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의 가로수길이라 불리는 '샤로수길'이 있다.2호선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 사이 약 600m 남짓한 일방통행 골목길인데, 서울대 정문의 모양인 '샤'와 가로수길을 더해 샤로수길로 불린다. 오래된 가게들과 재래시장 사이사이 새로 생겨난 젊은 상점들이 대학가에 활기를 불어넣는 모양새다.
샤로수길에 70년이 넘은 가정집을 젊은 감각의 한옥으로개조한찻집이 있다고 해서 가봤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요즘 찻집 이름치곤 다소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수 있지만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그 이름에 브랜드 철학이 다 들어있다. 사자성어 그대로,옛 것처럼 느껴지는차를 새로운 스타일로 좀 더 편안하고 친근하게 알게 되는 공간이다.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
1층은 주문을 받는 공간과 쇼룸이다. 온고지신은 전통의 멋을 우려내 요즘화 시킨 차 브랜드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차와 디저트가 있다. 주 메뉴는 블렌딩 차. 남녀노소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맛과 향의 5가지종류가 있다. 메뉴판 앞에서 잠시 당황할 수 있다. 온통 '온고'와 '지신'에 숫자 조합이다.온고 no.1,2,지신 no.1,2,3... 뭐가 다른지 이름만 보고는 도통 알 수 없으니, 카운터 옆 작은 종이에 적힌 차 설명서를 꼭 읽어보고 고르자. 설명서 옆에는 메뉴마다 시향도 해볼 수 있다. 그래도 헷갈리면 추천을 받아보자.
'온고' 류는 녹차 베이스로 전통적 느낌의 차라면, '지신' 류는 히비스커스 베이스로 상큼하고 좀 더 트렌디한 느낌의 차라고 한다. 그래서 차의 색깔도 다르다. 온고는 노란빛, 지신은 빨간빛의 차다.
블렌딩 (Blending) : 음료의 다양한 맛을 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원료를 뒤섞어서 한 데 합하는 일.
디저트마저도 온고지신의 정신이 들어있다. 인절미를 모티브로 한 시그니처 메뉴 '온고 아이스', 흑임자와 쑥과 옥수수를 재료로 만든 '온고 빵'.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니 이왕이면 같이 시켜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밖에 계절 디저트와 온고 한상을 비롯해서 밀크티, 티에이드 그리고 커피도 판매한다. 1층에서 결제 후 주문서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 직원에게 전달해야 하는 구조다.
2층에 올라가니 꽤나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한국적인 미와 고즈넉한 정서가 깃든 한옥 찻집 그 자체다. 온고지신의 철학이 인테리어에도 녹아있다. 큰 원과 작은 원, 두 원은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을 표현한다고 한다. 보름달처럼 동그랗고 큰 원형 창문이 이곳의메인 포토스팟이다. 전통스러움이 힙하게 변모한 공간이다.
목재로 노출된 천장에 벽돌 구조, 시멘트 구조가 뒤섞여 있다. 구옥을 날 것 그대로 잘 살려놓았다. 구석구석 차 도구 소품들을 둘러본다. 나뭇잎 조명, 목재 테이블과 의자, 예술 작품 같은 나뭇가지 소품, 벽 선반에 놓인 자기 찻잔과 다관, 냅킨이 날아가지 않게 고정하는 주전자 소품. 무심한듯 딱 제자리에 놓여있는 소품들 구경이 재밌다.
안쪽으로는 좌식으로 된 사랑방 같은 공간도 있다. 붙박이 의자마다 깔려있는 왕골 돗자리에서도 온고지신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인테리어로 보기에도 좋고 딱딱한 나무 의자 위로 방석 역할을 해줘서 편안하다.
이날 주문한 차는 지신 에이드와 얼그레이 밀크티. 지신 에이드는 체리, 로즈힙, 히비스커스, 국화가 블렌딩 된 차라 새빨간 색깔에 청량감 있는 탄산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더해줬다. 블렌딩 티 에이드라 그런지 일반 과일 에이드보다 톡 쏘는 맛과 단맛이 강하지 않아서 좋았다. 밀크티는 캔맥주처럼 캔 형태라 테이크 아웃하기도 좋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한다. 매장에서 마실 경우 얼음컵도 함께 내어준다.
전통 디저트는 기대 이상이었다. 마치 파인 다이닝에서 맛보는 후식 플레이팅처럼 비주얼이 다했다. 먹기 아까울 만큼 예뻤지만,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맛있게 먹어야 한다. 온고 아이스는 인절미를 얼린 아이스크림의 쫀득쫀득한 식감과 고소한 맛, 깨칩의 바삭함이 입안에서 어우러져서 차와 페어링 하기 좋았다. 왠지 모르게 건강에 좋은 디저트를 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투박한 나무 질감이 살아있는 티 스푼과 포크마저 온고지신스럽다.
2층 왼편에 있는 야외 테이블은 아담한 공간이지만 이 공간마저도 옛 한옥의 정서를 그대로 살렸다.
커피 말고 차를 마시고는 싶지만 왠지 전통 차는 멀게 느껴진다면, 옛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온고지신을 찾아보자. 부담 없이 산뜻한 블렌딩 티로 차와 친해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차 마시는 즐거움을 알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