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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Sep 16. 2019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막장으로 치닫다 (2004)

전남대학교 역사의 수치


 2003년 5월 18일 남총련 세력이 5·18 민중항쟁 23주년 기념식장에서 기습시위를 감행했다. 이들의 시위로 인해 기념식은 20분가량 지연되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기념식장에 후문으로 입장한 후 후문으로 나가야 했다. 일부 활동가들은 노 대통령이 5·18 묘역에 보낸 조화를 넘어뜨리고, 발로 짓밟았다. 참으로 몰상식한 행동이었다. 이에 5·18 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조비오 신부마저 이들을 비판하는 등, 사회적 공분이 확산되었다. 당시 남총련 의장은 윤영일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이 시위는 사실상 전남대 총학생회가 주도한 일이었다.


 이들이 집회의 자유를 갖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시위를 통해 그 무엇도 바꾸어내지 못했다. 이것은 변화에 기여하기보다는 평범한 시민들의 가슴에 차디찬 냉소를 남기는 행동으로, 전략적으로 가히 어리석음의 극한(極限)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가장 크게 분노한 건 전남대 재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의 분노는 2003년 11월 총학생회 선거 과정에서 터져 나왔다. 이전 3년 간, 전남대 총학생회 선거는 NL계열 후보의 단독 입후보와 찬반투표를 통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는 분노한 학생들이 출사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2003년 11월 19일, 2004년도 전남대 총학생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1차 선거에 출마한 문용득 총학생회장 후보는 선본명으로 '反운동권'을 내걸고 출마했다. 그는 지난 일련의 사태에 깊이 분노했다. 이는 명백한 네거티브 선거운동 방식이고 지향해야 할 방식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내건 케치 프라이즈는 분노한 학생들에게 제대로 먹히게 되었다. 1차 개표 결과 총 투표자 9,174명 중 4,316명(46%)이 '反운동권' 선본을 뽑았다. 전남대학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과반수 득표자가 없다는 이유로 37% 득표에 그친 2위 득표자 김성진과의 결선투표를 진행했다. 최종 개표 결과 '反운동권' 선본이 4,131표를 득표하여 4,128표를 득표한 김성진 선본을 3표 차로 격침시키고 당선되었다. 전남대 선거 시행세칙에는 "결선투표에서 연장투표를 진행했음에도 투표율이 50%를 넘지 않으면 '최다 득표자'를 당선자로 한다"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작은 차이지만 문용득 선본의 승리가 명백했다. 기존 세력(남총련)은 대부분의 단과대학 회장 선거에서 승리했을 정도로 '돈'과 '세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기반 없는 신생 후보에게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단번에 패배할 정도로 학생들의 분노는 컸다.


 그러나 전남대 중선관위는 문용득 선본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중선관위는 이전부터 총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던 남총련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어이없게도 "무효표가 3표보다 많다"며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재선거'를 공고했다. 그야말로 막장이었다. 전남대 중선관위는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몰랐다. 남총련의 연장선상에 있는 적폐 세력은 이후에도 전남대학교에 남아 2016년 선거 때도 비슷한 억지를 부렸다.


 이에 문용득 후보는 광주지방법원에 당선자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04년 3월 16일, 광주지방법원 재판부는 "전남대학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은 오차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위법한 결정이어서, 이 사건 결선투표에서 원고(문용득, 정재환)들이 전남대학교 제36대 총학생회장 및 부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전남대 중선관위는 3월 24일로 예정되어 있던 재선거를 취소하고 "그렇다면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지 말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실시하자"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았다. 기성세력의 일부 구성원은 "전남대학교는 학생들이 자치하는 곳으로, 치외법권 지역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대학교는 국가기관으로 법원의 판결을 인정하고 따라야 한다"며 예산지원 등을 실시했다. 문용득 후보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판결문 수용을 요구했다.


<전남대학교 2만 5천 학우 여러분께>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총학생회 선거에서 최다 득표로 당선된 ‘反운동권’ 총학생회가 2004년도 총학생회를 운영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에 대해 광주지방법원 역시 저희가 신청한 가처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생회(기성세력) 소속의 작년 총학생회 부회장과 중앙운영위원회 임시의장은 "인정할 수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어떠한 협의도 거부하였습니다. 이들은 행태는 2만 5천 전남대 학우를 우롱하면서 결국은 '우리 학생회'만이 학생회를 운영하겠다는 독단과 독재입니다.


이에 ‘反운동권’ 총학생회는 주장합니다.


첫째, 우리 학생회야 말로 전남대 2만 5천 학우를 그만 우롱하고 '反운동권' 총학생회 당선자를 인정하라.


둘째, 2003년도 중앙선관위 위원들은 선거 시행세칙 유권해석(우리 학생회 당선시키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남대 2만 5천 학우에게 사죄하라.


셋째, 35대 전남대학교 부총학생회장 정달성은 反운동권 총학생회를 인정하고 인수인계에 협조하라"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남대학교 중앙운영위원회 (기존 세력)는 총학생회 사무실에 대한 인수인계를 거부한다. 해당 사무실은 엄연히 학교 건물이었지만 수배 중인 남총련 활동가들에게는 숙식을 해결하는 아지트이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양심과 염치가 없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전남대 총학생회실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04년 3월 23일 문용득 총학생회장이 선본원들과 함께 총학생회 사무실에 들어가자 전남대 중앙운영위원회는 "反운동권 선본 측이 이날 새벽 총학생회실을 점거했다"라고 발표했다. 문용득 회장은 가히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게 당한 정도의 수모를 겪고서야 겨우 임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문용득은 그해 7월 2천만 원의 예산을 사용하여 전남대 1학생회관 2층에 렌트센터를 마련했다. 노트북, 카메라, 빔 프로젝터 등을 자유롭게 대여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가 만든 렌트센터는 2010년대 후반까지도 성황리에 운영되었다. 문용득은 결국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필자는 현재 1997년부터 2019년까지의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사를 정리하고 있다. 2016년 이후의 전남대 총학생회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2019년까지도 잘못된 적폐 세력이 사리에 어긋나는 아집에 사로잡혀 비슷한 행동들을 반복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4년'이라는 대학생활의 한계 때문에 기록이 고스란히 이어지지 않고 망각이 되풀이된다. 그래서 2023년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기록을 남긴다. 기록은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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