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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Nov 15. 2024

38화 고3에게 꽤나 의지하고 있습니다

“원혼이라니 그게 무슨..”

내 뒤 허공을 바라보는 최훈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그는 눈썹을 구기며 한숨을 쉬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그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내가 네카라 부르는 엔씨(N.C)는 전량 폐기되었고 이제는 의학계에서도 쓰이지 않는 용어였다.


‘엔씨에 중독되는 걸 막아줬잖아.’


그 말을 하는 최훈의 눈빛은 솔직히 진정성이 부족했다. 자꾸만 허공으로 시선이 흩어졌고 집중력이 저하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불안감도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았고.

그런 상태에서 하는 말을 믿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정말 거짓투성일까?


수진에게 받은게 없냐며, 절박할 정도로 몰아부쳤던 말투. 진심으로, 실로 진심으로 나를 ‘구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눈빛이 자꾸만 걸렸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나? 정말로?’

정말 내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나.




“꼭 이 시간이어야 했어?”


문을 열어주며 치호가 말했다.


“이미 오기로 한 거 좀 반겨주면 안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쥐새끼’라는 말도 거슬렸다. 그래서 늦은밤이지만 연락했다. 막상 오라고 해놓고선 치호는 나를 타박했다.


“수험생은 바빠.”

“아.. 너 고3이지?”


그런 것치고 치호의 오피스텔은 참고서와 문제집이 아닌, 거실 한복판에 만들어놓은 공간에 윙윙 돌아가는 컴퓨터 모니터만 한창이었다. 방 안은 늦은 밤이라기엔 형광등을 다 켜놔서 무척 밝았다.


“뭐하고 있었어?”

“조작.”

“으응?”

“명단 준거 가지고 명단 조작하고 있었어. 웹사이트 마감일이 일주일 밖에 안남아서, 시간이 없어.”

“허..왜?”

“거기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 있거든.”

“날다람쥐?”


치호가 나를 쳐다봤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치호의 눈빛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그 말을 해도 되는 거냐, 고.


“아....”


순식간에 침묵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싸한 예감이 들었지만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후. 치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입을 오므렸다.


뒷조사해서 미안하다 야. 하지만 너도 했잖아. 네가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잖아. 나도 그냥 끌려다니기는 싫단 말이다.

나오려던 무수한 말들이 목구멍을 맴돌았다. 게다가 치호는 내가 이미 날다람쥐1호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PC방에 들른것도, 의도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1호야?”

“뭐..라고?”

“왜 날다람쥐1호야?”

“....”


하고 많은 말 중에 그게 가장 먼저 나왔다. 묻고 나니 궁금증은 더 커졌지만 치호입장에서는 역효과였던 모양이었다. 그의 눈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나는 점점 설곳을 잃어갔다.


“당신은.. 항상 예상을 벗어나가네.”

“하하하. 고마워?”

“칭찬 아니야.”
 “그래.”


치호는 천천히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소파까지도 한참이 걸렸지만 소파 근처에서 소파를 더듬고 천천히 앉는 모습이 영락없는 노인같았다. 충격 받았나?


“뭐든 첫 번째는 1호니까.”

“??”

“글도 봤겠네?”

“봤지.”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은데.. 다른 이야기 하면 안 돼?”


치호가 그런 말을 한 건 처음이었다. 약간 투정부리는 듯한 말투마저 느껴졌다.


“그래.”


‘지금은’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말해준다는 소리겠지.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 나를 또 신기하게 보는 시선이 걸리긴 했지만.

나도 소파에 앉았다. 얼마짜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앉자마자 몸을 포근하게 감쌌다. 누적된 피로가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DM에서 널 찾고 있는 것 같아. 나보고 최훈.. 도명제약에 있던 전 상사가 지금은 대니스최라는 이름으로 DM상무로 있는데, 그 사람이 나보고 ‘쥐새끼’를 찾는다고 말하더라.”

“쥐새끼..”

“일단 모른다고 했고, 또 뭐더라. 수진이 준 게 있냐고 하던데.”

“선생님이 준 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호는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을 줄였다. 그러더니 말했다.

“있어.”

“뭐? 진짜로?”


치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나는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어! 그건 내 시계잖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멈춰버린 아버지의 시계. 아버지의 유품으로 받았던 시계를 왜.. 치호가 가지고 있는거지?


“그걸 수진이 너한테 줬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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