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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Dec 31. 2023

어쩌다 휴직

인생이 우리의 뜻과 다르게 흐를지라도

회사 직무가 나의 적성과 맞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 2월부터 함께 일하게 된 팀장과 팀원들이 나는 회사 일 보다 더 힘들었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지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고, '잘 못'과 '잘 함'을 따지고 겨루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팀장과 팀원들은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들의 괴롭힘의 소용돌이에 갇혀 중심을 잃고 휩쓸리기만 했다.


은근한 따돌림으로 점철된 일상들 속에서 버티고 버티다 내가 선택한 것은 역으로 팀장과 팀원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같은 자리에 앉지도 않았고, 인사도 안 했으며, 일상 대화도 하지 않았다. 팀장과의 진솔한 면담은 당연히 없었다. 흔한 식사도 함께 하지 않았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회식 자리에 결코 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팀 팀원, 팀장들과는 지속적으로 교류했지만, 팀장과 팀원들과는 딱 일만 했다. '매우 적극적인 무시'라는 행위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팀장과 팀원을 상대할 애너지 자체가 없었다. 내 몸하나 지탱하기도 벅찬데,... 무슨... 하지만, 나의 냉정한 무시에도 그들의 괴롭힘은 '멈춤'이라는 것을 몰랐다. 아마, 그들의 입장에서 그것은 '괴롭힘'이 아니라, 그저 세상과 소통하는 그들만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라니, 끔찍하다. 세상에는 선인도 많지만, 그만큼 악인도 많다.


팀장은 '주변 일들을 애써서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를 아주 잘 이용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마치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 뜻 너무나 잘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기질적 특성 때문에 나는 팀장의 거짓말을 무척이나 잘 알아차렸다. 게다가, 그녀는 성격이 참 급했는데, 나는 그녀의 급한 마음속에서 그녀 자신은 결코 인지하지 못하는 그녀만의 불안을 보기도 했다. 그녀는 늘 자신의 불안을 다른 사람에게 끓임 없이 투사하고 투척했다. 1)구지 건드리지 않고 넘어가도 되는 것을 수정하라고 지시하거나 2)경력자를 앉혀두고, 분 단위로 따라다니면서 업무 지시를 하거나 3)말 바꾸기와 교묘한 거짓말로 멀쩡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때론, 4)'어디서 말 대꾸하고 박 박 대드냐며!' 으름장을 놓거나... (쌍팔년도 아닌데, 아직도 이런 사람이 회사에 꾀나 있는 것 같다. 5)팀원들 앞에서 면박 주면서 창피주는 건,... 일상이었다.


'윗 물이 고아야, 아랫 물이 곱다.'라는 격언이 있는데, 이 말이 딱 내 회사생활 같았다. 팀장이라는 사람이 저지경이니, 팀원들은 팀장에게 기생하며 각자 밥그릇 하나씩 차지한 동네 똥개 마냥 굴었고, 욕심 많고 타인을 통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여자 팀원은 언제나 나에게 감정적으로 굴고, 소리를 질러댔다. 계약직으로 함께 일하게 된 파견직원은 한 술 더 떠서 내 업무에서 흠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았고, 내가 도출한 결과에 대해 늘 훈수를 두었다.


23년 5월. 나는 내 두 발로 정신건강의학과에 간신히 걸어가, 항우울, 수면 증진, 불안 완화, 긴장 완화 등의 효과를 발휘하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 후 지금까지 2주에 1회 우울정도를 측정하고 20분 정도 주치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약을 처방받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내 상담을 받으며 심리치료를 병행해 나갔다. 당시 두 가지 치료를 병행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조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지만, 팀장의 럭비공 같은 업무 지시는 멈출 줄을 몰랐다. 큰맘 먹고, 당신의 럭비공 같은 업무지시가 이젠 정말 못 참겠고, 당신이 팀장으로 발령되고 나서 내 회사 생활은 엉망진창이라고 소리소리를 지르고 길길이 날뛰기도 했으나, 팀장은 되려 기세등등해져서는 나보고 선을 지키라며, 지금부터 업무 하지 말라는 둥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해댔다. 덕분에 정신과 약 복용 5개월이 지났음에도 나의 정신건강 지표는 나아지긴커녕 늘 2주 전의 점수를 갱신하기만 했다.


당시 나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다. 몸에 기력이 없었다. 기억력, 인지력, 문해력 업무 처리 및 성과 달성에 필요한 주요 정신적 신체적 기능들이 몸 여기저기서 동시에 파업이라도 한 것 같았다. 머리는 늘 안개 낀 것 같았고, 정신과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오후 2시가 되면 잠이 쏟아졌다. 핏기 없이 창백해 지기만 하는 내 얼굴을 지켜보시던 임원님은 넌지시 '휴직을 권했다.' 그리곤 그는 네게 '쉬면서 운동도 하고, 쉬는 방법도 한 번 고민해 보세요. 쉬는 것도 중요해요!'라는 말을 건넸다.


휴직을 결정하고, 휴직 준비를 하는 기간에도 팀장의 괴롭힘은 그칠 줄을 몰랐다. 휴직계 서류를 인사팀에 제출할 때까지 팀장은 내게 억지로 업무를 밀어 넣었다.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 분량의 업무이고, 당장 이틀 뒤에 휴직 전 연차 소진할 계획이라 해당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라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팀장의 업무 지시는 막힘이 없었다. 업무의 과중함과 정신적 스트레스 그리고 팀장에 대한 화를 참다못한 나는 그 길로 과호흡에 빠졌고 정신을 잃을 뻔하는 지경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그렇게 3개월의 휴직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아마, 앞으로의 인생에서 다시없을 길고 긴 휴식이리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3개월 휴직 기간 중 태국 북부지역인 치앙마이에서 한 달가량 머물며 너무나 소중한 추억을 한 아름 앉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곳에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어딘가 정성스럽게 기록해 두고 싶었고, 기억이 이슬처럼 잔잔해졌을 때 펼쳐 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앞으로 몇 편의 글이 발행될지 모르지만, 내가 쓰는 글은 sns에 흔히 있는 여행지 맛집이나 관광명소, 쇼핑리스트 등을 알려주는 글이 아님을 미리 알린다.


오직 나를 위한 글이다.


하지만, 우연히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있다면, 내 글이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하고 편안한 물결이 되어 흘렀으면 좋겠다. 현재 나는 회사에 복직하여 조직 이동을 앞두고 있다.

내가 한 달간 머물렀던 태국 북부지방 치앙마이의 올드타운은 5개의 문을 가진 고대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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