙이다.



 그는 심지어 북한 인권문제에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인권문제에는 근거가 없다 미국의 인권단체들이 공작을 해 탈북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한 것이다", "탈북자가 아닌 북한 내부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나는 금강산에 가서 북한 동포를 만났었다 동포에게서 인권문제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가 직접 한 발언들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 씁쓸한 헛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마치 CIA가 내 귀에 도청장치를 설치했다는 수준의 말로 들린다. 북한의 실상을 모르던 1980년대도 아닌 2007년에 이런 사고방식을 지니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는 극단적인 수준의 몰주체성이 자리하고 있다. NL조직에 소속된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른다. 그들은 조직의 세계관을 철저하게 내면화한다. 조직의 세계관에는 주체사상이라는 이념체계도 있지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및 북한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가 포함되어 있다.



 류선민은 2019년 현재 37세의 나이로 서울대학생진보연합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정의당 윤소하 의원에 대한 테러사건으로 오랜만에 언론에 등장했다. 2019년 7월 1일,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로 죽은 새 시체, 커터칼과 함께 협박편지가 배송되었다. 이는 명백한 테러리즘이다. 편지에는 "윤소하 너는 민주당 2중대 앞잡이로 문재인 좌파 독재 특등 홍위병이 돼 개지랄을 떠는데 조심하라 너는 우리 사정권에 있다"는 내용이 '태극기 자결단'의 명의로 적혀있었다. 윤소하 의원실은 즉각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CCTV 추적을 통해 협박범을 검거했다. 확인 결과 범인은 류선민이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은 '사기 조작극'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그러나 경찰이 택배가 배송된 편의점으로부터 CCTV 1천여 개를 뒤져 류선민의 집까지 이어지는 동선을 확인했기 때문에 조작의 가능성은 없다.



 2008년 전남대 총학생회는 또 하나의 전설을 전남대학교 역사에 남겼다. 총학생회 조직국장과 한총련 대의원을 역임했던 전남대 재학생이 전남대 중앙광장에 주체사상탑 모형을 설치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높이 6m의 주체사상탑 모형을 각목과 흰색 천을 이용해 만들었고 붉은 글씨로 '주체'라는 글자를 새겨 1주일 동안 전시했다. 밤에 빛이 나도록 조명장치를 설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당시 분향소가 설치되었던 1학생회관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장소였다. 이렇듯 2006년 이후 한총련 내부와 전남대 내부에서 이들을 견제할 세력이 없는 상황이 되자 전남대를 중심으로 소수 극렬화된 자들이 곳곳에서 한심한 행동을 자행했다.


 결국 2006년 이후 4년간 전남대 총학생회 선거는 NL계열 후보의 단독 입후보 및 찬반투표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자행한 어리석은 행동들은 '2010년 사건'의 밑바탕이 된다. 나는 누군가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라는 말을 하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를 처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상 고무 찬양죄는 명백한 악법이다. 민주사회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그 불가결의 일부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판단은 언제나 엄정하다. 이들이 정치적 대표자로서 했던 행동들은 철저히 기록되어 판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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