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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양이 Aug 31. 2019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

띠동갑 남매가 사는 법




좁힐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어린 동생이 있어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이 차는 좁혀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 애가 아무리 시간을 들여 달려와도 난 그만큼 또 멀어질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정서적 차이는 나이보다는 가까워 질 수 있다는 점인데,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게 된 우리는 이제 같이 epl 이야기를 하고 쇼미더머니를 본다. 겉으로도 내 키를 훌쩍 넘은지는 이미 오래고 생각도 깊어졌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동생과 어떤 의미 있는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살기 바빴고, 귀찮은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들릴까 봐 걱정스러운 맘도 있었고, 애초에 내 이야기를 구구절절하는 편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우리 사이에 엄마라는 메신저가 있었다는 건 참 다행이었다. 엄마는 동생의 시시콜콜한 하루 일과부터 시험기간, 축구경기 소식들까지 부지런히 전해주었다. 아마 내 소식도 그렇게 동생에게 흘러 들어갔으리라.


‘누나처럼 되는 게 꿈이라더라.’


어느 날 엄마가 그런 이야길 했다.


‘나? 나처럼 왜?’


‘그냥, 좋아 보이나 보지. 혼자 나가 살면서 해외여행도 다니고 일도 하니까.’


그 이야기를 듣는데 기분이 참 이상했다. 내 동생이 바라본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가? 아니 애초에 동생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가? 늘 지켜보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동생도 저 누나를 어디선가 보고 있었구나. 하긴 하나밖에 없는 누나인데 그게 자연스러운 걸지도. 엄마는 그 이야길 전하며 웃었다.


'그래도 그렇지. 네가 목표라니. 내가 더 큰 꿈을 가지라고 말해줬어.'




나의 사랑이자 자랑

동생이 무엇이 되든, 혹은 되지 않든 이해해 주리라 다짐했었다. 응원이 아닌 이해를 해주겠다는 생각부터가 큰 기대가 없었다는 뜻일지도. 아마 나쁜 길로만 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생은 내 예상보다 잘 자라주어 요즘에는 이 놈 봐라?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나와 달리 이런저런 대내외 활동에도 부지런히 참여하고 성취욕이 높다. 특히 밤새서 시험이나 면접을 준비하는 보면 참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은 운동신경이 있는 편인지 초등학생 때부터 야구니 배구니 온갖 스포츠 종목에서 제의를 받아왔었다. 결국에는 축구부를 선택해서 중학교 축구부에 들어갔는데, 원만한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허락했던 축구부 활동이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운영되어 부모님의 걱정을 샀다. 가뜩이나 몸도 약한 애가 매일같이 훈련한다고 점점 더 야위여 가고 공부에 방해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부모님은 축구부 활동을 꾸준히 반대해 왔기에 동생과 자주 다투었는데, 놀랍게도 동생은 결과로 부모님의 걱정을 잠재웠다. 축구리그 결승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결승전은 삼산체육관에서 k리그 경기 전 진행되었고, 우승팀에게는 해외 연수의 기회가 주어지는 꽤나 규모 있는 시합이었다. 설마 되겠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토너먼트가 어느덧 우승이 간절해진 자리까지 온 것이다. 토너먼트가 열리는 날마다 엄마에게 실시간 중계를 받으며 얼마나 떨려했는지. 초겨울 즈음에는 온 가족 친척들이 응원해주는 가족 행사가 되어있었다.


동생의 결승 시합이 열리던 날에는 바람이 참 매서웠다. 추워서 떠는 것인지 긴장되어 떠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떨리고 초조했다. 내 생에 이렇게 떨어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이 어린 소년들의 공놀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 동생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날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실수는 하지 않을지, 다치진 않을지, 우승하지 못하면 얼마나 상심할지 가족의 일이란 이런 것이구나 새삼스런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날 동생이 속한 축구팀은 준우승을 했다. 상대팀이 정말 잘했거든. 아쉽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하고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문제는 우승에 근접했던 그 아쉬움에 동생이 1년 더 축구부 활동을 연장한다는 것에 가족들이 동의했다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에는 공부에 매진하겠다며 꾸준히 약속해왔던 동생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엄마는 그 후  1년 동안 매 경기를 따라다니며 시합을 지원하고 응원하러 다녔다. 뒤늦게 찾아온 인생의 새바람에 어쩔 때 보면 엄마가 더 신나 보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동생과 함께 승리의 환희를 느낄 수 있었을 테니 동생에게 내가 다 고마웠다. 너 때문에 다 늙어서 고생한다는 푸념이, 너 덕분에 지금까지 하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로 바뀌던 순간, 어느덧 동생은 집 안의 걱정거리가 아닌 자랑이 되어 있었다.




우리 사이의 괜찮은 거리감

동생에게 내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동생에게 직접 들었던 평가는 '살만 좀 빼면 예쁜 누나' 정도여서.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멋진 누나가 되고 싶다는 소명의식이 생겼다. 먼저 간 사람으로 조금 더 반듯한 길을 닦아 놓을 수 있기를, 멀리 있을 지라도 확실한 빛을 비춰줄 수 있기를. 내 인생에 부여받은 이 과제가 더 이상 마음의 짐이 아닌 기꺼이 하고 싶은 일이 되었음을, 이 이야기를 작성하며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동생이 있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평생을 형제 없이 살아야 한다고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어온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동생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누나가 되어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여전히 서툴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이 글들로 동생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남과는 차별되는 나만의 이야기를 고민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주제가 동생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였다는 게 나에게는 유의미했다. 우리 가족이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좋은 누나가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 띠동갑 남매가 사는 법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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