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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28. 2022

'문래동' 찻집 : 나의 감정에 집중하도록 돕는 차

영등포구 문래동 <아도>

힙플레이스 문래창작촌에서

'감성', '감정' 두 가지를 다 잡은 요즘 찻집


문래동에 '감정'을 콘셉트로 문을 연 찻집이 있다. 소규모 철공소들의 쇠붙이 소리가 나는 투박한 골목골목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공방, 작업실, 식당, 카페, 술집들이 새로운 감각을 형성해가고 있는 문래창작촌. 그 사이에 간판 없는 작은 찻집 <아도>를 처음 보면 여기가 찻집이 맞나 싶을지도. 만약 그런 생각이 든다면 제대로 찾아온 거다. 전형적인 간판이 없다 뿐이지 오른편에 놓인 사다리가 간판 역할을 하고 있다. 메뉴판과 아도를 소개하는 인쇄물들이 툭 올려져 있고 찻집이라고 적혀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문래동스러운 힙함이 묻어난다.



<아도>는 한자로 [나_아我], [길_도道] 자를 써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 나의 내면으로 가는 길.'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찻집으로 '차'를 매개로 나의 '감정'의 길에 이르는 일을 돕는 공간이다. 12시부터 16시까지는 다회·클래스·전시 등으로 운영되고, 16시부터 24시까지는 심야 찻집으로 운영 중이다.

A road to myself.


자동문을 열고 들어서면 공간이 주는 기운에 잠시 멈칫한다. 동양적인 미를 살린 인테리어가 아도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지를 걸쳐놓은 듯한 조명부터 어느 유명 화가의 예술 작품 같은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까지. 특히 사방으로 먹칠한 이 벽은 사장님과 동네 지인분들이 붓으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해 완성된 결과물이라니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당시 사람들의 감정이 벽 위로 켜켜이 쌓여있는 공간인 것이다. 벽뿐만 아니라 바깥 입구의 시멘트 디딤돌 위에도 마찬가지로 붓질이 남아있다. '감정' 찻집답게 인테리어 하나하나에 아도의 철학이 묻어나 스토리텔링이 확실한 공간이다.



얼핏 보면 심야식당이나 선술집처럼 보이는 바 테이블 구조로 7석 정도가 마련되어 있다.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을 내어주는데 '7가지 감정'에 맞는 차를 고를 수 있다. 보통 차에 대한 정보가 적힌 메뉴판과 달리 각각의 차를 통해 어떤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청차, 백차, 녹차, 홍차, 화차, 황차, 흑차'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慾'으로 명명되어 있다. 차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선택이 수월할 것 같은 메뉴판이다. 읽어 내려가면서 나의 현재 감정이 어떤지 혹은 지금 어떤 감정을 얻고 싶은지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럼에도 고르기 어렵다면 그날의 기분, 날씨, 생각나는 키워드 등을 이야기하며 추천을 받아볼 수 있다. 7가지 기본 싱글 티 말고도 밀크티, 우리나라 전통주를 베이스로 한 티 하이볼도 있다.



감정의 재배치 : 모든 사람에게는 7가지 감정 '기쁨, 화,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이 있는데 이 감정들이 조화로워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정의 균형을 조화롭게 하기 위해 차를 마시며 나의 순수한 감정을 느끼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마실 차를 골랐다면 다음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제 찻잔을 고를 차례. 7가지 찻잔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가운데 가장 길쭉한 아도에서 직접 제작한 잔도 있다. 고르느라 진중해진다. 선택지 앞에선 누구나 신중해지기 마련. 차를 마시는 재미 중 하나가 찻잔을 고르는 건데 소비자의 취향을 세심히 존중하는 찻집이다. 곧이어 다관과 숙우, 내가 고른 찻잔이 예쁜 패브릭 트레이에 제공된다. 먼저 향을 맡고 나의 감정에 집중하며 차를 마신다. 감정 찻집이라 그런가 주위를 둘러봐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 감정에 집중하려고 애쓰는 듯한 모습이 흥미로웠다. 뜨거운 차는 세네 번까지 우려 마실 수 있다.



감정을 다스릴 만한 공간이 곳곳에 숨어져 있다. 왼편으로 놓인 계단을 따라 오르면 복층 다락방이 나온다. 프라이빗하게 직접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예약제로 운영된다. 계단 밑으로는 1인 명상실도 마련되어 있다. 정확한 명칭은 '호곡장'으로 울기 좋은 곳이라는 뜻인데 울적한 사람들이 오면 눈물을 쏟아낼 수 있을 듯하다. 어두운 분위기의 조명 아래 명상 도구인 싱잉볼과 작은 의자 한 개가 놓인 아주 작은 공간이다. 계단 밑 자투리 공간을 알차게 활용했다.


<호곡장 (好哭場)>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기록된 '한바탕 울기 좋은 땅'이라는 의미 _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구석구석 차 도구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자연친화적인 요소들 위로 목재와 도재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자갈 위에 무심하게 놓인 자사호, 차선, 티 코스터 등등.  테이블에 손님들의 휴대폰 충전을 위해 일정 간격으로 매립된 콘센트까지 센스 있다.



혹시 나아갈 길을 잃은 기분이 지속된다면, 무기력하다면, 불안하다면, 알 수 없는 감정이 널 뛴다면, 마음이 복잡하다면, 감정 찻집에 가보자. 이 찻집의 사장님도 이십 대 때 삶의 방향성 앞에서  자신과의 치열한 과정을 겪으면서 '차'를 만나 인생의 길을 찾았다고 한다. 문래동 골목에는 자신만의 길과 예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나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공간이 주는 힘과 감정에 집중하는 찻자리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문래역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 <아도>에서 차 한잔 마시며 나의 정확한 감정을 들여다보자.




<아도 我道>  

주소  영등포구 문래동2가 17-1

SNS  @a.do.official

#문래창작촌 #감정찻집 #감성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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