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동갑 남매가 사는 법
아빠와 아들의 관계는 사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지만 한 번 적어보고 싶었다. 주위를 보면 아빠와 친구처럼 혹은 엄마와 아들의 관계처럼 지내는 남자 사람들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아빠들의 흔한 수식어로 '아들 바보'가 아닌 '딸바보'를 붙이는 것만 봐도 아빠들은 딸에게 하듯 아들에게 하지 않는 모양이다.(물론 예외도 많다. 요즘의 젊은 아빠들은 옛 아빠들과는 많이 다른지, 최근 개그맨 유세윤이 그 아들과 책을 낸다는 소식을 보고 참 훈훈했다.)
우리 집에서는 동생과 아빠의 관계가 엄마의 고민거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친해지길 바라' 라도 찍어야 할 판이었다. 엄마는 동생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당신이 따끔하게 한소리 해야지- 같은 것들을 주문했으므로 보통 동생이 크게 혼날 땐 엄마보단 아빠의 언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엄마가 혼낼 때와 아빠가 혼낼 때 우리가 받는 타격이 사뭇 달랐으므로 아빠에 대한 부정적 인식(=무서움)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밥상머리에서는 대화가 점점 사라지고 함께하는 활동들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어쩌다 한 번 하는 말이 혼내는 말이면 더욱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왜 아빠는 혼내기만 하지 싶은 거다. 30년 이상(내 동생의 경우 4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부분이다. 보통 회사의 부장급 혹은 그 이상 어른들은 사회초년생들과 비슷한 나이의 아들 딸들을 두고 있는데 그들의 관계만 봐도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그 간격을 좁히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려움은 아니더라도 어려움 비슷한 공기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보통 딸들은 자식을 낳아보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한번쯤 듣게 된다. 그렇다면 아들의 경우는 언제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가족을 부양한다는 개념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요즘이라 1:1 상응하는 상황이 발생하진 않으리라. 외아들인 지인에게 물어보니 보통 아빠와 아들은 보통 어릴 때는 좋은 관계라고 한다. 자라면서 사회성을 갖추고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아빠보단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아빠와 부들부들한 이야기를 하는 게 첨차 낯부끄러운 일이 된다고. 아빠를 이해하게 되는 시기는 결혼을 하거나 언젠가부터 슈퍼맨 같던 아빠의 어깨가 쳐진 것을 발견했을 때로, 그 얘길 들으니 괜시리 마음 한 켠이 울적해 졌다.
실제로 아빠들은 자신이 한창 사회에서 잘 나가던 시기가 된 아들을 보면 위기감을 느낀다고 한다. 집 안의 기둥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밖에서는 여기저기 치고 올라오는 젊은 사람들을 감당해야 하고, 집 안에서 안식을 찾으려 할 땐 이미 끈끈해져 있는 엄마와 자식들의 관계를 파고들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아빠들은 서서히 마음을 펴 놓을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확실히 유해진다. 보통 여성 호르몬 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 아빠만 봐도 엄마보다 더한 드라마 중독이 된다던가 때론 귀여워지는 부분이 생기더라.(내 지인은 호르몬 문제가 아니라 힘이 빠지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내가 하는 행동들을 못마땅해하던 아빠였는데 요즘 아빠를 보면 동생에겐 나 때만큼 잔소리를 자주 하진 않는다. 하는 행동은 비슷한데 말이다. 그게 아들과 딸의 차이인지 아빠의 인식 변화에 차이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아버지는 강해야 한다는 유교적 문화에서 벗어나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내 경우 언젠가부터 자식들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웬만한 일들에는 눈 꾹 감고 넘어가 주는 아빠의 모습을 발견했다.
가족 내 각자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 부모의 역할, 장녀와 장남의 역할, 막내의 역할. 성별과 위치의 따라 달라지는 각자의 몫은 때로 억울하고 굳이 따라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함께 살아가는 가족 간의 문화다. 아무도 나에게 그리 해야 된다고 말한 적 없지만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여 내 성격의 일부가 되었다. 동생과 나는 다른 역할로 자라났고 그렇기에 우리는 다르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동생만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동생은 동생만의 방법으로 엄마와 아빠를 이해해 나갈 테지. 나는 그것이 사는데 참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살아갈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말이다.
긴 세월 속에서 알게 모르게 아빠는 자식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왔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꾸준히. 그것에 무심한 자식들이 되지 않기를 하는 바람을 이 글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