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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Nov 21. 2019

가끔씩, 삶이 나를 웃길지라도 '그러려니' 한다

내게 언질도 없이 기사가 삭제됐다는 걸 나는 바보처럼 오늘에야 알았다. 점검할 이유가 없었다. 기사가 나간 후로 몇 달 간 멀쩡히 있던 걸 내가 봤으니까. 왜 삭제된 건지, 누구의 지시인지, 뭐 가타부타 물을 기회도 없었다. 이런 일은 또 난생 처음이라. 나는 너무나 황당하다. 과거의 나라면 황당함에 조금은 분을 삭여야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늙은 걸까. 워낙 별 일이 다 있어서일까. 하. 하고는, 또 해결할 일이 하나 생겼구나. 성가신 게 하나 생겼어 하고는 만다. 나쁘게 말하면 타성에 젖은 거고 좋게 말하면 삶에 익숙해진 거다. 삶이 또 하나 뭘 주네. 하고. 날 밝으면 쿨한 체, 남의 일인 체 물어야 한다. 우리 상사는 열등감이 심해 누가 뭔 말만 해도 발끈해 과장해 상황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늘 다른 선배의 고용 형태에 대해 의심을 품으며 질투하는 인간의 썩은 얼굴 따위를 때로 보였던 선배 하나가 있다. 그래도 대체로 좋은 선배라 생각해서 별 마음 없었다. 특정 선배에게 지나치게 집착해 미워하고 건수마다 태클을 걸면서도 앞에선 말 못하고 뒤에서 나를 불러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선배 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 선배 때문에 팀을 옮겨야 하나 따위의 고민을 살짝 했을 만큼 가끔은 내 복통의 원인이 됐던 선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선배의 툴툴거림에 인이 배겨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어떠한 어른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렇다. 각 회사는 대개 회사 사람들이 어디서 뭐하는지에 대한 시스템이 있다. 필요한 부서의 누군가가 생길 때 검색하기 위한 용도 등으로, 나는 이 시스템에 흥미가 없었다. 전 전 직장 동기 하나는 그 서비스에 들어가 얼굴과 이름을 보는 재미를 느꼈다고 한 번쯤 지나가듯 말한 바 있으나, 내겐 별로 흥미를 주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장황히 말한 것은, 그 시스템을 검색 용도로 이제야 제대로 들어가 봤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 시스템서 나는 놀랍게도 그 툴툴이 선배의 고용 형태 역시 다른 선배의 고용 형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99% 가능성의 뭔가를 발견하고 말았다.


어디에나 1%의 반전 가능성이 있기에 확정해 생각은 안 하려고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인간의 여러 얼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선배의 고용 형태와 그의 근무 태도를 연관 지어 열변을 토하고 얼굴이 붉어져 터질 듯 했던 그 선배의 그간의 툴툴댐들에 대해 소름마저 살짝 돋은 것이다. 이것은 정의가 어쩌구 하는 문제가 아닌, 사람의 괴물 같은 속내에 대한 것을,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서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조금은 놀라다가도 이내 다른 놀랄 일 많은 세상서 또 빠르게 한 켠으로 그 문제를 넘겨 두는 것이다. 와, 이런 면도 있구나.


사람을 조심해야 하며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것, 사람의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되는 것. 나는 이제야 그 깨끗하고 올곧은 과거의 선비들이 홀로 그리 외롭게 늙었는지 알겠는 것이다. 왜 대개 청렴결백한 이가 혼자인지 알겠는 것이다. 남의 얘기 싫어하는 이들이 왜 혼자인지도 알겠는 것이다. 나는 진저리 나는 이 인간들이 너무나 지겹지만 또 반쯤은 얘기를 귀 밖으로 흘리면서 이들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에 그냥 또 '그러려니' 하고는 마음의 서랍을 열어 여러 얘기를 넣어두는 것이다.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하마터면 사람을 좋아할 뻔한 것에, 인생이 다시 경종을 울려 준달까. "너, 아무나 믿지 말고 아무에게나 잘해주지 말랬지." 어후, 잊을 뻔했다. 망각의 동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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