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 양반이 미쳤나, 싶었다. 수년이 지나는 동안 나이만 먹은게 아니라 단단히 정신이 나갔구나.
원래도 실없는 소리를 많이 했다. 그가 단 둘 뿐인 후배를, 그 중에서도 특히 나를 골려먹는데 특화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완전히 있고 있던 평화로운 어느 날의 기억 속 그는 황당해하는 내 반응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자체가 다르다.
“저랑 장난하실 기운이 남아있으신가 보네요.”
한껏 낮아진 내 말투에 이번엔 최훈은 당황했다. 최훈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이상했다. 너무 심하게 놀라고, 당황했다. 내가 그의 물음에 자꾸 반문하자 이제는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그는 숨을 후, 후 소리를 내며 골랐다.
처음 DM클럽 앞에서 봤을 때와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그렇군, 자네는.. 너는 원혼을 보지 않는군. 그렇군..”
혼잣말치고는 큰소리로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시끄러워 죽을 것 같아. 요즘따라 더 시끄러운데.. 그게 자네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아닌걸까?”
“과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나도 모르게 옛호칭이 나왔다. 이제 슬슬 짜증을 너머 화가 치밀었다.
그 순간 최훈이 내 멱살을 잡았다.
“왜 너만 멀쩡하지? 왜??!”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소리치며 멱살이 잡혔다. 그보다 내가 놀란 건 최훈의 희번뜩한 눈 때문이었다. 그의 눈이 새빨갰다. 눈을 한번도 감은적이 없는 사람처럼 충혈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물기 하나 없었다. 건조한 눈이 곧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 동공이 나를 향해 무시무시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나는 최훈의 손을 뿌리쳤다. 그새 옷이 완전히 구겨졌다. 뒤로 물러선 최훈이 중얼거렸다.
“아.. 맞아. 내가 너를 구했어. 내가 너를..”
사무실에는 CCTV가 있었다. 여기가 사각지대일까? 어찌되었든 정당방위였다. 자꾸만 ‘구했다’는 표현을 쓰는 최훈의 말투가 거슬렸다. 나는 꾹 담아두었던 분노를 한 번 더 억누른채 말했다.
“설마 지금, 그때 저를 ‘구타’했던걸 ‘구했다’고 표현하는 건 아니죠?”
“맞아!”
하지만 최훈은 예상을 벗어났다. 그는 그 말을 듣더니 두 손바닥을 짝 소리나게 치며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저 미친놈.
너무 화가 나면 말문이 막힌다. 뒷목이 뻐근해졌다.
수년 전 나는 최훈에게 일방적인 구타를 당했다.
이유조차 모른채 말이다. 단 한 번이긴 했지만. 병주고 약준다는 말처럼 다음날 미안하다는 이유로 뭔가를 마시거나 먹게 만들었는데, 그날 이후 일주일간 온몸이 심하게 아프고 먹는 족족 개워냈다.
사내 괴롭힘이라고 하기엔 모호했지만 인과관계가 확실했다. 최훈이 이유없이 나를 때리고-적어도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그 후에도 나를 괴롭히기 위해 이상한 뭔가를 먹게 만든거라면. 나는 최훈에게 이유를 묻고자 했다. 헛소리라면 똑같이 되갚아주리라 다짐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따지기 전에 도명제약은 망해버리고 말았다.
“....”
후우. 숨을 골랐다. 나는 지금 눈앞에서 그때보다 좀 더 정신이 이상해보이는 최훈을 미친 듯이 패고싶다는 충동이 일었으나, 참아냈다.
그런 폭력으로 최훈을 굴복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가 싫었지만, 너무도 싫었지만 수진이 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으로 제동이 걸리는 나도 참 우스웠다.
“대체 왜요? 당신은 그저 날 때린건데, 왜 그게 구한게 되는건데요?”
나는 일단 물었다. 물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그야..엔씨에 중독되는걸 막아줬잖아.”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그게 무슨 말이죠..?”
엔씨..그러니까 네카는 직접 섭취하는 것을 제외하면 중독이 되지 않는 약물이었다. 애시당초 중독될 리가 없었다. 그건 면역이 생기는 약물이니까.
최훈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갑자기 예리해지는 바람에 당황한건 나였다.
“연구원들은 엔씨에서 자유로울 거라고 생각했어? 넌?”
내가 대답하지 않자 최훈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 지나고 최훈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그랬군. 자네는 순진하게 ‘우리’는 멀쩡할거라고 생각했군? 수진이 잘 감춘건가?”
수진. 수진의 이름이 최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감히 네 입에서 그 이름이.
최훈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수진이 너한테 준게 없었나? 그걸 말해주면 용서해줄게.”
도가 넘은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정말?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최훈은 엄지 손톱을 딱딱 물어뜯었다.
“그러면 쥐새끼는!”
“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예요.”
“DM을 캐는 쥐새끼말이야. 난 그게 자네라고 생각했는데.”
원혼을 운운하는 것에 이어 또 알 수 없는 말이 나왔다. DM을 캐는 쥐새끼라니.. 혹시 치호를 말하는 걸까.
“아무것도 없이 그럴리 없잖아. 적어도 엔씨의 제대로 된 제조법 정도는 알아야.. 그런게 아니면 억하심정이라도 있어야지. 근데 너는 멀쩡하잖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 정말로?”
“....”
대답하지 않는 나를 보는 최훈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사람을 파고들 것처럼 쳐다보는 강렬한 눈빛. 아까와는 달랐다.
“난 그래서 네가 싫었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 눈이 특히나. 항상 그렇게 자기만 멀쩡한 얼굴로 살아가지. 내가 널 구했어도, 그게 수진이 바란 것이라 해도.. 이제와서는 모르겠어. 너도 저 원혼들한테 시달려야하는게 맞지 않아?”
“원혼이라니 그게 무슨..”
내 뒤 허공을 바라보는 최훈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그는 눈썹을 구기며 한숨을 쉬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