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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Jan 01. 2025

58화 치호와 납골당에 갔습니다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아 (59화 예정) 조금 내용이 깁니다 :)


결국 자신의 지식욕을 펼친 것도 망친 것도 이 남자 손에 달려있었다는 것을, 그걸 이제야 알아챈 자신을.

그렇게 최훈은 대니스최가 되었다.





마흔 넷의 최훈은 이제 김도욱의 꼭두각시 역할도 못되는 처지였다. 

엔씨의 연구는 이후로도 진행이 되었고, 기본적인 약물의 역할에 특유의 향을 줄이며 중독성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에 특히나 공을 들였다. 


그 와중에 최훈도 약물에 중독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신경질이 늘었고, 얼굴을 심술궂은 사람처럼 변해갔다. 억제하는 약을 주기적으로 먹지 않으면 귀신인지 원혼인지 모를 것들이 환영처럼 눈앞에 나타났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신을 마주할때면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거울 속의 자신이 문득 너무나 낯설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꽤 여러번 한 것 같다는 기시감도 분명 존재했다.

이렇게 살다 죽는건가?


그러던 어느날, 창준을 마주쳤다.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서로를 밀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 싸움이 나고, 누군가 부상을 당했다. 최훈도 옆에서 누가 치는 바람에 약통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굴러가는 약통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누가 꾸민건지는 몰라도 창준이 관련되어 있을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다시 만난 그가 싫었다. 그 또한 자신을 싫어하는 게 역력히 보였다. 


네가 왜? 

그런 반발이 들었다. 최훈은 한때 그를 존중했고, 잘 이끌어주고 싶었다. 위험한 일에 가담시키면서도 중요한건 감췄다. 그가 쓸데없이 올곧은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 솔직함이 독이 될거라 여겼다. 혹여 제대로 모르고 있다 엔씨에 노출될까 냅다 때린 적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주었거늘. 나는 이렇게 망가지는 동안, 그는 멀쩡했다. 

그게 싫었고, 그런 마음이 드는 자신이 더 싫었다. 

분명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점점 비겁해지기만 해서, 그 기회조차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잡았다. 숨을 몇 번 크게 내쉬자 상태가 한결 나아졌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112 라고 누르는 손가락이 심하게 떨렸지만 막상 수화기 너머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심하게 안도했다. 


이제 대니스최는 최훈이 되고 싶었다. 그 죄를 용서 받지 못한다 해도.      




다음날 실시간 헤드라인은 온통 DM클럽이 차지했다. 다음날 실시간 헤드라인은 온통 DM클럽이 차지했다. 그 뒤로도 한 달 가까이 화제성은 식을 줄 몰랐다.  

나와 치호가 지하3층에서 고군분투하는 사이 1층에서도 한차례 폭풍이 있었다. 


날다람쥐2호 아저씨가 무대에 난입한건 단순히 선동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혹여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사기죄나 명예회손 혐의로 잡혀가더라도 DM을 폭로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과 부작용을 피력하며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을 설득했다. 혈액체취동의서. 수북하게 가져온 그것은 500장이 넘었다. 


이후 모든 사람의 혈액샘플을 체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유진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500여명 중 나를 포함한 클럽DM의 직원도 있었다. 그들의 검사결과에서도 네카가 나오자 일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이미 중독된 VIP뿐 아니라 아무런 내용을 모르는 직원들까지 대상이었다. 이미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김도명 그늘에 가려져 있던 김도욱이 양지로 나왔고 그는 표적이 되었다. 

네카에 관하여, 나아가 도명에 관하여. 심지어는 도명제약을 중심으로 한 김도명 일가와 그 친척들에 대한 가계도까지 인터넷상에 돌아다녔다. 


사회적 비판은 사그러들 줄 몰랐다. 

김도욱은 뼛속까지 장사꾼이었다. 도명제약이 버린 물질을 가지고 좀 더 연구했다. 필요한 손님에게는 주저없이 넘겼다. 초반에는 면역체계와 뇌신경에 영향을 주되, 한 번 반응이 나타난 사람에게는 면역이 생겼던 것과 달리, 연구를 진행하면서 중독성이 생겼다. 중독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꾸준한 단골손님이었고, 그 돈을 가지고서 김도욱은 더 큰 야망을 가졌다. DM클럽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였다. 불특정다수에게 네르비카풋을 먹이면서 그 반응군을 수집하는 것. 그렇게 중독되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 이상으로 뭘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김도욱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지만 나는 그가 한 말을 기억했다.  

'나처럼 되길 바란다'

자신을 특별한 인간이라고 되뇌이던 그는 사실 그렇게 되고 싶은 소망만 가득한 인간이었다. 


이십대 초반부터 조현병을 앓아왔던 그가 보고 느껴왔던 현실세계가 어떤 모양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불행해도 그는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질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괴롭게 만들었다.

김도욱은 아버지 김도명의 뇌사 상태에 관련해서도 죄목이 추가되었다. 몇 년 전 그가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고 난 뒤, 원인불명의 사고로 김도명이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 검찰은 수사를 시작했다. 


'아버지께 죄송합니다.'


재판장에서 최후의 발언으로 그렇게 말했다던 김도욱은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어떤 기자가 제대로 잡아낸 그 사진은 내가 보기에도 동정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로인해 여러 가지 추측기사가 난무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결국 그는 마땅한 죄를 받게 된다는 것뿐이었다.      



차는 한적한 골목 어귀로 들어섰다. 이내 오른쪽에 건물이 사라지고 시야가 뚫렸다. 밭도 있고 그 너머로 산도 보였다. 운전석 옆 창문으로는 딱히 개성 없고 규칙 없는 집들이 붙어서 의외로 개성 있는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 옆에는 치호가 앉아서 한가로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무릎에는 바스락거리는 꽃다발이 하나. 나는 그것을 차 뒤쪽에 놓으라고 말했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200미터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우회전입니다.’


내비게이션의 경쾌한 목소리만이 차 안에 울려 퍼졌다. 


‘목적지 부근입니다.’


“아, 저기 있다.”


홀로 우뚝 솟은 커다란 건물은 밝은 회색으로, 중앙 입구를 기준으로 건물 좌우에 소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건물은 조금 어두운 음영을 드리웠다. 그럴싸해 보이긴 했지만 밝지 못한 기운은 건물의 용도 때문인 건지 인테리어 때문인 건지 가늠되지 않았다. 주차장에도 차가 드문드문 보였다.


차에서 내가 먼저 내리고 치호도 꽃다발을 들고 내렸다. 검은색 양복차림만 아니라면 졸업식이나 시상식에 온 사람 같았다. 그건 그의 앳된 얼굴 뿐 아니라, 꽃다발의 모양새가 한 몫했다. 노랗고 빨갛고 분홍색, 하얀색이 멋들어지게 담긴 커다란 꽃다발.


“정말 이런 거 들고 와도 되는 거냐.”

“내 맘이지. 그리고 선생님한테는 이런 게 어울려.”


누구 마음대로. 수진에게는 좀 더 청초하고 수수한 느낌의 맑은 꽃이 어울리지 않나? 나도 내 나름대로의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타계한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고, 그 사이 한 번도 오지 않은 그녀의 납골당에 몇 번이고 왔다는 그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익숙한 듯 로비에 눈인사를 하며 들어가는 이치호의 뒤를 나는 천천히 따라 들어갔다.

모종의 수련을 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단정하게 걷는 그의 등 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소리하나 없는 걸음걸이였다. 주름하나 잡히지 않은 검은색 천의 질감. 곧은 어깨. 이따금씩 바스락거리는 꽃다발의 소리.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은 소나무의 그림자를 들고 들어왔다. 그의 까만 양복에 소나무 얼룩이 진다.

납골당 통유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복도 근처에서 한 사람이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검은색 중절모. 나는 퍼뜩 뒤를 돌아보았다. 내 기척에 치호도 나를 쳐다본다.


남자는 다리 한쪽을 절며 걸어가고 있었다.

머리에선 저 남자가 최훈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최훈은 다리를 절지 않는다. 최훈은 저렇게 걷지 않는다. 그래도 저건 최훈이다.


나는 달려가 그 어깨를 힘껏 낚아챘다. 휘청거리는 몸이 약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

“....뭡니까?”

“아. 죄송합니다.”


머쓱해진 내가 그 어깨에서 손을 슬며시 놓았다. 쥐어잡은통에 솟은 옷매무새를 기분나쁜 듯 남자가 털어냈다. 힘없지만 꼬장한 인상의 노인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제가 아는 사람이랑 착각을 하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거, 죄송하단 말은 그만하지요. 너무 사과만하면 없어보여 젊은 사람이.”

“네 죄송,, 아. 네.”

"나를 누구랑 착각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아, 아까 그 사람인가?"

"네?"


내가 반문하자 노인은 깜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지. 그냥 혼잣말일세. 어서 들어가봐. 기다리겠구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느릿하게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보다 반뼘정도 작은 키. 야윈 몸. 어째서 최훈이라고 착각한거지? 좀 전의 내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남자는 최훈과 닮지 않았다.

다시 뒤돌아섰을 때, 치호는 미동도 않고 제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궁금해 하지도 않네. 갈까? 입모양으로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수진의 자리는 꽤나 안쪽에 있었다. 위치는 조금 높았다. 사진 앞에 서고 나니 시선이 살짝 위쪽으로 향했다. 언젠가 보았던 활짝 웃는 얼굴은 여전했고 얼마 전 꿈에 나온 얼굴과 다르지 않았다.


"손님이 있었네.“


고(古) 이수진 이라고 쓰여있는 단지 옆에 작은 꽃다발이 있었다. 하얗고 청명한 느낌을 주는 백합에 검은색 종이포장지로 단정하게 포장하여 깔끔한 몇 송이만으로 꽃을 부각시켰다.

그건 내가 생각한 수진의 이미지와 흡사했다. 


방금 전 남자가 말했던 비슷한 사람. 놓여진 꽃. 수진의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또 착각일 수도 있다. 굳이 생각으로 이으려 하지 않았으나 나는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수진의 앞에 선 남자. 작은 꽃다발을 조심히 놓고서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딱 한번 작게 얘기하고 떠나는 최훈의 뒷모습.

치호가 사진 앞에서 말했다. 


"선생님, 저 왔어요."


그러고는 나를 쳐다본다.


"왜."

"인사 안해?"

"아..잘 지내죠?"

"헐."


치호가 얼굴색을 싹 바꿨다. 어..음. 하며 나는 말꼬리를 늘였다. 사실만 따지자면 수진과는 친한편도 아니었고, 안본지 너무나 오래된데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에게 인사한다는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가 물흐르듯 얘기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넘기고 있던 나는 애꿎은 헛기침만 해댔다.


"신창준씨랑 같이 왔어요. 어색해하지만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이해하세요."

"야."

“저희 둘이 서있으니까 신기하죠 선생님.” 


치호는 내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선생님을 용서했어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치호의 눈이 조금 먹먹해졌다. 슬픔을 넘어선 눈이 그녀를 용서한다고, 그렇기에 그립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문득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깨진 시계였다. 내게 내밀기에 얼결에 받아들었다. 

시침과 분침은 내가 마지막을 봤을 때처럼 3시 28분에 멈춰있었고 왼쪽 상단 액정에 큰 금이 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금이 간 것 뿐만 아니라 조각난 파편이 없어져 구멍난 시계가 되어버렸다. 액정 안쪽에 파편의 잔해같은 하얀 부스러기도 보였다.


치호의 손끝이 들고 있던 꽃다발을 조금씩 건들고 있었다. 나는 납골당에 걸린 벽시계를 보았다. 오후 두시였다. 여기 들어온 뒤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치호는 시간을 바스러질 듯 안고 있었다. 나는 그 화려하고 싱싱한 꽃다발을 소리 나게 빼앗아 들었다. 


"읏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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