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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Nov 11. 2024

36화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때 아닌 늦은 감정 반향으로 나는 그 시기를 기억한다. 그래서 네카는 내 마음에서 뒷전을 차지했다. 그래서 보지 못한 것이 많았다.      



  

최훈은 담배를 폈다.

이전의 그라면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가 알던 괴짜 뿔테는 정신을 흐리는 뭔가-담배. 술. 기타 등등-를 극도로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담배가 정신을 흐리게 하나요?”


당시의 내가 담배를 피면서 물었을 때, 최훈은 나한테서 멀찍이 떨어져 손으로 입까지 막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너도 그거 끊어야 정신이 말짱해.”


그 후 여러 해가 지나 나는 담배를 끊었다. 물론 최훈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시 만난 그는 내게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첫째로 나는 이제 담배가 싫었고 둘째로 최훈과 담배 한대씩 나누며 친밀해지는 듯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 주위를 빙빙 돌며 기회를 노렸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그렇다고 비굴하게 내 눈치를 봤다는 건 아니었다.


“DM클럽 관련 자료 다 받아볼 수 있어요?”


발령 받자마자 의욕적으로 일하는 내 모습을 다른 직원들은 의아하게 보는 듯 했다. 귀찮은 일을 떠맡겠다 하는 내게 이때다 싶어 마구 일을 퍼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딜가든 어느 회사를 가든 인간군상은 비슷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 시절 내 옆에 있던 최훈과 수진이 특별했다. 너무 특별했기 때문에 평범한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거겠지만.


덕분에 매일매일 야근이었다. 차라리 뭐라도 집중할게 있어 낫다고 생각했다.

DM클럽이 도명제약에 이은 약물실험을 한다? 일리는 있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모든 자료를 확인했지만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심증으로 볼만한 건 있었다. 11호점이 지금까지 있던 1~10호점과 다른 점은 바로 ‘고급화전략’이었다.


프라이빗 예약제. 게다가 11호점 오픈일은 돈만 낸다고 갈 수 있는게 아닌, 당첨제로 출입할 수 있었다. 기존 VIP는 아무래도 당첨에서도 우선순위를 가지게 되는 구조였다.


사이트에서는 아직 접수를 받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 주 뒷면 끝이었다. 총 인원 수를 감안하면 벌써 10명 중 한 명 정도만 당첨 가능했다. 왜냐면 윗선에서 여분으로 정해놓은 100석이 이미 있기 때문이었다. 연줄을 이용하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디든 공정한 곳은 없었다.


안그래도 치호가 먼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치호가 그 명단을 요청하기에 넘겼다. 회사기밀 유출? 최훈이 있는 회사에 내가 지킬만한 기밀유지 의무는 없었다.


최훈과 내가 친한 사이였을까. 나는 이 난제에 대해 꽤 진중한 고민을 거듭했다.

적어도 몇 년 전이라면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다. 그와 나 사이에 남아있는 감정은 온통 부정적인 것 뿐이었다. 치호와 나 사이에 항상 수진이 있었던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나와 최훈의 관계에는 그녀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 없는 세상에 나와 최훈이 마주보고 서있다는 건 불가능했다. 솔직히 나는 최훈이 이 세상에 없는 인간이라 여기며 지금껏 살아왔다.      


“얘기 좀 하지.”     


막상 (구)최훈 (현)대니스 최, 그 자가 내 눈앞에 나타났을때는 마음이 무척이나 차분해졌다. 내 눈앞에 있는게 얼음이라도 되는양 마음 한켠이 딱딱하고 차가워졌다.


“할 얘기 없는데요.”

“정말?”


나는 최훈을 힐끗 쳐다봤다. 웃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질문 그대로 의아함을 품고 있는 얼굴이었다.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저를 이 팀에 보낸 이유가 뭔데요.”

“네가 잘할 것 같았으니까.”


하. 뭘 보고. 속에서 비집고 나오는 욕지기를 삼켰다.


“DM클럽 11호점은 왜 예약제죠?”

“.....사업추진 계획서 안봤나?”


당연히 봤다. 고급화전략에 브랜드 이미지 상향. 내가 물어보고 싶은게 그딴게 아니란 것쯤은 최훈도 알텐데.

역시 최훈에게서 뭔가를 알아낼 순 없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내게 알려주고 싶지도 않은 것 같고.


“이제 할 말 끝났습니다. 업무에 방해가 되니 가시죠.”

“그러겠지. 그러면 궁금한 거 하나만 물어보지.”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굳이 내려와 내 자리 옆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그는 내 대답여부와는 관계없이 말을 이었다.


“자네도..그걸 보나?”

“...예?”


시종일관 무시하려 했는데 거슬리는 말에 결국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최훈의 눈매가 무언가 가늠하듯 깊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훈이 내려다보는 게 영 거슬렸기 때문이다.


“자네도 그걸 보냐는 말이야.”


내가 못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거..? 가 뭡니까.”


이번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신경을 살살 긁으며 대화를 유도한거라면 매우 성공적이었다. 결국 나는 되물었으니.

하지만 최훈은 내 말에 놀란 듯 했다. 그가 심각한 얼굴로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원혼 말이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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